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기 전 경영진과 마찰이 불러온 사태 아니냐는 관측 제기
태광그룹, "경찰 수사에 모든 자료를 제공하는 등 적극 협조"
[소셜밸류=황동현 기자] ESG 중심 경영체제을 구축하며 기대를 모았던 태광그룹이 이호진 전 회장의 업무상 횡령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으로 또다시 오너 사법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최하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ESG 등급으로 투자자와 주주, 고객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이 회장의 경영 복귀와 태광그룹 전반의 신용도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지난 24일 이 전 회장의 서울 중구 장충동 자택과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 있는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사무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태광CC 등을 압수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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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그룹 사옥 전경/사진=연합뉴스 제공 |
경찰은 이 전 회장이 직책에서 물러난 뒤에도 사실상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압수수색을 통해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8·15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지 두 달 만이다. 이번 압수수색은 이 전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강제수사로 △그룹 임원의 허위 급여 지급·환수를 통한 비자금 조성 △태광CC 골프연습장 공사비 8억 6000만원 대납 △계열사 법인카드 8094만원 사적 사용 등 혐의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회사자금 횡령 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 됐다가 2019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지난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태광그룹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경찰이 배임·횡령 혐의로 이 전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에 대해 전 경영진의 비위 행위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태광그룹은 지난 8월 초부터 계열사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그룹 내 부동산 관리 및 건설·레저(골프장) 사업 등을 담당하는 계열사 '티시스'의 내부 비위 행위를 적발해 경영협의회가 8월 24일 김기유 티시스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감사 대상을 전 계열사로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의 공백 기간 동안 그룹 경영을 맡았던 전 경영진이 저지른 비위 행위였다는 것이 감사 결과로 확인되고 있다"며 "의혹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날 수 있도록 경찰 수사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제공하는 등 적극 협조할 방침이다. 현재 진행 중인 내부 감사를 더욱 철저히 진행해서 전임 경영진의 비위 행위에 대해서는 즉각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태광그룹은 내부 감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금융·IT 분야의 준법감시 및 내부통제 전문성을 가진 법무법인 로백스를 감사에 참여시키고 있으며, 로백스를 통해 디지털 포렌식과 회계 감사도 진행하고 있다"라고 부언했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의 해임을 두고 각종 추측을 내놓고 있다. 최근 롯데홈쇼핑 사옥 매입 과정 등에서 오너인 이 전 회장과 갈등을 빚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롯데홈쇼핑(전 우리홈쇼핑)은 지난 7월 이사회에서 임차해 왔던 서울 양평동 사옥을 2039억원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롯데홈쇼핑의 태광그룹 지분은 태광산업(27.99%)과 티시스(6.78%) 등이다.
태광그룹 측은 당시 이사회에서 사옥매입에 찬성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사면 이후 반대 입장으로 바꾸고, 법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공정거래위원회 신고에 나선 것이다. 이에 이 전 회장이 롯데홈쇼핑 이사회에서 찬성표를 던진 책임을 김 전 대표에게 물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태광그룹의 전 계열사 감사를 놓고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 전 회장이 경영 복귀를 앞두고 '내부 기강 잡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전 회장의 경영 공백 기간 동안 업무를 총괄했던 이른바 '실세'들에 대한 고강도 인사 조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광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등 두 보험계열사에 대한 내부감사를 통해 차세대 시스템 수주 과정에서 발생한 비위 사실을 적발했다. 또한 계류 중인 송사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전직 금융계열사의 대표이사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는 한편 수억원대의 퇴직금 소송전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대응중이라는 분석이다.
태광산업의 투자시계는 지난 2011년에서 멈춘 상태다. 마지막으로 회사채 평가를 받은 것도 2010년 말이다. 태광그룹의 지난 10년은 사실상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20년에는 태광그룹이 수년간 공들였던 티브로드도 SK브로드밴드로 넘어갔다.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출액이 1조원가량 떨어졌다. 영업이익은 4000억원대에서 지난해 122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1년 재계 30위권이었던 태광그룹의 순위는 올해 52위까지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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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제공 |
이 전 회장이 특사로 복권되면서 사실상 경영 일선 복귀는 시간 문제로 여겨져왔다. 이 전 회장은 여전히 최대주주로서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 지분 29.48%, 흥국생명 지분 56.3%를 소유하고 있다. 흥국화재는 흥국생명이 40.06%, 태광산업이 39.13%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앞서 이 전 회장은 '무자료 거래' 등으로 총 421억 원을 횡령하고 법인세 9억여 원대를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지병으로 인해 보석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황제 보석 논란으로 재수감돼 징역 3년을 확정받은 후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만기 출소를 했지만 이 전 회장은 횡령 범죄 확정에 따른 취업 제한 기한 등에 따라 회사 경영에 복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회장이 배임·횡령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게 되면서 다시 그와 태광그룹에 사법 리스크가 닥지게 된 셈이다. 만약 이 전 회장에게 이번에도 실형이 선고될 경우 그룹의 신용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태광그룹은 최근 전반적인 조직 재정비에도 나선 상태다. 지난 16일 경영협의회 산하에 미래위원회를 신설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심 경영 체계 구축과 함께 그룹의 비전과 사업전략 수립에 나섰다.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이사회 중심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도 구축키로 하고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를 위해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생명, 흥국화재 이사회에는 ESG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 이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논란이 됐던 만큼, 지배구조 선진화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태광그룹을 대상으로 주주 캠페인을 벌여온 트러스톤자산운용도 태광그룹이 발표한 ESG 중심 경영체제 구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 전 회장과 특수관계인에 이어 태광산업 지분 5.89%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태광산업은 한국ESG기준원의 올해 상반기 평가에서 가장 낮은 'D(매우 취약)' 등급을 받았다. 한국ESG기준원은 최하점인 D등급을 받은 기업을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이 높다고 분류한다. 같은 기간 또 다른 평가사인 서스틴베스트에서도 'B' 등급을 받았다.
재계에선 이 전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 강력한 오너십을 기반으로 태광그룹 내 신사업 등에 대한 투자가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했다. 이 전 회장이 과거 M&A 명수라는 평을 들을 만큼 투자를 통한 사세 확장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20여 개 지역케이블TV 사업자를 인수해 티브로드를 탄생시켰다. 2005년에는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피데스증권중개(현 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그러나 또다시 횡령·배임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며 이 전 회장의 경영일선 복귀는 제동이 걸렸다. 총수가 횡령으로 구속이 되는 경우 경영리스크가 있다고 판단되는 만큼, 회사의 신인도에 영향을 미치고 영업적인 측면이나 자금조달 여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경찰의 압수수색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제기된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경찰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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