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권리는 호의가 아니다>는 배용진 작가의 인터뷰집이다.
책은 작가가 장애인권 월간지 <함께걸음>에서 일하며 썼던 글을 모았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호의를 권리로 착각해 당연시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권리는 호의가 아니다. 기분이 나빠도, 여유가 없어도 보장해야 한다.
이 책에 담긴 요구는 호의를 바라는 게 아니다. 장애인의 권리 주장이다.
배용진 작가의 인터뷰집 <권리는 호의가 아니다>는 아직까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사회문제와 비뚤어진 인식과 편견을 가지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저자 소개
저자: 배용진
목차
서문
권리는 호의가 아니다 /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망리단길 / 우리는 조현병을 모른다
인터뷰
왜 장애를 미안해해야 해요? / 법 안에 우생학이 있다 /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직무 배치
인터뷰
바닥을 기어가는 시기가 필요하다 / 보호라는 이름의 박탈 / 법이 보상하지 않는 세월 / 백 명을 바꿀 한 명
본문
한번은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누군가 날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경사진 골목길에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폐지 등을 쌓은 수레를 잡고 내려가던 중이었다. 노인이 도움을 청했지만 나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발목을 접질려 보호대를 감고 있었고, 약속 시각까지 시간이 바듯했다. 그가 다시 한번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 그에게 다가가 수레를 잡았다. 수레는 똑바로 굴러가지 않았다. 몇 차례 모퉁이에 몰렸고, 방향을 전환하느라 애먹었다. 계속 힘을 주니 몸에 열이 올라 머리가 간지러웠다. 옷에 무언가 묻을까 조심스러웠고, 발목에 무리가 가는 것 같아 신경 쓰였다. 한 마디로 짜증이 났다. 어찌어찌 평지에 내려온 뒤 애써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급히 길을 떠났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약속에 늦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때 내 마음이 야박했다. 만일 야박함이 표출됐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많은 상황에서 그래왔고 앞으로 그럴 일도 적지 않다. 그럴 때 누군가 인정머리 없다고 험담할 수 있을지언정 내게 호의를 강제할 수는 없다.
이 책엔 여러 요구가 담겨있다. 이 요구는 호의를 바라는 게 아니다. 권리 주장이다. 권리는 여유가 있으면 보장하고 아니면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청하는 사람의 태도나 듣는 기분에 따라, 들어주거나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호의를 권리로 착각해 당연시하지 마라는 거다. 반대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권리는 기분이 나빠도, 여유가 없어도 보장해야 한다. 권리는 호의가 아니다.
- '권리는 호의가 아니다' 중에서 -
휠체어를 타는 상미 씨와 망원동을 찾아갔다.
상미 씨 집에서 망원역까지는 두 번 환승해야 한다. 시간이 더 걸리는 대신 한 번 환승하는 경로도 있다. 그는 두 번 환승하는 길을 골랐다. 승강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역은 헤매기 쉬워 선호하지 않았다. 승강기가 없어 리프트를 타야 하는 곳도 기피한다. 상미 씨는 "리프트 자체도 위험하고, 타는 내내 벨이 울리니까 사람들 시선이 집중돼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환승지 승강기에서 한 여성이 "바람 부는 날은 춥겠다"라며 안쓰러운 눈으로 휠체어와 상미 씨를 훑었다. 두 번째 환승하며 탄 승강기에선 어느 남성이 "모터가 안 달렸네"라고 말하며 휠체어를 만지작댔다. 상미 씨는 조용히 말했다. "휠체어 만지지 마세요." 1시간이 걸려 망원역에 도착했다. 네이버 지도가 예상한 소요시간은 34분이었다.
-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망리단길' 중에서 -
문성호 씨는 뇌병변장애인이다.
언어장애인 여성과 결혼했다.
아이는 고등학생이다.
허민정 씨는 연골무형성증이 있는
지체장애인이다. 청각장애인 남성과 결혼했다.
아이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두사람을 제가끔 만나 묻고 답변을 모았다.
아이를 갖기로 하며 가장 걱정했던 건
문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지 없을지에 가장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처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많이 불안했다. 대다수 장애 부모가 그럴 것이다. 우리 부부의 장애가 유전성이 아님에도 장애가 있을까 봐 염려됐다. 많은 검사를 받아 장애 여부를 확인했다.
허 체구가 작다 보니 아이를 뱃속에 담고 있을 수 있을까 걱정됐다. 산전 검사를 하며 임신이 잘 될 수 있는 주기도 찾고, 자궁 상태 등 신체적인 부분을 확인했다.
장애가 있었으면 낳지 않았을까
문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장애인 부모는 기존에 장애인으로 살아 와서 장애를 갖고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고 둘이 살기도 쉽지 않은데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허 내 장애는 유전성이다. 100% 유전되는 건 아니었고 의사가 괜찮을 거 같다고 했지만,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도 낳을 생각이었다. 주변에선 만약 장애가 있으면 어떻게 키우려고 하냐고 말하기도 했다. 주변 이야기를 참고할 순 있지만 전적으로 따라서 결정할 수는 없다.
- '왜 장애를 미안해해야 해요?' 중에서 -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난 내 장애를 사랑한다.
2017년 아프리카 우간다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259억 달러, 세계 98위다. 1인당 국내총생산으로 환산하면 604달러로 순위가 154개국 중 146위까지 떨어진다. 1975년 한국과 근사한 수치다.
1975년 부산 거제동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칠삭둥이였고, 다리부터 세상으로 나오다가 얼마간 숨을 쉬지 못했다. 그사이 뇌가 손상됐다. 아이는 제대로 목을 가누거나 기지 못했다. 늦되다고 생각하던 부모는 돌 즈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뇌성마비로 진단했다. 앞으로 아이가 걸으려면 목발이 필요했다.
숫자로 확인하지 않아도 아프리카 대륙은 빈곤하다고 인식된다. 인식 한편엔 작열하는 태양, 드넓은 초원과 사막, 야생동물이 있고, 다른 편엔 기아로 배가 볼록한 아이, 아이를 안고 수심에 잠긴 부모가 있다. 이 인식을 심은 건 미디어다.
- '백 명을 바꿀 한 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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