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3차 공판 출석/사진=연합뉴스/ 이덕형 칼럼 |
"패자즉적(敗者卽賊)", 즉 "패하면 곧 도적"이라는 말로 중국 고대 초한전쟁(楚漢戰爭)에서 유래했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한나라를 두고 싸운 전쟁(기원전 206~202년)에서 유방이 승리해 '한고조'가 되었고, 항우는 패하여 도주 끝에 자결했다. 항우는 스스로를 '패장(敗將)'이라 칭하며, "패배한 자는 도적일 뿐이다"라고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말에는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말이 있다. 쿠데타든 비상조치든 성공하면 국가를 지킨 군대가 되고, 실패하면 반역자가 된다는 냉혹한 권력의 이치를 보여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12·3 비상계엄 시도에서 결국 실패했고, 오늘 그는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됐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윤 전 대통령에게 세상은 오로지 유죄 아니면 무죄였다. 정치도 그렇게 보았다. 타협 없는 싸움, 오직 적과 아군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은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 아니라, 조정하고 포용하는 정치인이어야 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극적인 반대편에 있었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이겨내고 대통령이 됐다. 권좌에 오른 뒤에도 과거 자신을 핍박한 이들을 용서하고, 심지어 끌어안았다. 야당과 협치하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때로는 양보했다.
그에게 정치는 유죄·무죄로 가를 수 없는 인간사의 복잡함을 품는 일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 점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검찰의 논리로 국정을 다루려 했고, 협치 없는 정치는 외통수였다. 결국 그가 혐오했던 '범죄자'라는 심판대에 자신이 서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더 이상 정치를 전쟁터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포용하고, 대화하며, 타협하는 리더십만이 나라를 살리고 국민을 달랠 수 있다. 정치가 승자독식의 게임이 아닌, 국민 전체를 위한 책임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관군이냐 역적이냐를 가르는 것은 칼이 아니라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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