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기획 연재 7화 :그들은 왜 서점을 열었는가?] 아름답고 무용한 '아무책방'

기획·연재 / 강문영 / 2020-06-09 13:16:00
인문학과 시집 그리고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는 곳

세상에는 많은 인연이 있다



창가에 기대 보고 있는 바깥 풍경


손가락 마디마디 스며드는 봄바람


길을 거닐며 코 끝을 간지럽히는 나무 내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듯이


내 오감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인연이다



그런 수많은 인연 중


서가를 둘러보다 눈에 띄어


내 손이 이끌리게 한 그 책


그 책과의 만남을


뜻깊은 인연이라 생각하는



아무책방을 만나고 왔다




Q. '아무책방'은 어떤 곳인가요?


A. 우선 작년 7월 말부터 시작을 했고 시립대 주변에 위치해 있어요. 그래서 시립대 학생들이 많이 오고 있고 주변 동네 분들도 들르시고 있죠. 다른 책방과는 다르게 이곳이 핫플레이스가 아니라는 점. 그래서 정말 말 그대로 동네 책방 이미지예요. 주변에 서점이 없어요. 시립대뿐만 아니라 경희대, 외대, 한예종까지 서점이 없어서 다른 대학생들도 오고 있어요. 잘 되는 책방은 절대로 아니에요. 하루에 소소하게 오는 정도랍니다.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29길 29에 위차한 '아무 책방' 내부 모습이다.[출처: 강문영 기자]


Q. '아무책방'은 무슨 뜻인가요?


A. 아름답고 무용한 책방의 줄임말이에요. 책들도 문학이랑 인문학과 독립출판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어요. 지금 사회가 너무 경쟁 구조잖아요. 목표 지향적인 사회에서 계획을 세워 쫓아가야 하는 그런 답답함에서 조금은 탈출구가 되는, 쉼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목표에 개의치 않고 책을 읽고 쓰고 책방을 오고 가는 것들이 오로지 즐거움과 하고 싶어서였으면 해요. 그리고 그때의 가장 큰 기쁨을 누렸으면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아름답고 무용한'이라고 지었습니다. 얽매이지 않는 느낌에서.



그림책 서가 옆에 책 표지들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독립출판물



Q. 서점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책을 좋아해서? 너무 형식적인 답변이었나요. 맞아요. 직장생활을 하다가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책을 읽는 게 친구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그런 느낌. 가만히 있어도 조용히 마음을 쓸어주는 그런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일반 서점에서 1년 동안 일을 했어요. '그래, 한 번 서점에서 일을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시작을 했어요. 대형서점은 아니었고 그 지역에서 문제집을 많이 파는 서점이었는데, 1년 정도 일하다가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이 생기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시작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시작하셨는 데, 주로 어떤 책을 즐겨 읽으셨나요?


A. 처음에는 소설을 읽었어요. 친구들이 김현수 작가, 한강 작가들의 책들을 추천해 줘서 보다가 우연찮게 시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수업에서 조원 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모두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시 수업을 들으면서 시가 좋아졌죠. 그 이후에도 시 수업을 들으러 다니곤 했어요.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29길 29에 위차한 '아무 책방' 내부 모습이다.[출처: 강문영 기자]


Q. 서점을 다른 지역에도 운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립대 주변에서 시작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제가 사는 곳은 고대 정문 쪽이에요. 고대부터 쭉 돌아서 동덕여대, 외대, 한예종, 경희대까지 다 돌아봤는데 여기가 가장 싸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딱 보고 여기다 싶었어요.



Q. 책방 소개해 주실 때, '아무책방'에는 인문학과 시집 그리고 독립출판물들이 주로 있다고 하셨는데 독립출판물을 입고 받으실 때 선정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A. 선정하는 기준은 없어요. 입고 요청이 들어오는 건 모두 'YES' 하고 있죠. 처음 서점을 시작했을 때 저는 독립출판물에 대해 잘 몰랐어요. 본인이 직접 책을 내는 게 용기도 있어 보이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 동네에 그런 책을 소개해 주는 곳도 없고 내가 잘은 모르지만 서가 한편에 두고 이런 책들이 있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이런 걸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Q. 서가 공간은 한정적인데 입고 요청이 들어오는 책을 모두 받으시면 모두 소개하기 어렵지 않으신가요?


A.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고요, 앞으로 서가를 더 만들 예정이에요. 도서 배치를 보면 그림책과 독립출판물이 함께 있고, 독립출판물은 최대한 정면이 보이게끔 두려 하는 데 공간이 모자라기 시작하면서 다시 책등만 보이고 있네요. 하하. 맞은편은 기성 출판사 단행본으로 문학이랑 인문학 쪽이고, 뒤쪽은 시집이랑 클래식 고전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섞여 있어요. 주로 제 느낌대로 배치를 하는 편이에요.



Q. 책의 중요성은 모두가 잘 알지만 막상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이 오시면 어떤 책을 권유해 주시나요?


A. 저는 그런 측면에서 불친절한 것 같아요. 하하. 누가 요청하기 전까지는 권유는 하지 않아요. 저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스스로 보게끔 하는 편이에요. 서가에 있는 책들 제목도 보고 표지도 보고 그 안에 목차도 보고하는 거죠. 저는 책과의 만남이 '인연' 같아요. 물론 가이드가 있으면 좋겠지만 한 권을 골랐을 때, 그 책과 만났을 때, 나와 마주친다는 느낌이. 그것도 선택이 되고 나도 책에 의해서 선택된 느낌. 책과 마주한 느낌을 가져보시는 걸 추천해요.




Q. 책방에 들어오는 책들은 거의 다 읽어보셨나요?


A. 그러진 못했고요, 한 작가의 작품이 좋으면 시리즈라고 하긴 그렇지만 그 작가분이 쓴 다른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신간으로 나온 것들 중에 괜찮은 것들이 입고되면 단편 소설 같은 경우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중에 한 권은 읽어보고요. 여기에 있는 책들을 다 읽어보진 않았어요. 대신 '아, 내가 책방 망하기 전까지는 다 읽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있는 책들이에요. 하하.



Q. 책방에서 추천해 주실만한 책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인생 책이라던지.


A. 제가 지금 '사무엘 베케트'의 '몰로이'를 읽고 있는 데, 혼자 읽으면 약간 이 사람이 중얼중얼 거리는 느낌을 받아서 계속 실패하게 되더라고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렇다라고들 하시는데 낭독 모임에서 같이 읽으면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러고 집에서 다시 읽어봐요. 자꾸만 보고 싶은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읽다 보면 유머도 읽고 철학이나 종교에 대해 생각도 하게 되는 매력적인 책 같아요.



Q. 낭독 모임에서 다른 분들과 책을 함께 읽는다고 하셨는데, '아무책방'에서 운영하고 있는 모임이 어떤 게 있나요?


A. 하나는 '희곡 낭독'모임을 하고 있어요. 매주 수요일마다 하고 있고 지금은 '1도씨 희곡선' 이라는 책을 낭독하고 있어요. 이 책을 입고 받고 '사람들과 같이 읽으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분짜리 희곡들이 한 30편 정도 모여있는데 매주 하루에 두 편씩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다른 하나는 '소설 낭독'모임인데요 이건 매주 목요일 저녁에 하고 있어요. 사실 모임 이름은 '아무페이지'예요.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좋을 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있어요. 다르게 말하면 소설인데 서사가 없는 책인 거죠. 줄거리가 기승전결이 없고 어떻게 말하면 시적인 소설들이라고 할까요. 베케트 작법이 그런 식이예요. 이 모임에서는 첫 작가로 '사무엘 베케트'를 선택했고 작품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몰로이'예요. 이 작품이 끝나면 베케트의 번역되어 있는 다른 작품들도 다 읽을 예정이에요.



Q. '아무책방은 쉼터다'라고 하셨는데, 이 이미지 외에 다른 독립서점들과 다른 '아무책방'만의 매력이 있으신가요?


A.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서점들은 더 북적이지 않나요? 하하. 동네분들이 그러셔요. 주말에 다른 데 가봤더니 발 디딜 곳조차 없이 사람이 많았다고요.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하면서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다른 독립서점들은 너무 유명해서 북적댄다면 우리는 한적한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이웃 주민이 선물해 주신 타자기와 독립출판물



Q. 작년 7월부터 약 8개월 동안 운영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보람차거나 뿌듯했던 일들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A. 에피소드는 거의 매일 있는 것 같아요. 손님이 들어오면 이 공간이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해요. 그래서 다 에피소드로 남는 것 같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안 오니까 저는 다 기억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책이 판매가 되면 그 사람의 특징을 메모하고 있어요. 에피소드는 참 많은데요. 동네분 중에 한 분이 '아이스크림 2+1이어서 내 거랑 내 아들 거랑 사장님 거랑 해서 샀어' 하시면서 가시는 단골 아주머니도 있으시고요. 자주 오는 학생들은 오며 가며 인사도 자주 해요. 여기 앉아있으면 다 보이거든요. 그분들이 지나가면 다 저를 보셔서 눈이 마주치면 목례도 하고요. 그리고 와서 선물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이것저것 먹을 것부터 해서 방학 동안 해외여행 다녀와서 찍은 사진들도 선물로 주셨어요. 저는 정말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Q. 그럼 반대로 서점을 운영하시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A. 힘들었던 점은 경제적인 거죠. 그거 말고는 정말 다 좋은 것 같아요. 책방 한다는 게 보람차요. 제가 시집을 많이도 아닌 데 신기한 건 이렇게 꾸려진 서가에서 책을 사간다는 거예요. 여기에 와서 안 살 것 같은 책을 사가시는 게 아직 신기해요. 학생들 중에서는 시집을 처음 산다는 학생도 꽤 있었고요. 그런 학생들이 시집에 매력을 느끼고 또 사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Q. 처음에 책방을 시작하실 때, 인테리어라던가 도서 배치 같은 것들은 어떻게 기획을 하셨나요?


A. 제 스타일로 하나하나 꾸며나가다 보니 이런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찾아와 주시더라고요. 제가 그게 책방을 하면서 느낀 점이에요. 저는 절대로 미적감각이 있는 편이 아니거든요. 꾸미는 데도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벽지에 바를 페인트 색을 제가 골랐는데 친구들이 페인트 뚜껑을 열고서는 '아, 망했다..'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너무 스머프 색이라고. 근데 칠하고 벽돌 서가가 들어오니까 너무 잘 어울리게 된 거죠. 그래서 지금은 '아무책방'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어요. 파란 벽과 빨간 별도 서가. 그렇게 많이 기억을 하시더라고요.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가에 온 느낌이고 겨울에는 화롯가 같은 느낌이라고들 하셔요. 그리고 저는 깔끔한 성격이 아니라 무언가 들어오면 그냥 벽에 붙여보고 그래요. 꽃 선물을 받았는데 말려서 선반에 올려도 보고. 이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조화를 이루는 거죠. 그리고 이런 걸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고요. 제가 만약에 회사에 속해서 하는 거면 이렇게 못했겠죠. 회사의 이미지에 맞춰 꾸몄어야 했을 텐데 그럼 깔끔하고 모던할지 몰라도 재미는 없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간은 누가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요.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29길 29에 위차한 '아무 책방' 내부 모습이다.[출처: 강문영 기자]


Q. 혹시 직접 책을 출판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A. 아직 책을 출판하진 않았어요. 서점을 시작할 때 먼 훗날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고요. 책을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잖아요. 시 수업도 그래서 듣기도 했고요. 근데 책방을 시작하면서 '나도 곡 책을 출간해야겠다'라는 아니어도 '꾸준히 써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일기만 쓰고 있습니다. 하하.



Q. '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친구' 같아요. 부담되지도 않고. 가끔 부담되는 인문서적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어쨌든 그것도 저한테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라고 생각하고요. 문학과 독립출판물 모두 만들어 내면서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해 주는 하나의 친구가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늘 그 자리에 있는 친구. 시끄럽지 않고. 그런 책방이 되고 싶기도 해요. 책이 나한테 그랬듯이 손님들에게 '아무책방'도 늘 이 자리에서 언제든 오면 열어 볼 수 있는 그런 책방이고 싶네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


A. 모두가 제 숨을 살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숨을. 제가 한 말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한 말인데요. 그 말에 많이 동의를 해요. 제가 제 숨을 쉬기 위해서 책방을 하는 거고요. 다른 분들도 이 책방에 오면 숨을 트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본인의 숨을 쉬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일상을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언제 오더라도


아무 때나 오더라도


아무나 오더라도



환대 받는 곳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한참을 인터뷰를 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서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졌다.



아늑하고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이곳에서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언니의 방에 놀러 가


수다를 떨며 편안한 느낌을 받은



아무책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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