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될 수 없는 동반자 관계가 형성된 점을 감안해
일방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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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소셜밸류=김완묵 기자] 한국과 미국 정부의 관세협상이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관세협상을 조기 타결한 일본, 유럽(EU) 국가들에 비해 자동차와 같은 경우 10%포인트 높은 세율 부담으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3500억달러를 거의 대가 없이 현금으로 거저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미국에 투자를 한다는 개념이라면 당연히 그 돈의 사용처는 한국과 미국이 협상을 하되 현안인 한미 양국의 제조업 부흥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사실 미국 측의 3500억달러를 현금성으로 그것도 선금성으로 투자하라는 요구는 국제법을 어기는 '착취적 약탈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체결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기반으로 양국은 상호 무관세 무역을 해왔고 합법적인 거래관계를 형성해왔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이게 잘못 됐다며 협상 한번 해보지 않고 FTA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것은 주권 국가 간 거래에서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관세를 높이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3500억달러를 무조건 내놓으라고 엄포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동안 한미FTA를 통해 미국보다 많은 이득을 취한 것으로 나타나 미국 측에선 억울한 바가 있으므로 보상 차원에서 우리에게 큰 것을 요구할 수는 있으나 이것도 어느 정도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3500억달러(약 490조원)는 우리 정부의 한 해 예산(700조원 내외)의 3분의 2를 넘는 큰돈인 데다 우리가 가진 외환보유고(4160억달러)를 거의 털어 넣어야 맞출 수 있는 금액이다.
일본 외환보유고가 지난 9월 기준 1조3200억달러 수준에 달하는데 5500억달러를 요구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 측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과도했는지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일본 외환보유고가 우리에 비해 3배 넘게 많은 것을 감안하면 1조달러 이상을 요구해야 했는데 절반에 그쳤다. 이것을 감안하면 한국 측에 2000억달러 이하를 요구해야 하고, 만일 금액을 현 수준에 맞춘다면 적어도 사용처 및 투입 시기 및 방법은 우리에게도 협상 주도권을 줘야 합리적이라고 본다.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에 발표한 내용으로 돌아가 한국 측이 1000억달러 정도를 알래스카 가스 구매에 활용하고, 1500억달러를 미국의 조선산업 부흥에 활용하며 나머지 2000억달러를 반도체, 원전, 배터리, 전기차 등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위한 돈으로 활용한다는 협상의 초기 구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같은 협상을 이행하는 데도 한국 측의 부담이 상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한미 양국의 제조업 부흥이라는 절실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양국 국민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물론 한국 측에서 현물-선물이 아니고 지급 보증 등 다양한 형태를 동원한다는 복선이 깔린 점에서 미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점이 있겠지만,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우리의 진심은 거짓이 없다는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와중에 조지아주에 파견 나와 있는 우리 근로자를 불법 체류자로 분류해 강제 구금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측이 다소 우리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바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파견 근로자가 불법이 아니었고 미국 측의 사정으로 현지 근로자 채용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서로 간 오해는 상당 부분 풀어진 것으로 보인다. 비자 문제나 현지 채용과 같은 사안에서 비교적 빠른 시일에 합의안을 도출해가는 점에서 되레 비가 온 뒤 땅을 단단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는 사안도 우리 경제 규모를 감안하고 양국 경제 특히 제조업을 살려 간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 측의 요구가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는 31일부터 이틀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전에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쾌도단마 식보다는 시간을 두고 양국에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대통령실은 지난 2일 한미 간 협상이 진행 중인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운용 방안과 관련해 "한국 측의 수정안을 미국 측에 제안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대한민국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우리 국민들도 정부의 협상 자세에 대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9일부터 1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2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우리 경제 사정상 현금성 직접투자는 적절하지 않다'가 55%, '현금성 직접투자를 하더라도 관세율을 낮추는 게 적절하다'가 29%였다.
동시에 국민 10명 중 8명은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미국의 3500억달러 선불 요구가 부당하다고 여긴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리얼미터가 지난 1∼2일 전국 만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으로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3일 발표한 것에 따르면 미국의 대미 투자 선불 지급 요구에 대해 '부당하다'는 응답이 80.1%에 달했다.
한국에 대한 관세를 올려야 한다고 보는 미국인보다 관세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훨씬 많다는 미국의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관세를 '올려야 한다'는 응답은 10%로 나타난 반면, '현 수준 유지'와 '내려야 한다'는 응답률은 각각 33%를 기록했다.
이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관계가 안보는 물론 경제에서도 분리될 수 없는 동반자 관계가 형성된 점을 감안해 일방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기를 바란다. 이 길이 중국 제조업 부흥을 견제하며 21세기에도 경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 이익에 부합하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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