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사스, 메르스, 코로나19가 있다면 20세기에 가장 크게 유행한 것은 “스페인 독감”이었습니다. 오늘날 독감(인플루엔자)은 예방접종 주사를 통해 항체를 생성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100년 전까지만 해도 역사를 뒤흔든 공포의 질병이었죠. 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사람이 1,500만 명,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수는 5,000만 명이 넘어 당시 대재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시기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18년 무오년, 조선총독부 통계로 14만 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고 기록되었죠. 당시 우리나라에선 무오년 독감, 무오년 역병이라고 불리며 많은 국민들을 어려움에 빠뜨린 것이 바로 스페인 독감이었습니다.
![사진: 에곤 실레, 자화상, 1912. [제공 = 아트램프]](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01130/p179590132489486_865.jpg)
오늘 소개할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에곤 쉴레도 스페인 독감 감염 희생자 중 하나였습니다. 쉴레는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우아하면서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드로잉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Self-Portrait)뿐만 아니라 여성의 누드화, 성과 죽음에 관해 적나라한 묘사를 이어갔는데, 여기엔 쉴레가 15살 때 아버지가 매독으로 사망한 것에 연관이 있었습니다. 엄하고 고지식한 아버지의 억압 속에 자라다가 결국 그의 아버지가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죽는 광경을 지켜보게 된 것이 그의 화풍에 영향을 끼친 것이죠.
![사진: 에곤 실레, Lovers, 1914-1915. [제공 = 아트램프]](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01130/p179590132489486_212.png)
그 뒤로 쉴레의 그림은 선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럽 도처의 화랑에서 인기를 얻으며 많은 전시와 판매를 하게 됩니다. 쉴레의 모델이 되려는 사람들은 줄을 서기 시작했죠. 하지만 미국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에 퍼진 이 무서운 독감 바이러스는 쉴레 부부가 있던 빈(Wine)까지 덮치고 맙니다. 당시 에곤 쉴레의 부인 에디트는 임신 6개월째라 더더욱 독감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약속을 취소하고, 집 밖을 나가지 않으며 뱃속에 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사진: 에곤 실레와 부인 에디트 ⓒ Wikimedia Commons [제공 = 아트램프]](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01130/p179590132489486_460.jpg)
하지만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에디트가 먼저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하게 됩니다. 에곤은 절망과 슬픔을 누릴 새도 없이 3일 뒤 같은 인플루엔자에 감염이 되었고, 그 이튿날 눈을 감습니다. 화가로서 높은 명성과 부를 목전에 둔 28살의 나이였죠. 많은 구설수와 스캔들, 상처, 고독, 열정으로 치닫았던 그의 삶은 그렇게 황망하게 끝이 났습니다. 에곤 쉴레가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었더라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 독창적인 화가로 인해 세계 미술사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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