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독설을 털어내버리기 위해 글을 쓰다.

정치 / 김미진 기자 / 2020-03-29 11:07:34
[내 엄마 맞아?] 저자 시연

책 소개



<내 엄마 맞아?>는 시연 작가의 에세이다.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하던 잔소리, 이것은 제게 상처를 주는 말들이 되었고, 이것이 눈덩이 불어나듯 커졌습니다.'


어느 날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힌 엄마의 한마디. 작가는 자신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어버린 독설을 털어내버리기 위해 글을 써 내려갔다. 이 글이 내 머릿속 지우개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엄마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말들이 나에게도 남아 있지 않기를 매일 생각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시연 작가의 에세이 <내 엄마 맞아?>는 딸을 가진 엄마에게, 그런 엄마의 딸에게, 그리고 가족 간의 불화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출처: 페브레로
출처: 페브레로


저자 소개



저자: 시연





목차



여는문 5



첫번째방. 엄마, 너무한거 아니야?


엄마는 너 가졌을 때, 잘못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13 / 엄마 마음에 들어야만 옷을 살 수 있어 18 / 너 그렇게 하고 나갈 건 아니지? 21 /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너는 없어 23 / 예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고 성공할 수도 없어 26 / 인간관계가 틀어지면, 네가 문제야 31



두번째방. 내 엄마 맞아?


모든 병원을 혼자 간 나 36 / 내가 엄살을 많이 부려서 엄마는 너도 엄살을 부리는 줄 알았어 39 / 생애 첫 입원도 혼자, 퇴원도 혼자 43 / 네가 아프다 하면 내 마음은 더 아프니 그 소리 그만해 47 / 네 모습에 선생님이 놀라서 너 다신 안 만나 주신다 53 / 딸 잘 키운 줄 알았는데 잘못 키웠네 57



세번째방. 엄마에게


네가 우울증이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우울증이야 61 / 두 번의 상담, 두 번의 실패 65 / 엄마, 나는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어 69 / 엄마, 나 좀 쉬어가도 될까? 73 / 도움의 손길을 엄마가 잡아줄까? 78 / 바라던 엄마의 따듯한 손길은 없었다. 83 / 대신 엄마는 내 머리채를 잡았다 87



네번째방. 우리에게


안 그러면 누나처럼 된다! 93 / 절반의 우리 98 / 나머지 절반의 우리 104 / 남겨진 우리에게 109 / 우리 모두에게 1 114 / 우리 모두에게 2 119



열었지만, 닫히지 않는 문 124





본문



"이렇게 밝은 거 보면 누가 널 우울증이라고 하겠니?


네가 우울증이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우울증이야."



내가 가족들에게 우울증인 걸 들키기 전까지 엄마가 내게 자주 하던 말이다. 나는 내가 가진 우울증이 어렸을 때부터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아마 나는 중학교 때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중학교 이전의 일들은 생각이 아예 나지 않으니깐. 중, 고등학교 때 힘든 일이 생기면 막연히 죽고 싶었고, 감정 기복이 심해 그런 나를 친구들이 힘들어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와 함께 상담실을 자주 서성였다는 것도.



하지만 내가 학창 시절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을 거란 생각은 나만 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우울증으로 인해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백했을 때, 아무도 내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인터넷에서 '우울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이 글의 제목과 같은 말을 내게 자주 했었다. 위의 말을 하면 너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탈이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엄마의 이 말들은 내가 우울증으로 진단받기 전에도,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있다.



나는 왜 그 말을 내 마음 속 상처로 남겨두어야 했을까. 하나는 나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것에 있다. 중학교 때 원하는 고등학교에 떨어져서 좌절했었다. 고등학교 때 중학교 때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은 나는 나를 실패자로 여겼다. 대학 입시 속 성적 부진은 나를 실패자로 낙인찍었다. 한국 교육 시스템에 뒤떨어진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엄마의 평소 말에 있다. 엄마는 내가 성적이 좋을 때는 "내가 너에게 노력한 게 얼만데 당연히 그 점수가 나왔어야지."라고 말했고, 내가 성적이 나빴을 때는 "내가 부은 돈이 얼만데 너는 어떻게 나에게 이런 점수를 보여줄 수 있냐."라고 말했다. 단 한 번도 나는 이 속에서 엄마에게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지금껏 엄마가 말하는 대로 살아왔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행복하지 않다. 나는 그동안 이러한 삶 속에서 엄마를 일방적인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보는 이분법적인 구조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똑같은 구조에 갇힐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의 관계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개선이란 없었다.



지금까지 엄마와 싸움에서 서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비난'하고 '폭발'해버리는 것으로 계속 상처에 골을 쌓고 있다. 과연 어떻게 오랫동안 속에 곪아 있는 상처 응어리를 치유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정말로 엄마와 나의 관계는 치유할 수 있는 걸까.



- '네가 우울증이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우울증이야' 중에서 -




"시연님이 힘들다고 하는 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시연님의 힒듬을 마지막인 지금 알아줘서 미안해요."



위의 말은 앞서 프롤로그에서 밝힌 두 번의 개인 심리상담에서 들은 말이다. 몇 년 전의 일인데도 내가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상담이 꽤 기억에 남는 일인가 보다. 하지만 두 번의 개인 심리상담은 그때 날 버티게 해 준 고마운 일이지만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다. 나는 두 번의 개인 심리상담에서 모두 실패했다.



선생님의 뜻한 대로 되지 않아 상담의 결과를 그르쳤다. 나는 온전한 해답을 얻지 못했고, 상담을 완성 짓지도 못하였다. 서로의 미숙함이 불어온 결과이다.



첫 번째 상담은 대학교 심리상담실에서 이루어졌다. 6개월 동안 상담이 진행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실을 찾아가면 되는 거였다.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지속한 심한 우울함이 있었는데 왜 병원에 가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병원에 갔으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상담이 끝날 때가 되자 내 문제에 관한 선택지를 주며 내가 빨리 실행에 옮기도록 자꾸 강요하였다. 그것은 나도 알고 있는 해답지였지만 쉽게 할 수 없는 해답이었다. 계속 강요하는 선생님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하였고,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상담 시간 마지막 날 선생님은 "시연님이 힘들다고 하는 게 제 마음에 와닿지 않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상담을 끝냈다.



두 번째 상담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졌다.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스터디 카페를 빌려 1년 정도 진행했다. 선생님도 똑같은 말씀은 하셨다. 오래전부터 지속된 심한 우울함이 있지만, 나라면 쉽게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게 진전이 없는 나로 인해 상담에서 많은 걸 시도했다. 도형 쌓기, 그림 그리기 등등. 1년 동안 선생님과 신뢰 관계도 많이 쌓고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선생님도 나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나 보다. 상담 시간 마지막에 선생님은 시연님의 힘듦을 마지막 시간에 알았다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게 나의 개인 심리상담 이야기이다. 사실 두 번의 개인 심리상담에서 모두 엄마의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로부터의 독립과 관계 개선, 가족 집단상담을 권유받았지만, 나의 상황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와 나의 방어적 태도는 선생님을 지치게 했다. 이에 나는 심리상담을 아예 끝내고 나서는 더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 '두 번의 상담, 두 번의 실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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