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SK텔레콤 대리점에 ‘유심 재고’ 관련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이덕형 칼럼 |
결국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마을은 소년의 마지막 외침을 외면했고, 양들은 무방비로 잡아먹혔다.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은 단순한 거짓말의 경고가 아니다. 반복되는 신뢰 훼손은, 정작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큰 피해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고는 그런 점에서 기업이 고객의 신뢰를 얼마나 반복적으로 시험해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SK텔레콤은 “실제 피해는 없었다”고 했고, FDS와 유심보호서비스로 방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객은 안심하지 않았다. 신뢰는 이미 충분히 약해져 있었고, 기술적 해명은 더는 설득력이 없었다. "문제 없다"는 진단이 고객에게는 문제였다.
SK텔레콤은 해킹 정황을 인지한 직후부터 자사의 시스템이 정상 작동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그 시스템이 뭔지, 언제 작동하는지, 자신이 보호받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이해되지 않는 보안은 신뢰받지 못한다. 아무리 견고한 기술도 고객의 감정적 불안을 다독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보호막과 같다.
특히 데이터 보안은 ‘기술의 문제’이기 전에 ‘관계의 문제’다. 불안이 발생했을 때, 고객은 기술보다 공감과 책임 있는 태도를 먼저 찾는다. 이번에 SK텔레콤이 무상 유심 교체라는 전례 없는 선택을 한 것은 기술 때문이 아니라, 그간의 설명이 고객의 마음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유심 하나로 금융, 인증, 위치, 신원정보까지 연결되는 시대다. 이번 해킹 사고는 단순한 정보 유출 사건이 아니라, 통신망 보안의 본질적 구조를 묻는 계기가 됐다.
SK텔레콤은 뒤늦게 로밍 중 유심보호기능 고도화, 문자 안내 시스템 확대, FDS 강화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고객이 기억할 것은 사고 초기 며칠간의 소극적 커뮤니케이션과 혼란 속 침묵일지도 모른다.
이제 기업이 지켜야 할 보안은 시스템만이 아니다. 신뢰, 투명성, 책임의 프로토콜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신뢰를 설계하지 않은 기술’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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