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까지 동원해 자신들의 지분 우위를 내주면서까지
경영권을 최씨 가문에서 빼앗아와야 했느냐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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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매수 배경 설명하는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사진=연합뉴스 제공 |
[소셜밸류=김완묵 기자] 세계 최대 비철금속 회사인 고려아연에 대한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 매수를 통한 경영권 인수 시도가 발생하면서 중국으로의 핵심 자원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사자인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중국은 핵심 자원의 공급망을 장악해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시도를 21세기 들어 꾸준히 진행해왔고 이미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둔 게 사실이다. 이를 무기로 4차산업혁명시대 글로벌 경제를 주도할 분야에서 자원 공급부터 제품 생산에 이르는 공급망을 장악해 미국과 서방국가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구상을 실천해오고 있다.
한국에 대한 공격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많은 분야에서 기술유출이 발생해 두 나라 간 기술 격차가 좁아진 것은 물론 일부 분야는 앞서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들 기술의 획득은 대부분 약탈적 방법이 동원됐다는 게 우리 정부와 서방 진영의 판단이다. 이런 기술의 유출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실제로 LCD, OLED 등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5~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압도적 우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비슷한 위치에 있어 우리 기술의 경쟁력 우위를 장담할 수 없고, 중국 기업이나 애플 등에 대한 공급망을 빼앗기거나 경쟁자로 나란히 서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하원에서 중국산 디스플레이 업체에 대한 제재 요청이 제기된 것도 이런 이유다. 미 하원 중국특위 존 물레냐 위원장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의 액정표시장치(LCD) 및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조 업체인 BOE와 톈마를 재재 명단에 올릴 것을 촉구했다.
물레냐 위원장은 "중국이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성장하며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들 기업을 국방부의 '중국 군수 기업' 명단에 추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물레냐 위원장은 "글로벌 LCD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0%에서 오늘날 72% 수준으로 성장했다"며 중국의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저가 공세를 펴며 여타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 조사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2016∼2023년 한국의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반도체 등 다른 산업 부문보다 훨씬 많은 기술을 훔친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 기업의 피해를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나 기업들은 최근 들어 원자재 공급망 장악을 위해서도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은 원자재 공급망 장악을 위한 거점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한국을 미국의 공급망에 포함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기술은 물론 원자재도 중국의 약탈 및 공략 대상에 들어가게 됐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판단에 대해 당사자들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에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협력을 통한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도 그런 구상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분쟁의 중심에는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와 회사의 독자적 기술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은 영풍과 손잡은 MBK를 기업사냥꾼으로 규정해 이들이 경영권을 잡을 경우 회사의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되고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WSJ는 소개했다.
WSJ는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인수·합병전이 복잡해진 배경에 중국의 전 세계 광물 시장 지배력 확대와 그에 대한 서방의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리서치·컨설팅 업체인 우드 매켄지에 따르면 아연 제련에서 중국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49%에 달한다. 고려아연 및 관계사의 점유율은 8.5%다. 이 같은 시장 환경에서 고려아연 측은 MBK가 경영권을 인수하면 회사를 중국에 매각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방법이 없으며 핵심기술의 이전 위험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번 딜을 담당하는 MBK의 김광일 부회장은 MBK가 과거 인수한 한국회사를 중국 투자자에 매각한 적이 없고 전체 MBK 투자자 중 중국 투자자는 5% 미만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인수 과정이 마무리되고 MBK가 경영권을 장악하면 이 말이 액면 그대로 지켜지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고려아연 측은 "MBK가 운영하고 있는 블라인드 펀드 상당수가 중국계 기업과 자본이 포함돼 있다"며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에 대한 인수 시도는 명백한 적대적 M&A이며, 중국계 자본 등을 등에 업은 MBK의 약탈적, 적대적 기업사냥"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의 주체를 뚜렷이 밝히지 않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얼마든지 입장의 변화가 있을 수 있고 회사의 주도권을 중국 측에 넘긴다 해도 이를 제지할 마땅한 방법도 없으며, 자칫 중국과의 무역 분쟁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점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관측이다.
국가의 중요한 핵심자원인데도 영풍이 중국계 사모펀드라는 의심까지 받는 상황에서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인 것 역시 석연치 않다. 당장 경영권 인수에만 혈안이 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영풍 측은 "공개매수는 최윤범 회장의 잘못된 경영을 바로잡아 고려아연을 정상화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최 회장은)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수익성과 재무구조를 급격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일정 부분 사실이라도 해도 사모펀드까지 동원해 자신들의 지분 우위를 내주면서까지 경영권을 최씨 가문에서 빼앗아와야 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바람직한 견제를 위해서라면 상당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을 통한 견제도 가능했을 것이다. 즉 재무구조가 훼손됐다면 국민연금도 충분히 이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영풍이 합세해 견제를 할 경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국민연금과 기관들의 노력을 합해서 경영권 인수도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최 회장 측의 우호 지분이 다 합해도 35%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영풍은 MBK파트너스를 통한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노력을 객관적으로 진행하고 최씨 가문이 됐든 장씨 가문이 됐든 고려아연의 발전과 국익을 위한 바람직한 길을 모색해야 한다.
올가을 국감은 이를 위한 노력의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정부나 국회도 고려아연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우리의 핵심자원이 중국으로 넘어가거나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층 경계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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