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작가 기획 연재 15화 : 그들은 왜 책을 만들었는가?] '웃_픈' 박지윤(에리카 팕) 작가

기획·연재 / 강문영 / 2020-06-03 15:49:00
제가 추구하는 글쓰기도 그래요. 문장 뒤에 삶이 있고 장면이 있는 그런 문장이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책 소개 부탁드려요.


[웃_픈]이라는 책은 제가 23살부터 적었던 글을 모아서 낸 책이에요. ‘웃_픈’이 웃기고 슬픈 이야기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좀 세속적인 이유가 숨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려면 제목이 특별해야 할 것 같았어요. 튀어야 하는 거죠. 제가 독립서점에서 책 만들기 워크숍을 통해서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 진행하는 선생님도 기존에 생각했던 제목도 좋지만 좀 더 다른 제목을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목이 이모티콘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_ㅠ’ 이 제가 회사생활 시작하면서 자주 쓰게 된 이모티콘 이었거든요. 이모티콘으로 제목을 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었는데 읽을 수 있도록 ‘웃_픈’이라는 음을 달아둔 거였어요. 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쓰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읽다 보니 웃기고 슬픈 이야기들도 많이 있더라고요. 제가 대학생부터 취준생을 지나 직장인이 될 때까지 쓴 글이다 보니 웃기고 슬플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독자분들에게 자기소개도 부탁드립니다.


2017년에 28살 직장인을 살아내고 있는 박지윤이자 [웃_픈]을 쓴 에리카 팕입니다



'웃_픈' 저자 박지윤(에리카 팕) 작가가 강문영 기자와 인터뷰하는 모습이다.[출처: 강문영 기자]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예전부터 카피라이터가 꿈이었어요. 광고인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는데 예상과는 다른 전공과 직업을 갖게 되다 보니 글을 쓰면서 카피라이팅에 대한 욕구를 분출할 곳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가장 글을 활발하게 썼던 곳은 싸이월드 게시판이었는데, 플랫폼이 세대교체가 되면서 인스타그램에 짧게 짧게 쓰게 되었어요. 쓰다 보니 카테고리가 대충 정해지더라고요. 제 이야기, 가족 이야기, 직장생활 등으로 범주화가 되었어요.



[웃_픈]에 담긴 이야기는 평소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신 건가요?


그렇죠. 평소 드는 감정들, 대부분의 분들이 SNS에 자기감정 쓰듯이 쓴 것들이 많아요. 올렸던 글 중에서도 문장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웃_픈에 담게 되었어요. 일부분은 카피라이팅 연습을 목적으로 썼던 것도 있고요.



[웃_픈] 작업 과정 중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제작 작업 자체는 생각보다 속도가 빨리 진행됐어요. 그리고 직장인으로 살면서 잊었던 제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느낌이라 회사일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유통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고요. 서점에서 직접 입고 문의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죠. 제가 메일로 연락을 드리면 흔쾌히 반겨주는 서점 사장님들도 계시지만, 서점에 재고가 너무 많이 있다든지 아니면 서점 컨셉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곡히 거절하는 서점도 있더라고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책 소개메일을 드릴 때, “장르가 생(각이)트(이는 대로)집(필한 글들)이라 생트집이다. 기존 장르로는 시집에 가깝다” 라고 덧붙여 보내는데 ‘시집 같은 시집’은 받지 않는다고 거절을 당한 경우가 있었어요. 이 말을 듣고 소개문구도 다시 정비하게 되었고, 제 책도 자기검열 해보게 되었어요. 또 하나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제가 책을 쓰는 이유는 저의 자아를 채우기 위해 하는 일이기도 한데, 주변에서 ‘이거 하면 돈이 돼?’ 라는 수입과 관련한 질문들(?)을 하시면 좀 속상한 마음이 들어요.



언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스물 다섯 때까지만 해도 버스만 타도 드는 생각이 많아서 쓰고 싶은 글이 많았는데, 요즘엔 감정이 닫힌 느낌이 들어요. 입사 1, 2년 차 때만 해도 힘들면 힘든 대로 글을 썼어요.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주로 쓰게 됐는데, 지금은 아예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몸이 점점 경제적으로 바뀌는 기분이에요. 일 할 때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니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쓰는 말만 쓰고 반복된 일상생활을 하면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길이 닫히게 된 것 같아요. 요즘은 주로 잠들려고 할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를 해 놓는 편이에요. 새벽 감성으로 글이 잘 써지잖아요. (웃음)



인생에서 가장 '웃픈'때는 언제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웃픈 기억이라면 사실 잘 떠오르지 않는데 가장 웃픈 존재라면 저한텐 가족 같아요. 제일 행복하고 반면에 너무 슬픈 게 가족이잖아요. 제가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더 힘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가족들 생각하면 힘이 나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더 빠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가족이란 게 양면적이기 때문에 짐이 되기도 하지만 옆에서 가장 힘이 되기도 하잖아요. 가족 때문에 힘이 들다가도 가족 때문에 힘을 낼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저한테 가장 웃픈 존재는 가족이에요. 그래서 회사에 ‘가장 큰 짐이자 가장 큰 힘이고 그 짐을 이겨내는 힘’이라고 엽서를 만들었더니 가장이신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더라구요.



'웃_픈' 저자 박지윤(에리카 팕) 작가가 강문영 기자와 인터뷰하는 모습이다.[출처: 강문영 기자]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 많이 있던데, 어머니가 굉장히 유쾌하신 분인 것 같아요.


저는 저희 엄마가 세(상에서)젤(제일)웃(웃긴사람)이에요. 저는 저희 엄마만 보면서 자라다 보니까 “엄마란 존재란 응당 웃긴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위트 있는 글 쓰는데 엄마가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저희 엄마가 화법이 재밌어요. 엄마가 말을 많이 하시고 표현을 잘 하는 편인데 제가 월급 타서 맛있는 걸 사드리고 싶어서 불고깃집을 갔더니. 불고기가 맛있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마치 무슨 라디오 광고처럼 말하는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엄마, 이거 녹음 들어가자.’하고 녹음을 시작했어요. 엄마도 처음에는 부끄러워하셨는데 금방 적응하시고 라디오 광고마냥 녹음을 해 주신 적이 있었어요.



또 다른 에피소드도 있나요?


제가 독립해서 살다 보니 비타민을 많이 챙겨주세요. 그러면서 이 비타민이 왜 좋은지 설명을 해주세요. 그냥 잤을 때와 이 비타민을 먹고 잤을 때가 어떻게 다른지 정말 재밌게 설명을 해서 그걸 제가 녹음을 했더니 마지막에 ‘OO 약품’이라고 광고처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협찬받은 줄 알았어요. (웃음)



‘이과는 엑셀같이 말하고, 문과는 워드같이 말하다가도 취준생이 되면 피티같이 말한다. 그러느라 말하듯 말하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닐까.’라고 표현하셨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말하듯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취업 준비를 할 때 면접 스터디를 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거든요.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놀랐어요. 보통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문장을 꼼꼼하게 신경 쓰면서 얘기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면접 화법에 익숙해지다 보니 원래 자기 말투를 잃어버리게 되고 신입사원일수록 그런 말투가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았어요. 사람이 말을 할 때마다 완벽하게 문장을 구사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말하지 않는 시간의 침묵도 대화고 충분히 생각을 하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말하는 게 ‘말하듯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에서 행간에도 의미가 있다고 하잖아요. 띄어쓰는 두 줄이 오타가 아니라 다 의미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침묵이 있다고 해서 대화를 안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입사 후 신입 시절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신입사원으로 처음 배치된 곳이 원하던 부서배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불만이 많았어요. 또 계급 문화가 확실한 곳이라 신입 시절에는 안 좋은 기억들이 많긴 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에피소드 하나를 꼽자면, 오래 일하신 수석님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부서 내부 행사 준비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던 적이 있어요. 모든 부서원들이 참여하는 좋은 굿바이 영상을 만들고 싶어서 기획을 했는데 그때 ‘나는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또 그 조직에서 했던 일중에 가장 재밌었던 일 같아서 기억에 남아요.



[웃_픈]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있으신가요?


‘자기소개 1’이라고 책의 제일 앞에 있는 글을 가장 좋아해요. 제가 20년 넘게 살면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아직도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할 말이 많으면 많을 수도 있고 없으면 하나도 없을 수 있는 거잖아요. ‘내 안의 수많은 별들이 있는데 자기소개라는 것에서 이 많은 별들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회사에 입사해서 이 글로 첫 자기소개를 했어요.



‘자기소개’ 글이 굉장히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문체인데요, 이 글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하나 둘씩 성형을 하길래 저도 어린 마음에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아빠한테 말씀을 드렸어요. “아빠 나도 성형할까?” 그랬더니 아빠는 “너 자체가 이미 우주인데 왜 그 우주를 바꾸려고 하냐.”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때부터 나는 우주고 내 안에 별들이 많다는 관념이 생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 있어 제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



작가님은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제가 난독증이 있어요. (웃음) 그래서 책을 정말 안 읽는데 교육청에서 정한 필독도서 같은 게 없었으면 교과서 말고는 아무 것도 안 읽을 뻔 했어요. 대학 때는 읽어야 하는 전공 도서가 있어서 딱 전공 도서 정도 읽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전공이 이탈리아어다 보니까 문학 공부를 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읽어야만 하는 책들은 읽었고 그 외에 책들은 정말 안 읽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때는 추천도서라도 읽었는데 직장인 되고는 책을 더 안 읽다 보니 생각의 폭이 좁아진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다른 작가의 문체를 닮게 될까 봐 걱정이 되더라고요. (웃음)



'웃_픈' 저자 박지윤(에리카 팕) 작가가 강문영 기자와 인터뷰하는 모습이다.[출처: 강문영 기자]


인스타를 보니 춤 실력이 수준급이신데, 취미 활동으로 배우시나요?


엄마가 태교로 춤을 추셨고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축제 때 대표로 춤도 추고 그랬어요. 제가 가진 여러 별들 중 하나인 거라 생각해요. 제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현대 무용 학원을 다니는 동료가 있었어요. 그래서 서로 학원에서 배운 걸 배틀해보자! 그래서 연습실을 딱 한 번 빌렸었는데 인스타그램에 있는 영상이 그 때 영상이에요. 제 인생에서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를 꼽자면 글 쓰는 것과 춤추는 거예요. 춤은 말을 하지 않지만 동작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에서 글과 같은 어투가 있는 것 같아서 글 쓰는 것과 춤추는 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직장생활만 하면서 굳어 있던 근육들을 풀어주면 새로운 생각과 함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배우기 시작한 것도 있어요.


자신의 매력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세요?


매력적인 게 매력인 것 같아요. 보통 못생긴 사람한테 칭찬할 때 ‘너는 매력 있게 생겼다’, ‘너 정말 매력 있다.’ 라고 하잖아요. 근데 그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제가 매력적인 게 매력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책 제목이 [웃_픈]인 만큼 웃긴 이야기뿐만 아니라 슬프고 쓸쓸함이 묻어난 글도 많이 있는데요.


쓸쓸한 글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원래 제목이 ‘괜찮아 씩씩해.’ 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씩씩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싶었거든요. 사실 좋을 때보다 힘들 때 글이 더 잘 써지잖아요. 그럴 때 쓴 글이 많은 분들에게 공감이 되기도 하고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뿜어내고 계신데, 이런 작가님의 외로움 극복법이 궁금합니다.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데 예전에는 많이 울면서 해소를 했어요. ‘울분’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차올랐으면 울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울면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지하철에서도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울고 그랬어요. 요즘은 직장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다 보니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거든요. 책에서는 ‘타인을 이해해야 한다.’,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데 ‘언제까지 나만 그래야 되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힘들 때일수록 글 쓰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풀고 있어요.



현재 작업 중이거나 출판 예정인 작품이 있으신가요?


[웃_픈] 처럼 제목이 이모티콘인 책으로 기획 중인 게 있어요. [웃_픈]에서는 저와 가족,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면, 다음 작품에서는 애정 관계, 인간관계 그리고 제가 예술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고뇌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연애 후 이별 이야기를 ‘웃_픈’보다는 다음 작품에 어울릴 것 같아서 따로 빼두었는데 다음 작품에서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웃_픈]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모두 비슷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다들 비슷한 일을 겪고 사는데 단지 저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을 뿐이거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에게 문학이란?


해방촌이었어요. 과일트럭 아저씨가 하시는 통화를 어쩌다 엿들었었는데 그게 저한테 너무 시같이 들렸어요. '집에 가서 딱히 할 건 없어도 집에 가면 신나잖아~' 한 문장이었는데 문장 뒤에 보이는 장면이 많은 문장이었어요. 제가 추구하는 글쓰기도 그래요. 문장 뒤에 장면들이 보이는 글쓰기를 하고 싶고 그게 제가 생각하는 문학 같아요. 문장 뒤에 삶이 있고 장면이 있는 그런 문장이요.




글도, 말도, 춤도


언뜻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들이 그 이면에 뭉쳐져 있다.



사람은 이러한 고도의 함축과 해석을 매일 같이 하고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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