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리즘이란 예술·문화를 파괴하는 행위로, 공공의 재산이나 사유 재산을 고의적으로 파괴하거나 해를 끼치는 행위를 말한다. 1794년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의 주교가 군중들이 가톨릭교회의 건축물과 예술품을 파괴하는 행위를 보고, 고대 북아프리카의 반달족이 로마 침략 당시 문화를 파괴한 것과 비교하면서 반달리즘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2008년 2월 10일 방화사건으로 불타고 있는 숭례문 [사진 출처: 문화재청]](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10405/p179590192113198_134.jpg)
인류의 문화유산인 예술 작품 혹은 문화재가 훼손되는 일, 가까운 곳에서 본 것 같지 않은가? 2008년 숭례문방화사건(자신이 소유한 토지보상 문제로 불만을 품은 채종기가 숭례문에 시너를 붓고 불을 지르는 사건)으로 대한민국 국보 1호가 전소된 일이 있었다. 이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작품을 공격하고 훼손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모나리자
![Mona Lisa, Leonardo da Vinci, 1503, Louvre Museum [사진 제공: 아트램프]](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10405/p179590192113198_491.jpg)
이 작품은 파괴의 욕구를 가진 이들을 유혹하는 최고의 그림 중 하나인 모나리자이다. 1956년 프랑스에서 누군가가 그림에 산성 물질을 뿌렸고 그림의 아랫부분이 심하게 손상되고 말았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30일 젊은 볼리비아인이 이 작품에 돌을 던져 2차 피해를 입혔다. 이로 인해 모나리자의 왼쪽 팔꿈치는 색을 잃고 캔버스가 손상되었다.
1974년 4월에는 장애인을 위한 박물관의 정책에 화가 난 장애 여성이 도쿄 국립 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나리자에 빨간 페인트를 뿌렸다. 4번째로 2009년 8월 2일, 프랑스 시민권을 거절당해서 화가 난 러시아 여성이 박물관에서 구입한 찻잔을 모나리자에 던지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도 초창기에 작품이 공격당한 이후 방탄유리를 씌어놓았고, 나중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는 그림이 손상되지 않았다. 유리가 모나리자를 살린 격이다.
2. 파블로 피카소 - 게르니카
![MoMA employees clean spray paint off of Picasso’s “Guernica,” after Tony Shafrazi vandalized it with the words “Kill lies all,” in February 1974. [사진 출처: 아트램프]](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10405/p179590192113198_359.jpg)
키스 해링을 발굴한 갤러리스트로 유명한 토니 샤프라치(뉴욕 샤프라치 갤러리 관장)는 1974년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품 위에 붉은 스프레이로 "Kill Lies All”이라고 썼다. 샤프라치는 당시 리처드 닉슨의 전쟁에 관한 정치적 행보에 항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품은 무슨 죄였을까? 토니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 행위를 한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품에 칠해진 니스 덕분에 페인트는 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3.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피에타
![바티칸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공격하는 라즐로 토스(33)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10405/p179590192113198_622.jpg)
헝가리 태생의 호주 지질학자 라즐로 토스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외치며, 미켈란제로의 대표 조각품 피에타의 성모 마리아를 망치로 내려쳤다. 마리아 조각상은 총 15번 공격당했고, 코와 눈꺼풀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당시 장면을 목격한 한 미국인은 그를 주먹으로 때리며 행동을 저지했다.
왜 토스는 이런 짓을 벌였던 걸까? 조사 결과, 그는 이전부터 예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라며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교황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 이력이 있었다. 결국 정신 이상 판정을 받은 토스는 호주로 추방되기 전까지 2년 동안 이탈리아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4. 바넷 뉴먼 - 카테드라
![Barnett Newman “Cathedra” (1951) / knife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10405/p179590192113198_811.png)
1997년 11월 암스테르담의 Stedelijk 박물관에서 41세의 제라드 얀 반 블레이드렌은 한 작품을 칼로 베기 시작했고 총 7번이나 난도질을 했다. 이 행동을 마친 뒤, 그는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벽에 기대어 침착하게 경찰이 오길 기다렸다.
마크 로스코와 함께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바넷 뉴먼의 작품 훼손은 이것이 첫 번째가 아니었다. 1986년 같은 박물관에서 전시한 “누가 빨강, 노랑, 파랑을 두려워하는가” 연작을 반 블레이드렌은 반복해서 칼로 베었다. 당시, 그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5개월 동안 감옥에서 복역한 전과가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작품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 자신은 추상 예술을 싫어하는 예술가이며, 바넷 뉴먼의 작품에 자신이 뭔가를 더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림이 복원된 것이 화가 나서 자신의 작품을 되돌렸다고 이야기했다.
5. 클로드 모네 - 수련
![작업실에서의 클로드 모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https://www.socialvalue.kr/news/data/20210405/p179590192113198_966.jpg)
1908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공공 재산을 파손했다고 할 수도 없는 다소 특이한 사건이다. 그 해 5월 클로드 모네는 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이미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었고 작품을 소개하기도 전에 10만 달러(당시 가격)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매겨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네가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한다며, 갑자기 칼과 붓으로 모든 그림을 파괴한 것이다. 여기에는 첨예한 윤리 문제가 깔려있다. 과연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파괴할 권리를 가진 걸까? 모두가 황당해했을 때 한 평론가는 그가 그림을 제조하는 기술자라기보다 진정한 예술가라고 칭찬하면서, 뉴욕 타임스에 이렇게 기고했다. “다른 화가들도 모네처럼 하지 않는 것이 유감스럽다.”
최근 한 전시회에서 일반 관객이 작품 앞에 놓인 페인트로 원작에 칠을 해 전시업계가 발칵 뒤집어진 사건이 있었다. 자유분방한 원작의 생생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단순 소품이었을지, 관객의 돌발성을 예상한 참여 도구였을지 전시 기획자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의 개념과 철학에 따라 반달리즘(Vandalism)이 시사하는 의미가 상당히 다양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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