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공개매수는 영풍에도 큰 손해, 그 이익은 MBK에"
정치권-지자체"장기 모험자본으로 실물경제 지원 PEF 취지 살려야"
[소셜밸류=황동현 기자]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영풍그룹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에 나서고 있지만 소액주주와 정치권, 지자체 등의 반발을 사고 있다.
MBK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주주가치 극대화"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경영권 싸움의 틈새를 파고들어 단기 차익을 좇는 ‘머니 게임’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1세대 토종 PEF인 MBK의 최근 행보는 일반적인 해외 행동주의 펀드와 별반 다르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지적이 높다. 사모펀드 육성을 통해 장기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실물경제 성장을 지원한다는 PEF 도입 취지와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MBK는 영풍그룹 보유 지분 상당수를 매입해 고려아연 최대주주에 오르는 동시에 공개매수를 통해 최대 14.6%를 사들이기로 했다. 총 투입자금은 최소 9537억원에서 최대 1조9964억원으로 국내 공개매수 사상 최대 규모다. 성공하면 사실상 고려아연의 단일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경영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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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MBK파트너스 제공 |
MBK는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고려아연 공개 매수가 적대적 M&A(인수합병)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잘못된 현재 경영진의 의사 결정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뜻이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2019년 고려아연의 금융권 차입 부채는 410억원으로 사실상 없었는데 올해 6월 말 현재 1조4000억원에 이른다”면서 “(현재 경영진이) 쉬운 말로 현금을 물 쓰듯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려아연은 반박문을 내고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의 유동성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현금성 자산 외에 ‘빠르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을 제외했다”며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고려아연의 현금은 2조1277억원으로, 부채비율은 36%, 차입금의존도는 10%로 매우 우량하다”고 주장했다.
영풍그룹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회사다. 현재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각각 경영하고 있다. 영풍과 MBK는 이달 13일부터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선 상태다.
또한 MBK는 이번 공개매수 시도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에 대해 "경영권 강화 후에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해외투자를 지양하고, 고려아연 본업의 경쟁력과 수익성 있는 신사업 경쟁력이 강화되도록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이 울산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MBK의 주장은 곧바로 지자체와 지역정치권, 노조, 기업인,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난 18일 "사모펀드의 주된 목표는 단기간 내 고수익 달성"이라며, "고려아연 인수 후에 연구개발 투자 축소, 핵심인력 유출, 해외 매각 등이 시도될 가능성도 있다. 기업 경쟁력 악화는 물론, 울산의 산업 생태계 전체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한국타이어, 고려아연 주식 공개 매수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사모펀드의 역할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MBK는 지난해 말에도 한국타이어 경영권 분쟁에 개입해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경영자인 조현범 회장과 맞서던 그의 형 조현식 고문과 손잡고 당시 1만6000원대였던 회사 주식을 1주당 2만원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경영권 확보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약 보름 만에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 사이 한국앤컴퍼니 안팎은 혼란이 컸다. 최대 30% 넘게 오른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손실을 본 투자자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앤컴퍼니는 작년 253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역대급 실적을 냈지만 빛이 바랬다. 경영진의 장악력이 약한 기업이란 이미지만 남았다. 반면 MBK는 공개 매수에 실패하면서 이 기간 약정한 주식 매입도 하지 않은 만큼 별로 손해가 없었다.
재계 안팎에서는 국내 1위 사모펀드 MBK가 위상에 걸맞지 않게 본질을 비껴간 투자로 혼란만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딜라이브, 네파, 홈플러스 등 총 10조원 넘게 투자를 한 기업에서 수년째 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다 보니, 주주 장악력이 취약한 기업의 경영권을 노려 단기간에 이익을 내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MBK에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연기금이 출자하고 있다. 국민연금법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수탁하는 수탁자로서 위탁운용사 선정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책임투자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돈으로 세계적인 국내 비철금속 제련업체를 공격하는 행동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MBK는 고려아연 경영진의 무능도 지적하고 있지만, 기실 자신들의 비철금속 업종의 전문 경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MBK와 같은 사모펀드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대표적인 모험 자본이다. 자금력이 부족하지만 역량 있는 기업에 과감히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게 2004년 사모펀드 설립을 허용한 이유였다. 다수 사모펀드는 최근까지 기업과의 건전한 긴장 관계 속에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금을 투입하고 오너 일가 대신 구조 조정을 하며 경쟁력을 높였다. 주요 주주로서 기업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례도 많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모험자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감시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며 "또한, "포이즌 필(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과 같은 적대적 인수 시도에 대한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장치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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