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화가 정광복 6월 5일 개인전 개최

K-Art / 박완규 기자 / 2026-06-04 09:30:00
▲ Palette Series / 60*31Cm / 나무 위에 옻칠, 은분 / 2025

 

[소셜밸류=박완규 기자] 옻칠화가 정광복의 개인전이 갤러리 채율에서 6월5일부터 한 달 동안 개최된다.

 

한국 미술계에서 옻칠은 오랜 시간 나전칠기라는 거대한 그늘과 조형적 화려함에 가려져 장식적인 ‘공예’로 치부돼 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화학도료와 자개의 결합마저 옻칠화로 통용되며 그 본질이 흩어지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러한 척박한 토양 위에서 옻칠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순수 천연 옻칠만으로 극사실적 평면 회화의 독립성을 증명하여 견고한 편견을 부수고 비어있던 한국 옻칠 리얼리즘의 맥락을 잇는 중대한 미술사적 사건이다.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칠흑(黑漆)의 화면과 전통 '마회(磨繪)' 기법이다. 한 줄기 빛도 허락하지 않는 듯한 깊은 검은색의 배경은 단순한 여백이 아니라, 모든 빛과 형태를 잉태하고 있는 우주의 블랙홀과 같은 심연이다. 작가는 옻칠과 토회를 겹겹이 쌓아 올리고 수없이 사포로 갈아내는 인고의 노동을 통해 칠흑 속에 숨겨진 빛과 형상을 밖으로 끌어낸다. 붓으로 단번에 그려내는 서양의 유화와 달리, 옻칠 리얼리즘은 건조와 연마라는 까다로운 물성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자연스러운 명암과 극사실적인 묘사를 얻을 수 있다. 이는 고도로 숙련된 ‘기(技)’가 마침내 예술적 조형 능력인 ‘예(藝)’로 승화하는 수행의 과정이며, 일본의 마끼에나 중국의 마회에 필적할 한국만의 독자적인 옻칠 평면 회화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화면 위로 떠오른 형상들은 옻칠이라는 오래된 매체의 무게감을 유쾌하고도 날카롭게 배반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검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명품 가방을 든 고양이 등의 '패밀리(Family)' 시리즈다. 자본주의 사회가 주입한 물질적 욕망과 현대인의 페르소나를 의인화된 동물의 모습으로 포착한 이 작품들은, 수천 년을 견디는 전통 재료 위에 가장 찰나적이고 세속적인 현대의 기호를 새겨 넣었다는 점에서 강렬한 팝 슈얼리즘(Pop Surrealism)적 위트를 발산한다.

이와 대척점을 이루는 것이 바로 'Family Series'가 품고 있는 ‘가족의 온도’다. 명품 가방이 놓여 있던 자리에 등장하는 낡은 마미손 고무장갑, 수험생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식탁을 둘러싼 소박한 실랑이 등은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원초적인 따뜻함이다. 차가운 칠흑의 캔버스 위에서 현대인의 서늘한 욕망과 뭉클한 일상의 온기가 교차하며, 옛것의 기법으로 오늘의 살아있는 서사를 읊는 진정한 법고창신의 미학이 완성된다.

이러한 다양한 서사들을 시각적으로 묶어내고 구획하는 핵심 장치는 캔버스 위에 부착된 '전통 창살'과 '사각 프레임'이다. 실제 나무로 제작된 창틀은 2차원의 평면 그림을 3차원의 오브제로 확장시키며, 작품 안의 허구적 공간과 관람객이 서 있는 실존의 공간 사이의 경계를 절묘하게 허문다.

 


프레임은 단절이나 폐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가 캔버스라는 팔레트 위에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예술적 웅변을 건네는 ‘소통의 창구’다. 닫혀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활짝 열려 있는 이 창을 통해, 작가는 관람객 스스로 마음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작품이 건네는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권유한다.


정광복의 옻칠 리얼리즘은 옻칠은 공예라는 해묵은 이분법을 철저히 붕괴시킨다. 최고의 기술적 인내를 요구하는 전통 마회 기법으로 현대 사회의 냉정한 욕망과 결코 식지 않는 일상의 온기를 동시에 박제한 그의 화면 앞에서는, 누구나 걸음을 멈추고 그 칠흑의 심연에 비친 자신의 초상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광복의 옻칠화가 한국을 넘어 현대 미술의 보편적인 언어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가장 분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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