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연 칼럼] 노벨상을 키워낼 용기

교육 / 한지원 기자 / 2024-10-15 16:26:09
▲ 사진=칸에듀케이션그룹 제공

 

최근 SNS에는 성공을 자극하는 글이나 영상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다음은 ‘도토리’라는 작가가 ‘브런치’ 플랫폼에 공유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10가지 습관’에 필자가 한 가지 가짜 요소를 더해 11개의 항목을 만들어 본 것이다.
 

1. 도전적이어야 한다.
2. 실패에 굴하지 않는다.
3. 남다른 노력을 한다.
4.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5. 집중력이 뛰어나다.
6. 좋은 자원을 확보한다.
7. 수능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다.
8. 문제를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9.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한다.
10.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11. 확보한 자원을 체계적으로 활용한다.

 

어느 항목이 가짜항목인지 눈치챘는가? 7번 항목이 가짜임을 눈치챘다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수능 점수는 대학 입시 외에 큰 쓸모가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7번 항목이 가짜 항목임을 눈치챘다면, 필자는 확신한다.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줄 세워 뽑는 우리나라 대학교 입시 제도가 크게 바뀌어야 함을 알고 있음을.
 

그리고 필자는 감히 주장한다. 바꾸려면 바로 지금이라고.
 

AI 부문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맞고 있는 2020년대는 격변의 시대의 시초로 기록될 것이다. 마치 우리가 1800년대 초반의 ‘증기기관’을 기억하듯 미래의 후손들은 2000년대 초반의 AI 기술이 세상을 바꿔놓았음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1800년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1차 산업혁명을 맞는 우리 선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것인가? 

 

장인의 기술을 이어 나가기 위한 수련공 교육을 받으라고 할 것인가, 제조업의 기초가 될 과학과 기술을 배울 것을 주문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말고도 인구절벽이라는 초유의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성적 좋은 학생‘만’을 뽑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가?

 

‘인구절벽’으로 예를 들면, 급감하는 인구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이를 회피하지 않고 (10번), 도전으로 받아들여(8번) 확보한 자원을 체계적으로 활용(11번) 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이런 덕목은 시험 점수만 높다고 해서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학생이 활동하고 있는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평소에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꾸준한 끈기와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 사진=연합뉴스 제공

 

올해 시카고 대학교는 여름방학 동안 시카고 대학교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심사 후 3주 안에 입학 허가를 내어주는 새로운 입시 제도(SSEN: Summer Student Early Notification)를 발표했다.

 

참신하다. 시험 성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름방학이라는 기간 동안 학생들을 직접 지켜보고 시카고 대학의 기준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부럽다. 시카고 대학교의 새로운 입시 제도가 부럽다는 것이 아니다. 미국 사회가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이 부럽고, 눈치보지 않고 창의적인 입시 제도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부럽다.

 

우리나라에서 시카고 대학교와 같은 시도를 한 학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니다, 일단 이렇게 가정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입시 제도는 그 변화가 크든 작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슈다. 그래서인지 대학들은 여론과 정부의 눈치를 본다. 특히 수능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 입시 제도를 어설프게 들고 나올 경우 엘리트 주의의 공정하지 못한 학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대학들은 헌법에 규정된 대학의 자유를 행사하지 않는다.

 

대법원이 “학생의 선발과 전형에 관련된 사항도 자율의 범위에 속한다”고 확인해줬음에도 공정성 논란에 대한 두려움이 주어진 자유를 포기하게 한다. 흡사 발표하고 싶지만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보느라 손들지 못하는 학생과 같다.

 

안타깝다. 수능 점수에 맞춰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과연 공정한가?

 

모든 학생이 같은 시험을 준비하고, 같은 채점 기준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정하게 공정한 제도는 없다. 학생들 개개인이 태어난 배경이 다르고, 공부하기 위해 받는 지원 또한 다르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에서 모두가 비슷한 경제적 어려움을 갖고 있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빈부격차가 큰 사회에서 모든 학생에게 같은 기준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공정이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차별이 될 수 있다. 서울대 정시 전형에서 강남 3구의 학생이 22.1%을 차지한 것만 보더라도 수능 제도가 더 이상 공정한, 소위 개천에서 용을 만들어내는 사다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다면 바꾸자. 공부를 시키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와 필요에 부응하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과 인구절벽을 두려워 하지 않을,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줄 창의적이고 유연한 인재를 하루빨리 키워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대학이 헌법에 보장된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도록 눈치주지 말자. 재능이 넘치고 용기 충만한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대학입시 때까지 숨죽여 살지 않을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입시제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자.
 

한강(漢江)의 기적에 안주하지 말고, 한강(韓江) 작가 같은 인재를 더 만들어 보자.


* 유호연
- 소셜밸류 발행인
- 칸에듀케이션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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