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히딩크와 박지성, 그러나 홍명보.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다. 온 나라가 하나의 이름으로 응원하고, 승리에는 함께 환호하며 패배에는 함께 아파하는 국가적 무대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대표팀에 언제나 승리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 결과를 끝까지 감당하는 자세를 기대한다. 패배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태도에는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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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인터넷 축구 커뮤니티 캡쳐 |
2002년 월드컵의 한 장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박지성은 관중석이 아니라 벤치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품에 안겼다. 그 장면은 선수와 지도자가 얼마나 깊이 신뢰했는지를 보여줬다. 감독은 선수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승리와 패배를 함께 감당하는 사람이었다.
24년이 흐른 지금, 한국 축구는 전혀 다른 장면을 마주했다.
한 장면에서는 골을 넣은 선수가 가장 먼저 감독에게 달려갔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동료들 앞에서 감독의 질책을 받는 선수가 있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마지막 남아프리카공화국전에서 홍명보 감독은 황희찬을 동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강하게 질책했다. 선수에게 잘못이 있을 수도 있고, 경기 중 질책 자체도 낯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대표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질책 자체보다 그 방식이다.
두 장면이 갈라놓은 것은 승패가 아니라 리더십이었다.
대표팀은 결국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객관적인 전력과 대회 전 기대를 고려하면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국민을 더욱 허탈하게 만든 것은 결과보다 그 과정을 대하는 리더의 태도였다.
국가대표 감독은 선수들을 지켜주는 마지막 방패다. 팀이 흔들릴수록 선수의 부담을 먼저 끌어안아야 한다. 특정 선수를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모습은 선수 개인뿐 아니라 팀 전체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좋은 지도자는 선수를 방패 뒤에 세우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방패가 된다.
홍명보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비겨도 된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며 승리만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또 "어떤 결과가 나오든 책임은 감독이 지면 된다"고도 했다. 리더십은 경기 전의 각오가 아니라 경기 후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는지에서 드러난다.
경기 직후 그는 "아쉬운 결과는 감독 책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형식적인 한마디가 아니었다.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냉철한 성찰, 무엇을 바꾸겠다는 분명한 의지, 그리고 모든 비판을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진정성이었다.
히딩크 역시 완벽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특정 선수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다. 패배의 책임은 자신이 짊어졌고, 선수들에게는 끝까지 신뢰를 보냈다. 그래서 박지성은 가장 기쁜 순간 가장 먼저 감독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결국 팀을 움직이는 힘은 전술보다 신뢰다.
홍명보는 선수 시절 누구보다 헌신과 책임감을 상징했던 주장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번 대회는 더욱 아쉽다. 선수 홍명보는 책임의 무게를 행동으로 보여줬지만, 감독 홍명보는 그 무게를 끝내 감당하지 못했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무게'와 '가벼움'을 대비시켰다. 국가대표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의 영광이 아니라 패배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무게다.
월드컵은 끝났다. 그러나 오래 기억되는 것은 스코어가 아니다.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히딩크에게 달려가 안겼던 순간과, 남아프리카공화국전에서 황희찬이 공개적인 질책을 받아야 했던 모습이다.
두 장면을 가르는 것은 24년이라는 시간만이 아니다. 선수와 감독 사이의 신뢰, 그리고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자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다.
오늘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월드컵 탈락이 아니다.
국가대표 감독, 홍명보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 칼럼니스트 한정근 | 아시아브랜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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