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vs SATAN’
박위가 KTX 낙상사고 직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문구다.
짧지만 강렬하다. ‘우리’가 있고, 그 맞은편에 ‘사탄’이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WE는 누구이고, SATAN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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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박위 인스타그램 캡쳐 |
지난 14일 박위는 KTX에서 내리던 중 휠체어 바퀴가 자신을 돕던 사회복무요원의 발에 걸리면서 넘어졌다. 이후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CCTV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사고 장면뿐 아니라 사회복무요원이 사과하는 모습까지 포함된 영상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박위는 영상을 삭제하고 “근무자님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전달 방식이 미숙했고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했다.
사고는 안타까운 일이다.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 환경 역시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CCTV 공개는 다른 문제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상대방의 실수와 사과를 대중에게 공개할 권리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박위는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다. 한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과 대규모 플랫폼에서 타인의 실수를 공개하는 것은 파급력부터 다르다.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다. 재발 방지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한 개인의 실수와 사과까지 공개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사고 당시 사회복무요원은 현장에서 사과했고, 박위 역시 고의적인 행동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CCTV를 자신의 채널에 공개한 것은 결과적으로 한 개인을 거대한 공론장 위에 올려놓는 일이 됐다.
그리고 사고 직후 등장한 문구가 ‘SATAN’이다.
물론 박위가 이 표현으로 누구를 의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회복무요원인지, 사고를 둘러싼 상황인지, 전혀 다른 대상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를 특정인에 대한 저격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단어가 던지는 질문은 남는다.
사람의 실수는 언제부터 악이 되는가.
실수와 악행은 다르다. 사고와 고의도 구별해야 한다. 현장에서 잘못된 판단이 있었다면 그 책임을 묻되, 그것을 곧바로 한 사람의 인격이나 선악의 문제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피해를 호소하는 것과 타인을 심판대에 세우는 것 역시 다르다.
박위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말할 권리가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이야기할 권리도 있다. 사고에 대한 재발 방지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권리가 타인의 실수와 사과를 공개적으로 전시할 권리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선한 영향력’을 이야기해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좋은 의도만으로 모든 방식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무엇을 말했는가만큼 어떻게 말했는가가 중요하다.
이번 논란 이후 과거 KTX·버스 이용 영상과 강연료 문제 등이 다시 소환됐고, 아내 송지은과의 사적인 대화와 표정까지 해석의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근거 없는 추측이나 과도한 비난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신의 플랫폼을 통해 타인의 실수를 공개했다면, 그 선택 역시 검증의 대상이 된다.
박위에게도 대중에게도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확인된 사실은 사실대로 판단하고, 의혹은 의혹으로 남겨야 한다. 가족의 사생활이나 짧은 표정까지 끌어와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
그렇다고 박위의 행동까지 흐려져서는 안 된다.
박위는 사고의 피해자다.
동시에 CCTV를 공개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와 책임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사과에서 중요한 것은 영상을 삭제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왜 그 공개가 잘못이었는지 이해하는 것, 자신의 영향력이 타인에게 어떤 무게로 작용하는지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한 영향력’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순간에도 상대방의 입장을 살필 수 있을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 사건은 그 점을 박위에게 되묻는다.
장애인의 안전을 말하고 싶었다면 안전을 이야기하면 됐다.
재발 방지를 원했다면 시스템을 지적하면 됐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면 됐다.
타인의 실수와 사과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었다.
‘WE vs SATAN’이라는 문구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사고는 선과 악의 전쟁이 아니다.
그 안에는 피해가 있고 실수가 있다. 현장의 판단도 있고 시스템의 문제도 있다. 각각의 책임을 따져야 할 이유도 있다.
그 복잡한 현실을 ‘WE’와 ‘SATAN’으로 나누는 순간, 사건은 해결의 대상에서 심판의 대상으로 바뀐다.
결국 중요한 것은 SATAN이 누구냐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그 자리에 세울 수 있을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것이다.
박위에게 이번 논란은 단순히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자신이 던진 한 문장과 공개한 한 장면이 상대방에게 어떤 낙인을 남길 수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한 사람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추측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
‘WE vs SATAN’
박위의 시각은 뾰족하다.
이 세상에는 ‘우리’와 ‘사탄’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자.
▣ 칼럼니스트 한정근 | 아시아브랜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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