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서거 6주기...“반도체 초격차·KH컬렉션, 기술강국·문화대국 초석”

K-Biz. / 이국열 기자 / 2026-10-23 15:13:29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 후 20년 만에 메모리 세계 1위
삼성전자 올 2분기 D램 39.4%·낸드 29.3%로 각각 1위 유지
30년 앞서 AI·로봇 융합 내다봐...인재제일·신경영으로 ‘질 경영’ 전환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하는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사진=삼성 제공

 

[소셜밸류=이국열 기자]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서거 6주기(10월 25일)를 앞두고 그의 도전과 유산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1974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뒤 불황 때도 투자를 멈추지 않아 삼성을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키웠다.

 

그가 평생 모은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 점은 유족의 기증으로 국민의 문화자산이 됐고, 지금은 해외 순회전을 통해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당시 반도체를 미래 산업으로 택한 결단이 AI 시대 한국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23일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도전과 유산’ 자료를 내고 그가 기술강국의 기반을 다지고 문화대국의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 반도체 불모지에서 20년 만에 세계 정상

 

이 선대회장은 1974년 자금난에 빠진 한국반도체에 개인 재산을 투자하며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은 핵심 부품을 해외 기술에 의존했고, 1차 오일쇼크로 세계 반도체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하던 때였다.

 

삼성 안에서도 성공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는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삼성은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선언’을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보통 18개월 넘게 걸리던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지었고, 같은 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으며, 이듬해인 1993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다.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약 20년 만에 미국·일본 기업이 주도하던 시장의 정상에 선 것이다.

 

비결은 불황을 기회로 삼은 선행투자였다. 삼성은 1984년 경쟁사들이 4인치 웨이퍼 생산라인을 늘릴 때 6인치로 갈아탔다. 1987년 일본 업체들이 불황으로 투자를 줄일 때는 오히려 새 생산라인을 지었다.

 

1990년대에는 8인치 웨이퍼 양산체제를 먼저 갖췄고, 닷컴버블 붕괴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차세대 기술 투자를 이어갔다. 이런 경영 방식은 기술·원가·생산능력 모두에서 후발주자가 따라오기 어려운 ‘초격차’ 전략으로 굳어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39.4%, 낸드 시장에서 29.3%의 점유율로 각각 세계 1위를 기록했다.

 

◇ 30년 앞서 AI·로봇 시대 예견...‘인재제일’ 경영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뿐 아니라 컴퓨터·소프트웨어·로봇이 미래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내다봤다. 1987년 회장 취임 때부터 컴퓨터 활용에 큰 변화가 올 것을 예견했고, 전자·정보기술이 기존 제조업과 결합해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질 것으로 봤다.

 

1990년대에는 로봇이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면 사람에게 남는 핵심 역할은 창조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기술 융합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생성형 AI와 AI 데이터센터,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는 첨단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재를 꼽았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론을 바탕으로 국적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최고 인재를 확보하는 데 힘썼다.

 

1990년 도입한 ‘지역전문가 제도’가 대표적이다. 직원이 해외에서 오래 머물며 현지 언어와 문화, 시장을 익히도록 급여와 교육비, 체류비를 지원했다. 제도 도입 당시 비서실이 20여 명 선발안을 보고하자 이 선대회장이 규모를 늘리라고 지시해 200여 명을 해외로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1993년 신경영

 

이 선대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양 중심의 경영을 질 중심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상징되는 신경영은 제품 품질뿐 아니라 사람·조직·제도·기업문화까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혁신하자는 것이었다.

 

같은 해 7월부터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하는 ‘7·4제’를 도입해 퇴근 후 어학과 자기계발에 시간을 쓰도록 했다.

 

생산현장에는 불량이 나면 원인을 해결할 때까지 라인을 세우는 ‘라인스톱제’를 적용했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는 품질 기준에 못 미친 휴대전화 등 약 500억원어치 제품을 불태우는 ‘불량제품 화형식’을 열어 품질경영 원칙을 조직 전체에 새겼다.

 

◇ KH컬렉션, 국내 350만명 관람...영국박물관 42년 만의 한국미술전

 

이 선대회장의 유족은 2021년 4월 그가 평생 모은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기증품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전통미술 대표작과 김환기·박수근·이중섭의 근현대미술, 모네·피카소 등 해외 거장의 작품이 포함됐다.

 

서울에서 시작한 기증품 전시는 광주·대구·청주·제주와 경남·부산·울산 등 전국으로 넓어졌다. KH컬렉션 국내 순회전 누적 관람객은 350만명을 넘었다. 단일 컬렉션을 주제로 한 전시 가운데 국내 역대 최고 기록이다.

 

해외 순회전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1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시작한 국외 순회전은 올해 3월 시카고미술관을 거쳐 지난 1일부터 영국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영국박물관이 대규모 한국미술 특별전을 여는 것은 1984년 이후 42년 만이다. 전시는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서화, 근현대미술 등을 통해 2000년에 걸친 한국 예술의 흐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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