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TOYBOX]는 문학스튜디오 무시의 올-라운드 문예지다.
이번 [TOYBOX 3호]의 주제는 '유령: 생활기록부'이다.
「문학이 바라보는 곳은 어디일까요? 문학의 노력이 가장 보이지 않는 곳을 끝끝내 바라보려는 노력이라면, 그곳에 유령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유령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보일까요, 보이지 않을까요? 유령은 삶일까요, 죽음일까요? 유령을 보기 위해서 불확실을 보아야 했습니다. 부재를 보아야 했습니다. 죽음과 경계를 보아야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역에 비가시의 딱지를 붙이는 대신 빈틈을 관찰하고 어둠을 오래 바라봐야 했습니다. 눈을 감고 바라보고 피부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유령의 순간은 문학의 순간과 닮아 있습니다.」
[TOYBOX 3호 유령]은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기록한 유령의 생활기록부이다. 21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유령을 포착해주었다. 유령을 객체와 대상이 아닌 삶과 생활의 주제로 대하며 서늘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유령을 담았다.
[TOYBOX 3호]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에는 시인, 소설가 등과 더불어 사진가, 미술 작가, 디자이너,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작품이 실려있다. 한 명의 작가가 혼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상식을 넘어 여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종합 예술 작품, 줄의 형태를 뒤틀거나 뒤섞는 작품, 장르와 장르의 협업 작품, 새로운 형식을 창안한 작품 등을 4부에 걸쳐 담았다.
독자들은 [TOYBOX]가 확장하고 있는 즐겁고 신선한 문학 실험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문학스튜디오 무시
문학스튜디오 '무시(無時/無詩/無視)'. 올-라운드 문예지 [TOYBOX]를 출간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말, 무시(無視)하고 지나갑니다. 그건 시가 아니야, 그건 예술이 될 수 없다니까, 그러면 안 되고 맙니다(無詩). 저희는 문학,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들 또는 그 무엇으로도 불리지 않는 것들을 둘러싼 재미있고 즐거운 기획을 무시(無時)로 모색하고자 합니다.
목차
1. 당신은 어떤 유령을 보았습니까?
[We're living in the ghost town] 픽션포토_이옥토X유비채
[살아가는 유령] 에세이_리리브
[들리어오네 목소리] 시, 음악 그리고 드로잉_이제니X이에니
[미주와 근화의 이란성 쌍둥이 썰] 소설_차현지
[유령하는 아이들] 유령-에세이 비평_박무무
2. 팔짱X팔짱
[유령놀이] 피처링 시_김누누X나혜X배시은
[When ever you want-I'm (not) going anywhere 유령을 잃어버린 사람의 유령을 찾는 인터뷰] 환상문답_김희은X신서령
[에어 워크] 시 EP_안지연X투명X채린
[당신에게는 사슴 한 마리가 있다 당신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하지만] 드로잉시_안희연X김소영
3. 문양: 문학의 모양
[생활의 발견_Home] [주제主題에 대한 BGM-귀신의 집] 시_송희지
[D-1] Project LAB 03_이소호
[똑같이 우유] 시_이희진
4. on-paper 지-상(紙-上)
[어쩌다 작가 그런데 대필작가] 에세이_임재균
본문
3-1. N은 떠나간 E를 떠올리는 중이었습니다. 유독 이상하게 찍힌 E의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이걸로는 누구도 E를 못 알아보겠다 싶어 웃다가 이내 슬퍼졌습니다. 이윽고 내가 알았던 E는 E일까. 알았던 것이라고는 E의 이름뿐이었을까. 그런데 그 이름이 E가 E를 부르는 이름과 같은 것이기는 할까. 내가 아는 이름과 같았었다고 해도 그걸 내가 제대로 발음해오긴 한 걸까, 마음과 마음이, 존재와 존재가 맞부딪히는 순간은 왜 없는 것만 같을까, 있었다고 해도 왜 환상처럼 느껴지는 걸까, 이런 물음들과 함께 많은 밤을 보냈습니다. N은 E가 생전에 하고자 했던 일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기억으로 남은 것들이 가짜고 내가 만들어낸 E의 유령 같은 것이라고 해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이 이기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해도 그래도 말야, 하면서. 순간 멀찍이 있던 E의 옆에 목화솜을 닮은 조그마한 유령이 생겨났습니다. 작은 유령과 E는 오래도록 함께 떠다녔습니다.
3-2. H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23페이지 중에서 -
들리어오네 목소리 너의 목소리
울리어오네 먼 숨결 내 안의 먼 숨결
아득한 별빛 되어 어두운 내 눈을 비춰주네
가득한 슬픔의 빛으로 걸어가네 너와 함께
우리 자신보다 더욱더 우리 자신으로
우리 자신보다 더욱더 우리 자신으로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걸어가네 이 길을
드높은 날개가 되어 날아가네 저 멀리로
우리 자신보다 더욱더 우리 자신으로
우리 자신보다 더욱더 우리 자신으로
- '들리어오네 목소리' 중에서 -
그런 건 없는데…… 친구는 자꾸만 보러 가자고 했다. 랜턴을 챙기고 카메라를 챙기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사각팬티도 두 개나 챙겼다고 했다. 스무 명이나 사라진 집이야 이건 진짜야 동양인 게이남사친 이기적늙은이 섹스광커플 뽀삐 심령현상연구부학생들 다큐촬영팀 다 사라졌다니까? 옛날옛날 거기서 마녀사냥 있었고 소년 강에 빠져 죽었고 기밀 인체실험 있었고 분신사바 찰리찰리 있었다니까? 그런 건 진짜가 아닌데…… 친구는 광원처럼 눈 반짝거렸고 휘휘 휘발되었고 이 모든 것을 모험이라고 부르자 했다. 친구를 울리는 나쁜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래 좋아 알았어.
뭔데 계획이?
우리는 붉고 기다란 수풀 지나쳤고 개구리 울음소리 들었고 하늘에서 설익은 밤을 따다가 몇 개는 비상식량으로 챙겼다. 위장(僞裝)을 위해 얼굴에 두둑이 으깨어 발랐다. 이러니까 우리 진짜 같다 그치? 말하다 말고 친구는 엉엉엉 웃었고,
문이 열려 있었다.
삐그덕삐그덕 긴 복도였다.
방이 있었다…… 조명이 흔들흔들거렸다. 친구가 한가운데에 성수를 놓았다. 방울을 흔들었다. 닭 피를 뿌렸다. 십자가를 던졌다. 흔들의자에 앉았다. 일곱 바퀴만 배회하였다. 수도를 틀었다. 토스트를 구워 먹었다. 비데를 이용하였다. 《WHY 사춘기와 성(性)》 편 꺼내 읽었다. 침대에 모로 누워 두 시간만 잤다.
이제 그만 돌아가지 않을래?
친구는 알았다고 했다. 꿈이 덜 깨어서. 절반만 눈을 뜬 채로.
돌아가는 길. 친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다 끝장이야 좆됐어 펍pub에서 한 내기에서 나는 내가 실종될 거라는 쪽에 전 재산을 걸었는데…… 하하호호 화목하게 우는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며 나는 그가 몹시도 가여워, 우리가 갔던 곳 사실 내 집이었어 내가 진짜 고스트였어 고백하지도 못했다.
- '생활의 발견_Home'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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