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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과 임오군란…‘원청’은 어디까지인가/ 이덕형 칼럼 |
1882년 임오군란은 구식 군인들이 차별과 체불을 견디다 못해 결국 ‘원청’인 임금(국가 권력)을 향해 들이받은 사건이었다. 표면적 이유는 급료였지만, 본질은 책임 주체의 최종 귀속점이었다.
오늘의 노란봉투법 논쟁도 다르지 않다. 사용자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권리 보장과 책임 부과의 경계는 어디인가. 한국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은 단순한 노사 갈등의 차원을 넘어선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두 갈래다. 첫째, 원청 사용자 범위 확대다. 하청 노동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원청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취지다. 둘째, 불법 파업 손해배상 제한이다. 과도한 손배·가압류로 노조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취지 자체는 귀하다. 그러나 법은 선의로 작동하지 않는다. ‘실질적 지배력’의 기준이 모호하면 분쟁은 사법부로 이월되고, 노사관계는 예측 가능성을 잃는다. 납품단가 결정권, 작업 지시, 인력 운영 관여 가운데 어느 지점부터를 지배로 볼 것인가. 답이 흐리면 현장은 혼란으로 기운다.
합법적 파업권은 민주사회가 지켜야 할 권리다. 그러나 공장 점거, 시설 봉쇄, 납품 차단 등 불법과 결합했을 때 광범위한 면책을 허용한다면 권리는 특권으로 변질된다. 해외 주요국도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전면 면제하지 않는다.
점거 금지, 대체근로 허용 등 기업의 방어권을 병행해 균형을 맞춘다. 한국만이 노조 권리의 외연만 넓히는 일방향 실험을 해서는 곤란하다. 임오군란은 최종 책임 주체를 향한 항거였다. 오늘의 법제도 논쟁 역시 최종 책임의 좌표를 어디까지 확장할지 묻는다.
법 적용이 산업 현장을 넘어 공공·준공공 영역, 정부 산하기관으로 번질 경우, 정책 결정 권한자까지 분쟁의 직접 당사자로 끌려들어갈 수 있다. 책임의 확대는 곧 권한의 재배분을 뜻한다. 그만큼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정치권은 ‘노동 존중 대 기업 옥죄기’라는 이분법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 한다. 그러나 법은 선거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짜야 한다. 영세 하청·취약 노동을 보호하면서도 불법행위 억지력을 담아야 한다. 촘촘한 기준 없이 ‘확대’만 외치면, 법은 보호막이 아니라 갈등 증폭기가 된다.
해법은 명확하다. 첫째, 정의의 정량화다. ‘실질적 지배력’ 판단 요소(가격·공정·인력·안전·품질 통제 등)를 조문·가이드라인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둘째, 이중 안전장치다. 합법 파업은 적극 보호하되, 점거·봉쇄·폭력 등 불법은 손배·형사책임 기준을 명료화해 예외를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분쟁 예방 프로토콜이다. 노사정 상설협의체를 상시 가동해 업종별 표준교섭·중재 절차를 사전에 세팅해야 한다. 넷째, 국제 신뢰다. 공급망·투자 환경의 예측 가능성을 해치지 않도록, 국제 관행과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노동권의 방패가 될 수도, 한국 경제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차이는 책임의 좌표를 얼마나 공정하고 명확하게 그리느냐에 달려 있다. 진정한 선진국은 무책임한 권력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법질서와 균형 잡힌 책임 위에서 세워진다.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 비용은 기업도 노조도 아닌 국민 전체가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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