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밸류=한시은 기자] 이봉창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이봉창 의사 의거 제94주년 기념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이날 사단법인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은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 이규중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보훈 관련 인사와 일반시민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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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일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가 제94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을 거행했다./사진=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제공 |
이봉창 의사(1901.8.1~1932.10.10)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고자 1931년 1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거사를 준비했다.
이 의사는 1931년 12월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했다. 이듬해인 1932년 1월8일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동경 경시청 앞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동경 대심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동경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렸을 뿐 아니라, 침체기를 겪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선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의거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봉창 의사는 1962년 우리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수여받았다. 다만 현재까지도 최고 건국공로훈장인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지 않아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의사의 의거는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을 대상으로 의거를 거행하며 장제스 국민당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는 등 독립운동에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폭탄 투척 행위만으로도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이기에 이 의사의 의거가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기억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봉창 의사 선양사업에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 사위인 김 회장은 후손 없이 순국한 이봉창 의사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 듣고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를 재건해 회장을 맡았다.
독립운동의 가치가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며 사재를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하는 등 선열들의 뜻을 계승하고 확산하는 데 앞장서 왔다. 또 김 회장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 독립기념관 이사 등을 역임하며 다양한 독립유공자 지원 사업에 힘써왔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기념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봉창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감사와 존경의 의미가 확산됐으면 한다”며 “특히 이 의사의 의거는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린 성공한 의거라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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