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청심월드센터에서 천주가정연합(UPF)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이 공동 개최한 행사에서 찬조 연설하고 있다/ 사진=통일교 제공/이덕형 칼럼 |
흰 깃털을 휘날리며 정의를 행할 것 같았던 백로는, 실상은 개구리가 바친 뇌물 한 점에 양심을 팔아버린 판관이었다. 개구리는 동족을 희생시켜 자신을 구했고, 까마귀는 이유도 모른 채 이득을 봤다.
공정한 법은 없었고, 남은 것은 먹이사슬로 전락한 정의뿐이었다.800여 년 전 고려의 우화가 지금 한국 사회와 이토록 닮았다는 사실이 씁쓸하다.대관 업무, 청탁, 암묵적 로비. 이름은 달라도 구조는 같다.
기업은 정책을 바꾸려 정부를 찾고, 정부는 문을 열되 공개하지 않는다.대한민국엔 공식 로비스트가 없다. 대신 기업마다 대관팀이 있다.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정책 입장을 전달하고, 규제 완화나 예산 반영을 시도한다.그러나 이들은 공시도 없고, 공식 접촉 기록도 없다.접촉은 비공식이고, 판단은 사적 관계에 따른다. 법은 침묵하고, 기준은 사람이다.
이제는 묻자. 왜 미국은 로비를 제도화했고, 우리는 여전히 ‘없는 척’하고 있는가. 미국은 1995년 ‘로비 공시법’을 통해 로비스트의 등록과 활동 내역 공개를 의무화했다.누구와, 언제, 얼마를 들여, 어떤 입장을 전달했는지 국민이 알 수 있다. EU 역시 모든 이해단체 접촉은 '투명성 등록부'에 기록된다.투명한 로비는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경 협업의 제도적 틀이다.
반면 한국은? 기업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건 마찬가지인데,로비라는 이름조차 금기시된다. 결국 공식 경로는 사라지고, 비공식 접촉만 남는다. 그리하여 백로는 또다시 개구리의 살을 받아먹고, 정당성 없는 손을 들어주게 된다.이제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다.
로비스트를 등록하고, 접촉을 공개하며, 이해충돌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책은 권력자의 기분이 아니라, 시장의 이해관계와 사회적 타당성 속에서 조정돼야 한다. ‘정책은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 기반은 공개된 토론과 제도적 소통 위에서 형성돼야 한다.
800년 전 이규보의 백로가 지금 우리를 꾸짖고 있다. “정의는 말이 아니라 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백로의 재판이 아니라, 로비의 제도화를 허하라. ‘로비를 허하라’는 주장은 정경유착을 용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불투명한 음지 거래를 끊고, 공개된 정책 소통의 장으로 옮기자는 요구다.지금 필요한 것은 ‘없는 척’이 아니라, ‘있는 것을 드러내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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