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유럽에서 살아도 괜찮을까]는 이성진 작가의 여행 에세이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배우던 학생이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앉았다. 젠트리피케이션, 주택 노후화 현상, 휴먼 스케일의 도시... 두꺼운 전공 서적에서 끄집어내 머릿속에 욱여넣은 개념들을 되새기던 그가 도착한 곳은 체코 오스트라바였다. 한두 달 여행하는 것으론 성에 안 찬다며 체코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작가는 그곳에서 느끼고 온 유럽의 도시와 사람들을 종이 위에 마음껏 풀어냈다.
책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건 주저하는 이에겐 일단 용기를 북돋아 주는가 하면, 지옥 같은 한국이 싫다며 막연히 외국을 동경하는 이에겐 유럽 사람들과 우리 사이의 간극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인간관계를 묘사하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은 더욱 돋보인다.
이성진 작가의 여행 에세이 [유럽에서 살아도 괜찮을까]는 부디 나답게 살자는 스물넷의 잔잔한 위로의 솔직한 문체를 지닌 채 사람과 도시를 사랑하고, 또 미워할 줄 아는 이들을 기다린다.

저자 소개
저자: 이성진
부산에서 태어나 이사라고는 해 본 적 없다. 5분 거리의 초등학교와 20분 거리의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1시간 거리의 대학교에서 공공정책과 도시공학을 배우는 중. 좋아하는 게 많아 이것저것 벌려 놓지만, 뒷수습은 내일의 나에게 맡길 뿐이다.
목차
프롤로그 ㅣ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1 오스트라바
이런 걸 배우고 있습니다만 / 유럽에서 인생샷을 찍으려면 / O링 반지는 여기 있다 / 그들이 사는 속도 / 그래서 넌 무슨 색깔인데? / 선은 지키고 삽시다 / 그가 체코에서 살기 힘든 이유 / 그래도 내가 체코에서 살고 싶은 이유 / 호두 파이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 그럴 때가 있었다 / 끝은 언제나
1.5 빈, 파리, 아우슈비츠, 레치워스
숙제를 제출합니다 / 조금은 뜬금없다만 / 어쨌든 돈은 많고 볼 일이다 / 마음속 스케치북에 빈칸이 남아 있는지 / 혹시 알고 계셨나요 / Next Station is Letchworth Garden City
2 부산
남들만큼은 살고 싶지만 남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 / 도시의 저주, 어쩌면 선물 / 조금 일찍 철이 들었던 내 친구 이야기 / 소중한 나의 병영일기 - 일자 : 2017. 11. 17. / 꿋꿋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당신은 이 글을 읽으시면 안 됩니다 / 다만 네가 나보다 조금 더 용기 있었을 뿐 /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음을 / 이 잔잔한 일상은 언제까지나 당연한 것은 아니기에 / 1호선 뜨개질남 / 쪼물딱 쪼물딱 /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3 바르셀로나
자동차만 타고 살 순 없으니까요 / 민박집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습니다 / 같이 걷는 길 / 한 끗 차이 /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니까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걷고 싶은 거리에 관하여 / 애늙은이와 철없는 어른 / 노력해 볼게 / 인생은 운칠기삼
본문
현수막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슬로건과는 달리, 어디에도 그냥 '살기 좋은 도시'는 없었다. 상황과 조건에 따른, '나랑 잘 맞는 도시'가 있었을 뿐. 그래도 도시와 사람이 똑같지는 않은 것이,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지만 도시는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었다.
내가 체코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반년 동안 살아 본 유럽과 딱 맞지는 않았다.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유럽인들은 그들에게 알맞은 도시를 만들어냈고, 도시는 다시 그들의 삶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실로 거대한 순환이었다. 그걸 본 나는, 우리가 도시를 바꾸고 도시가 다시 우리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순환에 미미하게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유럽에서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놓았는데, 이에 대답부터 하자면 [얼마든지]이다! 당신이 유럽의 도시 스타일에 맞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말이다. 그 판단에 도움이 되라고 유럽의 도시 스타일과 여럽인들을 여기, 이 책에 얼마간 담아내었다.
혹여 유럽에서의 파란만장한 체류기나 외국에서 한 달 살기의 묘미 따위를 기대했다면, 나는 그런 글을 쓰지 않았다고 분명히 일러두고 싶다. 오히려 이건 유럽의 도시에 겹쳐 보이는 '한국의 도시와 도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 프롤로그,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중에서 -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우리 DNA 속에는 '열심히' 해서, '빨리' 성과를 내는 것이 입력된 듯했다. 전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한국의 토목공사와 건축공사속도는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같은 속도로서는 훌륭한 결과물을 자랑했다. 빠른 속도에서 오는 능률이 그만큼 매력적이란 사실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었다.
30년이 지나면 노후 아파트 소릴 듣는 우리네의 주택들. 유럽에선 백 년, 이백 년 된 건물이 비교적 최신에 지어진 편이라고 설명하던 교수님의 말씀이 내겐 신기하게 들렸다.
최근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데, 나는 이것 또한 속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단순히 지역개발(또는 인기 상승)로 인해 세입자나 영세상가가 쫓겨나는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보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다.
- '그들이 사는 속도' 중에서 -
그럼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어떨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빠른 나머지, 인간 DNA의 업데이트 속도가 미쳐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이제 우리는 옆집 사람과 '내키진 않지만 불가피한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된다. 일도, 식량 조달도, 여가 생활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마주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현대의 도시는 한 지붕 아래 사는 이웃과는 어색하게 지낼지라도 차로 한 시간 거리 떨어진 친구와는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무대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런 형태의 생활방식이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도시는 우리에게 선택권의 확대로 인한 자유를 선사했다.
어쩌면 도시는 우리에게,
무정이라는 저주를 내린 게 아니라 자유라는 선물을 준 걸지도 모른다.
- '도시의 저주, 어쩌면 선물' 중에서 -
"천천히라도 계속 뛰어야 해. 힘들다고 걸어버리면 금방은 좋을지 몰라도 다시 뛸 마음이 사라지니까."
10km 마라톤을 준비시키던 중학교 역사 선생님은 내게 음료수를 건네며 그렇게 말했었다. 레이알 광장(Placa del Rei)의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파란 하늘을 볼 때 문득 기억이 난 거지만, 그때는 당신의 말씀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흔히 듣는 것과는 다르게,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길게 보고 페이스 조절하는 게 비슷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목표 지점을 하나로 잡고, 기록을 재면서, 남들보다 빨리 가야만 하는 종목은 아니었다는 거다.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거기엔 빠름과 느림, 그리고 잠깐 멈춤과 되돌아가기도 포함된다.
그러니 부디,
타인의 속도로 자신을 재단하려 들지는 말자.
당신의 속도와 방향은, 이미 그 자체로서 의미 있기에.
-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니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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