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는 김혜리 작가의 에세이다.
다음은 책에 수록된 소개 글이다.
「대체로 폭풍우 같은 감정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지만 때론 삶이 기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는 것이 버겁고 힘겨웠지만 때로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새삼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마냥 좋기만 한 삶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기에, 또한 누구나 저마다의 짐을 지고 외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는 삶의 정률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엄살을 피우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이 책에 실은 글에는 그 마음들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김혜리 작가의 에세이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는 작가만의 깊이 있는 삶의 고찰과 성찰로,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저자 소개
저자: 김혜리
마음의 깊은 심연에서 긁어낸 부스러기를 모아 쓰고 있습니다.
목차
열며
살아낼 작정이라면 9
삶의 기록들
모든 요란함 속에서 17 / 구구단을 외던 아홉 살 23 / 내 꿈은 소시지 반찬 27 / 단상 #1 '그것만이 내 세상' 35 / 새해 첫 새벽의 꼬치집 37 / 필담 41 / 나의 시절, 나의 오빠 43 / 단상 #2 어쩌면 고독이란 그런 걸지도요 49 / 지난날의 피앙세 반지 51 / <블루 발렌타인>과 <그랑블루> 59 / 2만 원짜리 운동화의 무게 65 / 그곳에 앉아 한참을 울었네 75
그리고 우울,
열두 살 그 애 上 87 / 열두 살 그 애 下 95 / 단상 #3 가뭄 101 / 세상은 나를 배신했고 나는, 103 / 죽음에 부쳐 107 / 단상 #4 자아비판 115 / 쓰고 싶은 건, 불행과 불운 1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어 불능의 방어 125 / 아린 마음은 부서지는 포말에 실어보내며 131 / 나이가 들어가는 일 135 / 단상 #5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어야 해 141 / 운명을 생각한다 143 / 단상 #6 봄 151 / 오늘에 이르기까지 153
닫으며
깊이 모를 마음을 오롯이 담아 161
본문
어쩌면 고독이란 그런 걸 지도요.
사람 맘이 다 내 맘 같지 않을 때. 나름 한다고 했는데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한 게 나은 결과에 이를 때. 사방 천지에 뚜렷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거울에 비친 얼굴조차도 흐릿할 때. 내가 틀렸나 아니었나 되돌아보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을 때.
옳다고 믿었던 나의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쌓이고 쌓여 덩어리가 되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한데 뭉칠 길 없이 단순히 초 분 시의 조각조각으로 흩어져 버린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다 너무나 아득해져서 고개를 들었는데, 저 넓은 밤하늘에 단 하나의 반짝임조차도 보이지 않을 때. 흩어져 없어진 지난 시간들처럼 하늘도 까맣기만 할 때, 닿을 곳을 잃은 아득한 눈길.
어쩌면, 고독이란 그런 걸 지도요.
- '단상 #2 어쩌면 고독이란 그런 걸 지도요' 중에서 -
결핍의 기억은 충만의 기억보다 선명하다. 기쁨보다 슬픔이. 행복보다 우울이. 평안보다 분노가 더 강렬한 감정으로 남곤 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결핍은 창피와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한데 뭉친 슬픔이 되어 내 살덩이에 크게 잇자국을 냈다. 그리하여 가난의 기억으로 점철되었던 시절의 내 살덩이는 늘 물러 있었고 늘 덧났으며 늘 붉은 채였다. 어른들의 근심으로 가득 찬 세계에 너무 일찍 던져졌던 웃자란 마음은 결핍의 틈바구니에서 우울을 낚았고 애수를 주워들었다. 달리 둘 곳 없는 그 잘은 마음들을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마음이 섦어질 때면 고사리손을 깊이 넣어 만지작대곤 했다.
그 시절의 나에겐 '내 것', '내 물건'이라는 소유의 정의가 흐릿했다. 대중없이 얻어 입은 옷과 얻어 신은 신발, 얻어 멘 가방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동네 언니들과 또래를 거쳐, 어떤 옷은 두 명의 사람을 거쳐 내게 왔고, 어떤 신발은 누가 샀지만 신지 않아 내게로 왔다. 그야말로 대중없었다. 나는 붉은색 티셔츠에 초록색 바지, 검은색 티셔츠에 주황색 바지를 입었다. 사춘기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은, 신발 본래의 기능에만 충실한 희고 큰 운동화를 신었다.
- '2만 원짜리 운동화의 무게' 중에서 -
작은 정성들 틈에서 충분히 분에 넘치는 연말을 보냈다.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새로운 해를 손꼽아 기다리는 세상은 반짝반짝 빛났고, 지나는 곳마다 설렘에 찬 얼굴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의 얼굴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사람들 틈에서 외롭지 않게, 아주 길고 길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사랑받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겨울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아늑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저녁시간의 아름다움을 곱씹을 때, 문득 열두 살 그 애의 그림자가 사무쳐왔다. 스무 살 무렵. 나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물음표를 던져주고 떠나간 그 애. 기쁘고 행복한 삶의 순간이면 어김없이, 기쁨에 겨운 나의 뒷모습을 똑똑 두드리는 그 애.
- '열두 살 그 애 下' 중에서 -
나는 불행과 불운을 믿는 사람이다. 우연적으로 행복한 순간이 있을 수는 있어도, 필연적으로는 불행의 기조로 건조된 거대한 쳇바퀴에 속박된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삶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수많은 영화와 소설의 해피엔딩을 의심한다.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끝내 새로운 꿈과 희망으로 동화적 믿음을 선사하는 결말을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살면서 우리가 처하는 많은 곤경과 고비들, 그리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다시 일어날 힘을 오래도록 혹은 영영 찾지 못하게 되는 계기들을 떠올리면 나는 도통 희망적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비관적인 심사心事임을 안다. 삶에 섣불리 애착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사고방식의 고약함을 잘 안다. 그러나 경험으로 얻어진 어떤 생각들은 뼈와 살에 새겨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법이다. 뼛속 깊이 스며든 그 마음의 작동은 내 의지의 영역 밖에 있다.
- '쓰고 싶은 건, 불행과 불운' 중에서 -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여수를 떠난다.
여수라는 도시가 가진 특별한 주파수, 애수에 물든 노을은 섬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이쪽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저 건너편 육지에서는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려왔다. 몇 번이고 들이친 파도에 판판하게 다져진 모래사장이 꾹 팰 만큼 옹골진 발로 흙을 디디며 놀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비치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 이 쪽 편의 외로움은 아랑곳 않는 해맑음에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아렸다.
파도가 들이쳐 모래가 젖는 경계선에 쪼그리고 앉았다. 발끝까지 밀려든 파도는 포말이 되어 하얗게 부서졌다. 불에 탄 듯 달아오르던 노을이 잦아들고 하늘 저 너머가 가뭇해질 때까지 그곳에 앉아 파도를 바라봤다. 파도는 지치지도 않았다. 여전히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는 물결치는 소리가 선명했다. 육지에 닿기 위해 서로 앞다투어 어깨를 스치는 물결의, 파도의 움직임이 별안간 사투처럼 느껴졌다. 덮쳐오는 쓸쓸함에 코끝이 싸했다. 세찬 바람에 시려오는 눈시울을 핑계 삼아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이토록 외로운 바다 앞에서는 나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울고야 말았을 거였다.
- '아린 마음은 부서지는 포말에 실어보내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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