10여 년 전, 중국 출장길에서 길을 잃었다.비즈니스 미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던 중 낯선 이국의 날씨가 좋아 산책을 하겠다는 과욕이 화를 불렀다. 분명 호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몇몇 중국인들에게 호텔 명함을 내밀어도 길을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수차례의 외면 끝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중국 여학생이 내게 한국 사람이냐고 묻더니 호텔 앞까지 안내해 주어 간신히 낭패를 면했다.
그 학생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작은 돈을 건넸지만, 그녀는 웃음으로 거절하며 한마디 말을 수줍게 남겼다. “我是伯贤的FAN呀…”
몇 번의 질문 끝에야 그것이 “나는 백현 팬이에요”라는 뜻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백현’의 팬(?)이 되어버렸다.
해외 투어를 다니고, 군대에 입대하고, 솔로 앨범을 내고, 개인 소속사를 차리는 등 간간이 들려오는 그의 소식은 나름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들려온 근황 하나가 유독 마음 한켠에 오래 남는다. 마지막 월드 투어 콘서트에서 “내 세상은 팬들로 가득하다”고 말한 뒤 눈물을 보였다는 기사를 접했다.
최근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그의 근황이 화두가 되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정통하신 그분은 깊은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백현은 참 아까운 아티스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현만큼은 자기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때까지 모든 걸 책임질 거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봤기에, 나는 그걸 장담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의 앨범을 산 적도 없고 콘서트에 가본 적도 없다. 심지어 아는 노래 제목이라고는 엑소 시절의 ‘으르렁’이 전부다.
한국 아티스트 최초로 중국 웨이보 1레벨에 오른 최고의 아이돌 가수가, 왜 가장 행복해야 할 콘서트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대강의 사정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지만, 오롯이 노래와 팬만 바라보고 살아온 젊은 아티스트의 애환만큼은 간접적으로나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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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
그동안 ‘미담 제조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언론들도, 이제는 쿠키 가격이 비싸다는 발언조차 부정적 기사로 만들어 쏟아내고 있다.
대형 매니지먼트사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할 당시, 그에게도 분명 원대한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다른 현실의 냉엄함과 비열함 속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순간들 역시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알았든 몰랐든 그 과정에서 빚어진 모든 과오에 대한 면죄부를 주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지금의 이 상황을 백현 개인의 선택이나 판단 과실로 단순화하는 것은 분명한 왜곡이다.
문제의 핵심은 한 아티스트의 선의와 책임감이,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판단과 이해관계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었는가에 있다.
당시 의사결정의 중심에는 백현이 아니라, 매니지먼트 구조를 설계하고 실질적 방향을 쥐고 있던 건설사 대표 출신의 소속사 회장과 연예계 경험과 영향력을 앞세워 전면에 섰던 선배 가수가 있었다.
그들은 ‘아티스트의 독립’과 ‘새로운 시스템’을 이야기했지만, 그 결과 책임은 백현에게, 논란도 백현에게, 상처 역시 백현에게만 남는 구조였다.
백현은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고, 그의 성격과 책임감은 오히려 상황을 더 무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문제가 생겨도 그는 침묵했고, 논란이 커질수록 앞에 나서야 하는 사과의 벼랑 앞에 홀로 내몰리고 있다. 그가 선택한 ‘책임’은 미덕이었지만, 그 책임을 마땅히 나누어 져야 할 사람들은 끝내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지금의 비난과 의심은 과연 가장 약한 고리였던 아티스트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주변인들의 판단 실패는 또다시 한 명의 젊은 아티스트 뒤에 숨어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
백현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 역시 어떤 결정의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사안에서 그는 기획자도, 설계자도, 권력을 쥔 쪽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노래했고, 팬을 믿었으며, 자신이 속한 세계를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은 변명이라기보다 구분을 요구하는 기록이다. 비판받아야 할 책임과 보호받아야 할 사람을 구분하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구분이 흐려질 때, 이 산업은 또 다른 ‘백현’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중국어가 서툰 이방인을 호텔까지 친절히 안내해 주었던 그 여학생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만날 수만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谢谢你喜欢伯贤.”
(백현을 좋아해 줘서 고마워)
▣ 칼럼니스트 한정근 | 아시아브랜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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