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이나 극중의 시대는 결코 뉴라이트 같은 이분법적인 분열이나
포퓰리즘적인 민족주의로 이룰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 |
▲이종찬 광복회장이 2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광복회 제114주년 국권상실의날 행사에 참석해 개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소셜밸류=김완묵 기자] 최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73)이나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68)의 임명을 두고 친일 논쟁이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논란은 우리나라가 광복이 된 지 79년이 됐지만 일부 진영 논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전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기도 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설정할 때 염두에 둬야 하는 문제로 부각되기도 한다.
즉 일제의 무력 침략과 강점의 시대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로도 작용하는 게 우리 역사의 현재의 주소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건국절 이슈가 생기면서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까지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그리 오래 지속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중국이나 대만 또는 아시아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하면서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가와 국민의 프라이드를 높이는 길이 있다면 국민의 의지를 모아 한 길로 나아가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길은 이미 우리나라 헌법에 확실하게 명시돼 있다는 것이 우리 국민과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보인다. 하지만 뉴라이트 운동이 생기면서 이를 부정하는 듯한 논란이 제기되고 일부 동조자들이 생기면서 국가의 정통성이나 프라이드까지 흐리게 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생겼다고 본다.
어쩌튼 뉴라이트나 친일이나 이런 논리는 우리가 겪은 일본에 의한 뼈 아픈 과거사를 돌아본다면 결코 추종해서는 안되는 논리라고 본다. 무력 전쟁을 일삼았던 일본마저도 자신의 역사를 미화하며 전쟁 범죄자를 숭배하는 일까지 벌이면서 과거 역사 끌어안기를 하는 마당에, 자랑스런 독립 투쟁의 의지로 세계적으로도 존경 받는 삼일운동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탄생한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정통성까지 부인하며 우리 역사 폄하하기를 일삼는 뉴라이트 운동까지 끌어 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무조건 일본과의 교류에 반대하거나 조선 우월주의적인 민족주의에 집착한 반일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먼저 우리 역사를 뒤돌아볼 때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조선 내지는 한민족이 일본을 압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만 돌아 봐도 일본은 국가라고 분류할 수도 없는 정도로 미미한 존재여서, 주변국을 약탈하거나 주변국의 문명에 의존해 근근이 살아가는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국력의 차이는 세종대왕 시대 무렵에 이르러 극도로 벌어져 우리가 쓰시마를 정벌하고 문물을 전파해주자 이를 고마워 한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종대왕 이후 조선의 국력이 내리막길을 가는 대신, 일본은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내란의 시기인 전국시대를 통해 조선에 비견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임진왜란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은 본격 통일세력으로 성장했고 조선은 중국과 일본에 끼인 존재로 발전을 멈춘 상태가 오래 지속돼 양국의 국력이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역전됐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이 전국을 통일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의 궤도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에도 시대(1603~1868년)를 열었던 미국으로 치면 조지 워싱턴 장군 같은 훌륭한 정치철학을 지녔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형식적이나마 천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위치에 있게 함으로써 국가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도, 한 국가의 실질적인 운영의 책임자로서 자신의 정치를 열어 보인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실용주의적인 철학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이런 덕분에 일본은 에도시대 200여 년간 급격한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이 이뤄졌고 사회 안정과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으며 아름다운 문화의 꽃을 피운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져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디딤돌이 된 것은 물론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가슴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미래로의 전진을 시작할 때다. 어쩌면 현 시대 우리 대통령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도 그러셨고 윤석열 대통령도 가장 애용하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미래로의 전진은 극일(克日)이나 극중(克中)과 같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 국민이 자존감과 열정으로 세계를 향해 함께 발전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정신적 토대가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는 국정을 이끄는 정치세력들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키워서 일본, 중국 등 주변국에 앞서면서 중심국가로 성장하겠다는 선견지명과 정치철학을 지녀야 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메이지 시대 일본과 같이 안으로는 독재 정치를 실시하고 밖으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못 살게 굴어 약탈적으로 앞서가겠는 정책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안으로는 국민이 평화롭고 빈부격차가 적으며 발전된 과학기술을 통해 풍요로운 시대를 이루면서도, 밖으로는 우호선린관계를 바탕으로 발전된 문물을 필요하다면 전파해주는 형님 국가의 위상도 지녀야 할 것이다.
극일이나 극중의 시대는 결코 뉴라이트 같은 이분법적인 분열이나 포퓰리즘적인 민족주의로 이룰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에도시대 혹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번영기를 이뤘다는 강희제 시대, 멀리 갈 것도 없는 세종 치세를 염두에 둔 정치철학이 우리 시대정신의 일부로 자리잡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마무리하고 22세기, 또는 23세기에 들어서도 대한민국이 여전히 글로벌 국가를 리드하는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한다.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