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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제공 |
[소셜밸류=김완묵 기자] 최근 세계적 명품 대기업으로 유럽 최대 상장사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73) 회장이 자회사 크리스챤 디올의 최고경영자(CEO)로 장자인 딸을 임명하면서 이 회사가 승계 작업을 본격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제기됐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외신과 연합뉴스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맏딸인 델핀 아르노(47)를 디올 CEO로 임명했다. LVMH는 시가총액이 3천800억 유로(509조원)에 달하는 유럽 최대 상장사다. 게다가 아르노 회장은 지난달 기준 순자산 1천708억달러(222조원)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제치고 세계 갑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투자은행 시티뱅크의 애널리스트인 토머스 쇼베는 "최근 20년에 걸쳐 LVMH 핵심 브랜드의 성공에서는 요직 승계 계획이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면서 "이러한 점에서 이번 인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능한 기업의 소유주가 LVMH처럼 효과적인 승계작업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업의 오너가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은 것은 하나의 인간 본능에 가까운 심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의 본능대로 하는 게 정답은 아니고 잘못된 본능은 적절한 제어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승화과정을 거치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인간은 본능을 이겨낸 이성과 절제를 통해 지금의 위대한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본능에 충실하는 게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도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실제 상속세율이 80%를 웃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게 인간의 자연심성이고 특히 가업을 이어받는 경우 세율을 낮춰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경제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라 지금은 크게 낮춰주는 추세라고 한다.
이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의 실제 상속세율은 30~45%에 그친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자녀가 가업을 상속할 경우에도 실제 세율이 60%에 이르면서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주는 게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상속세율이 적용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지적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업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불협화음이 나오고 여기에 언론과 시민단체가 가세하면 합리적인 가업승계는 아예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심지어 승계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오너는 나쁜 기업인으로 매도되곤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기업인들의 가업 승계 작업을 과거의 잣대로 매도만 하기보다는 진지한 검토와 법적인 장치를 통해 이들이 합법적으로 비교적 원활하게 상속을 완료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초기 산업화시대를 훨씬 지나 성숙하고 고도화된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2세를 넘어 3~4세가 승계 작업을 하는 상황에 이른 마당에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차원에서라도 합리적인 가업승계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
과거 2013년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프랑스의 높은 소득세와 상속세로 벨기에 국적을 신청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벨기에나 프랑스보다 훨씬 높은 상속세를 부여하는 우리 기업 오너들이 얼마든지 우리 국적을 등지는 날이 올 수 있는 셈이다.
LVMH가 효과적으로 가업승계를 단행할 수 있는 요인으로 프랑스가 가업승계에 대한 훨씬 관대한 상속체제를 갖추고 있는 게 한몫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즉 상속세/공제 사항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관대하고 차등의결권까지 있어서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LVMH의 지배구조는 우리 재벌과 다를 게 없다. LVMH의 42.36%를 Financiere Jean Goujon라는 회사가, Financiere Jean Goujon의 100%를 크리스챤 디올이, 크리스챤 디올의 69.96%를 그룹 아르노가, 그룹 아르노를 아르노 가문이 100% 가지고 있는 다층형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그룹 아르노는 디올 지분 외에도 손자기업인 LVMH의 지분 5.28%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
삼성 오너 가문이 직접 보유 지분 외에도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와 같은 셈이다.
아르노 가문이 직접 가지고 있는 LVMH의 지분 가치는 세 회사의 합병 기준으로 0.4236 × 0.6996 × 100 = 29.63%에 불과하고 여기에 그룹 아르노가 직접 가지고 있는 5.28%를 더한 34.91%에 불과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상법 상 주식 보유 기간에 따라 차등의결권을 부여받기 때문에 과반이 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즉 크리스챤 디올이 가지고 있는 42.36%의 지분에다 차등의결권을 부여받아 실제로는 59.01%의 의결권을 가지고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같은 존재인 LVMH를 경영권 침해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오너 가문이 지배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상속을 위한 작업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우리 국회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어 이게 통과될 경우 삼성의 지배구조는 와해될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만 보유할 수 있어 26조원에 달하는 나머지 지분은 모두 팔아야 한다.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와해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우리 국회도 이제 기업인의 가업승계 체제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법률 검토에 나설 때라고 본다.
이제는 삼성생명법이 아닌 삼성승계법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가 나서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과정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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