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밸류=이국열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수년간 쌓아 온 AI 전환(AX) 경험을 국내 산업계에 처음 공개했다. 성공 사례만 소개하지 않고 시행착오와 이를 해결한 과정, 아직 남은 과제까지 함께 내놨다. AX를 추진 중인 다른 기업들이 실제로 참고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양재 본사에서 국내 기업 IT 리더와 언론을 대상으로 기술 컨퍼런스 ‘소프티어 테크톡 오프데이 2026’을 열고 AX 추진 과정과 적용 성과, 향후 과제를 소개했다고 22일 밝혔다.
소프티어 테크톡은 그룹 IT 임직원들이 한 해 동안 수행한 프로젝트의 성과와 교훈을 공유하는 사내 기술 행사다. 2023년부터 매년 열렸고, 4회째인 올해 처음 외부에 공개됐다. 그룹은 그간의 AX 경험과 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고 공개를 결정했다.
행사는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의 기조연설로 시작해 ▲AI 여정을 위한 준비 ▲AI를 통해 얻은 비즈니스 성과 ▲AI의 미래 등 3개 대담 세션으로 이어졌다. 세션마다 그룹 IT·AI 분야 임원과 실무자들이 패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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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이 21일 서울 양재 본사에서 국내 기업 IT 리더와 언론을 대상으로 ‘소프티어 테크톡 오프데이 2026’을 열고 AX 추진 과정과 성과, 향후 과제를 소개하고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
진 사장은 “AX는 특정 기술 하나를 도입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현대차그룹이 겪어 온 고민은 AX를 추진하는 기업이라면 비슷하게 안고 있는 문제인 만큼 경험을 나누고 의견을 들으며 함께 해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 DX·데이터 기반 먼저 다져
첫 세션 ‘AI 여정을 위한 준비’에서는 AI 도입에 앞서 협업 환경, 데이터 통합, 생성형 AI 활용 환경 등 기반을 어떻게 갖췄는지가 소개됐다.
현대차그룹은 AI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일하는 방식과 데이터 체계 혁신을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DX)을 추진해 왔다.
업무 관리·지식 공유 플랫폼과 클라우드 기반 협업 환경을 도입해 조직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정보와 업무 기록을 한곳에 모았다. 데이터와 IT 시스템의 관리 책임도 일원화하고 부서 간 데이터를 연계해 쓸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 공유 장벽을 낮췄다.
그 결과 전 세계 약 1200만 대의 커넥티드카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해 약 140PB(페타바이트) 규모의 차량 센서 데이터를 확보했다. 수십 개 법인의 고객·품질·판매 등 운영 데이터는 7000개 이상의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통합 관리하고 있다.
생성형 AI 환경도 빠르게 갖췄다. 2023년 선보인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에이치 챗(H Chat)’은 현재 그룹 임직원 70% 이상이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또 자율주행·수소처럼 국외 이전이 엄격히 통제되는 국가핵심기술 분야에서도 정부 방침에 맞춰 클라우드를 쓸 수 있도록 보안 기준을 마련했고, 올해 7월부터 H Chat 활용 범위를 국가핵심기술 부문까지 넓혔다.
◇ 성과 가른 건 플랫폼·신뢰·데이터
두 번째 세션 ‘AI를 통해 얻은 비즈니스 성과’에서는 수요예측·정비·생산 등 실제 업무에 AI를 적용한 사례와 교훈이 공유됐다.
현대차그룹은 시범 운영에서는 성공했지만 현장에 정착하지 못하는 AI 과제가 생기자 ▲공통 플랫폼 구축 ▲현업 신뢰 확보 ▲데이터 관리 체계 세 가지에 집중했다.
우선 검색·챗봇·에이전트 기능을 공통 플랫폼으로 만들어 새 서비스를 처음부터 개발하지 않고 필요한 기능을 골라 빠르게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사업장마다 따로 운영하던 AI 모델도 하나로 모았다. 차량 조립 순서 오류를 잡아내는 차량 식별번호(VIN) 인식 AI는 처음에는 공장마다 별도 모델로 운영됐지만, 단일 모델로 통합된 뒤 현재 국내외 73개 공정에 적용되고 있다.
현업의 신뢰를 얻는 데도 공을 들였다. 실무자가 일일이 입력하던 차량 판매 수요 계획은 AI가 먼저 제안하게 했고, 정비 AI는 공식 매뉴얼에서 찾은 근거를 함께 제시하도록 했다. 실무자가 AI를 쉽게 쓰면서 결과를 직접 검증할 수 있게 해 현장 정착을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데이터 관리 측면에서는 부서별로 흩어진 업무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각 부서가 직접 최신 상태로 관리하도록 했다. 그 결과 찾는 데 약 10분 걸리던 사내 정보를 통합검색으로 약 20초 만에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박근한 현대차·기아 머신러닝랩 상무는 “AI 과제의 성패를 가른 것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현장 문제를 반영한 명확한 문제 정의, 공통 플랫폼, 현업 부서가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데이터 관리 체계였다”며 “현장의 제약을 하나씩 풀어내며 구축한 시스템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에이전트 관리·GPU 인프라로 다음 단계 준비
마지막 세션 ‘AI의 미래’에서는 AI 활용이 전사로 확산되면서 새로 생긴 과제와 대응 방향이 논의됐다.
현대차그룹은 비개발자 임직원이 AI로 직접 만든 업무 도구를 동료들과 함께 쓸 수 있도록 사내 서비스로 배포하는 플랫폼 ‘에이치 런치(H-Launch)’를 이달 선보인다. 개인 PC에만 머물던 도구를 조직 전체의 자산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AI 에이전트가 업무 시스템과 연동되는 상황에 대비한 관리 체계도 구축한다. 직원 사번처럼 에이전트마다 고유 ID를 부여하고 모든 활동을 기록하며, 데이터 삭제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작업은 사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한다.
자율주행·로보틱스 등 피지컬 AI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GPU 자원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GPU 서비스(GPUaaS)’ 운영 역량도 단계적으로 확보한다.
올해 4분기부터 대규모 GPU와 자체 개발 AI 플랫폼으로 기반 역량을 쌓고, 규모 확장과 자동화 고도화를 거쳐 2029년 하반기부터 새만금 AI 데이터센터에서 GPU 1만 장 이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각 세션 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참석 기업들이 AX 추진 과정의 고민을 털어놓고 패널들과 해법을 논의했다.
진 사장은 “어떤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빠르게 활용해 사업 성과로 이끌어내는 조직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잊고, 다시 배우는 조직을 만들어 다음 기술 혁신에도 앞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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