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US스틸 vs 한국 고려아연, 임시주총에 대한 국민연금의 판단이 궁금하다

인물·칼럼 / 김완묵 기자 / 2025-01-05 05:47:18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국민연금은 이번 고려아연 임시주총에
임하는 분명한 스탠스를 정해야 한다
미국 정부의 US스틸 인수 불허 결정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어
▲사진은 미국 US스틸 제철소의 모습/연합뉴스 제공
 

 

[소셜밸류=김완묵 기자]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성명에서 "US스틸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노동조합에 소속된 미국인 철강 노동자가 운영하는 세계 최고의 자랑스러운 미국 기업으로 남을 것"이라며 US스틸 매각 불허 결정을 발표했다.

 

일본제철이 2023년 12월 US스틸을 149억달러(약 20조8000억원)에 인수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이후 1년여 만에 내려진 최종 결정이다. 이번 결정은 미국의 소중한 기업을 단지 효율성이나 수익성을 이유로 외국 기업에 특히 그곳이 아무리 우방국의 기업이라도 매각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정으로 여겨진다. 

 

US스틸은 한때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조강능력에서 한국의 포스코에도 못 미치는 세계 10위권 밖의 기업으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미국의 중요한 안보자산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공급망에 대한 위험, 노동조합의 반대 등을 들어 일본 기업으로의 인수를 막은 셈이다. 여기에는 미국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의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쏟아진 데다 차기 행정부를 구성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강력한 반대표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범정부 내 국가 안보 및 무역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결정했듯이 이번 인수는 미국 최대 철강 생산업체 중 한 곳을 외국 통제에 두고 우리 국가 안보와 매우 중요한 공급망에 위험을 초래한다"며 불허 결정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대해 상대방인 일본 정부는 "이해하기 어렵고 유감"이라는 반응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국가안보상 우려를 이유로 해 이러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유감이다"라며 "동맹국인 일본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은 충격적이고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나아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려 하는 동맹국을 거점으로 하는 모든 기업에 대해 투자를 억제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한때는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이었지만 현재는 경쟁력이 쇠퇴해 세계 톱10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미국의 철강기업인 US스틸에 대한 일본제철의 인수 시도에 대해 미국과 일본 정부가 민낯에 가까운 갈등관계를 노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비철금속 기업인 고려아연을 두고 적대적 인수전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오는 23일 임시 주총을 통해 회사의 운명을 쥘 주인이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과연 고려아연을 두고 벌이는 혈투를 어떤 시각으로 쳐다보고 있을까. 현재까지 우리 정부가 여기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힌 바가 없다. 다만 고려아연이 확보한 기술적 자산에 대해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하면서 향후 해외 유출 가능성을 차단하는 노력 정도만 진행한 상태다.

 

즉 지난해 9월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고려아연과 자회사인 켐코(KEMCO)가 함께 개발한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에 대해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해 외국 기업 등에 매각 또는 이전 등의 방법으로 수출할 때, 또한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과 합작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할 때 미리 산자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하이니켈 전구체 기술만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할 경우 경영권을 인수한 MBK 측이 하이니켈 전구체 기술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고, 아연 제련 사업만 따로 해외에 매각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에 고려아연 측이 추가로 적철석 제조 기술과 안티모니 메탈 제조 기술에 대해서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을 했고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정부 결정이 안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고려아연은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대한민국 최대 규모, 세계에서도 굴지의 비철금속 제련 기업으로 손꼽힌다. 고려아연은 최근 철강보다도 훨씬 중요도가 커진 비철금속 분야에서 어느 나라든 공급망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인수하고 싶은 탐이 나는 기업임에 틀림없다. 즉 고려아연은 아연과 납을 비롯해 제조업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원료와 소재들을 생산하고 있고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글로벌 공급망과도 관련되는 필수 소재인 만큼, 국내에서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생산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전기자동차 양극재에 소요되는 전구체를 생산하고 있어 그 중요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회사의 운명이 걸린 적대적 경영권 분쟁이 발생해 그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관련 업계가 큰 걱정을 하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 기간산업의 운명이 걸린 한판승부를 놓고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에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은 필사의 노력으로 적대적 M&A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상대방인 MBK와의 지분율 차이가 있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제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한 정부 당국과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 소액주주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단순히 자본시장의 논리에 맡겨 방관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분쟁국면에서 중립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최선의 자세라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국가 산업의 운명을 쥐고 있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방기하는 무책임한 자세일 수밖에 없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죽은 뒤에 처방)식의 대응은 더더욱 안 된다. 

 

적대적 M&A가 결정된 뒤에 이를 시정하고 규제하기 위한 조치는 정말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가령 US스틸이 미국 기업이니까 뒤늦게나마 불허 조치가 가능했지 우리 기업이 만일 중국을 상대로 한다면 이런 조치가 가능할까. 아마도 중국의 무역보복이 두려워 염두조차 두지 못할 것이다. 자칫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사안을 가래로조차 막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더더욱 고려아연에 대한 사모펀드인 MBK 인수전에 대해 울산광역시 등 지자체는 물론 노동조합도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모호한 스탠스를 지속하고 있다. 그냥 시장논리에 맡겨 보자는 태도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국민연금은 이번 고려아연 임시주총에 임하는 분명한 스탠스를 정해야 한다. 그 입장을 통해서라도 이 사안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의 US스틸 인수 불허 결정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의 중요한 산업자산에 대해서는 시장논리가 아닌 국가자산의 논리로 보호하고 규제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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