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란봉투법이 파견직-비정규직 근로자의 워라밸 개선의 밑걸음이 되길

인물·칼럼 / 김완묵 기자 / 2025-08-31 06:24:05
파견직-비정규직이 뉴노멀이 된 사회에서
이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자는 취지로 해석하면 될 것
▲사진은 고용노동부, 노동조합 (CG)/연합뉴스 제공

 

[소셜밸류=김완묵 기자] 지난 24일 여당 주도로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대기업 경영환경이 크게 악화했다는 주장을 많이 듣는다. 조만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6개월의 준비기간이 지나면 2026년 3월 이후로는 본격 시행이 될 것인데,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하청업체 근로자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하청업체 노조들이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교섭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선 과거 자신의 정규직만 신경을 쓰고 교섭하면 됐는데, 신경 쓸 대상이 늘어났으니 노란봉투법이 '회사파괴법'이라고 부르는 게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거 주5일제를 비롯해 주52시간근무제 등이 도입될 당시를 회고해 보면 경영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지만, 결국 도입이 돼서 우리 사회의 삶을 질을 개선하고 직원들의 워라밸을 크게 업그레이드하는 순기능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측면을 압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2018년 주52시간근무제가 실시되면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은 확실하게 개선된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아기를 많이 듣는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은 2018년 이후와 2018년 이전으로 직장생활의 워라밸이 확연하게 구분된다고 말한다. 주52시간근무제가 자신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도 평가한다. 여기에 2020년 이후 코로나19가 덮치면서 과거 술문화가 지배하던 직장 분위기가 거의 사라지고 직장인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가 정착되고 직장과 가정이 양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주52시간근무제가 도입되기 전만 해도 대기업 직장인들은 주로 저녁 7~8시가 퇴근시간이 되다 보니 평일에 집에서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직장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한 이후에야 퇴근길에 오르거나 아주 배고픈 몸을 이끌고 퇴근길을 재촉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예 바로 집으로 가기보다는 저녁모임을 이어가며 술 한잔에 긴장을 풀고 애프터 직장생활을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저녁 술문화가 지배를 하고 저녁 10시 이후에야 자신만의 삶을 찾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결국 주52시간이 넘는 근로 환경에서는 직장과 가정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은 언강생심 실천하기가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탄력근무제까지 도입한 직장도 많아 저녁 5시면 퇴근길에 오르게 된다. 늦어도 6시엔 퇴근에 나설 수 있어 집에서 가족과 같이 식사가 가능한 삶이 도래한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은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도 없었고 일부 실적 좋은 IT 대기업들은 연봉 1억원이 넘는 고임금 추세가 계속되면서 그들은 요즘 웬만한 '사'자 직장인이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맞벌이 부부로서 살아가는 데도 워라밸에 크게 지장을 안 받는다.

 

그러나 이런 대기업 정규직 직원들의 워라밸이 향상된 이면에는 파견직-비정규직 직원들의 애환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1997년 IMF 사태, 200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파견직 및 비정규직이 양산이 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원화된 고용구조가 고착화됐다.

 

2010년대 이전만 해도 1차 하청 정도에서 일이 해결되는 추세였다면 2010년대, 2020년대에 오면서 2차 하청, 3차 하청이 등장하고 원청은 누가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일을 맡기는 경우가 다반사 됐다. 하청에 하청을 주는 하청의 다층화가 일반화되고 이게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했지만, 결과만 잘되면 된다는 식으로 우리 대기업들은 이원화된 고용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하청의 다층화에 따른 부작용으로는 직장인들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 선진국에 걸맞지 않게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점, 수도권 집값 앙등을 초래한 점 등을 들 수 있겠지만 어느새 '비정상이 정상'이 된 셈이다.   

 

대기업들이 인건비를 아끼려고 많은 루틴한 일들을 하청업체들에 맡기다 보니 정규직 채용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 대신 파견직-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고착화되었고 꼭 필요한 일들에만 정규직을 채용해 장기 근로환경을 제시하다 보니, 지금 젊은 세대에겐 정규직보다는 파견직이나 비정규직 혹은 배달 근로자들로 일하는 게 정상적(노멀한)인 사회가 됐다. 

 

이런 파견직-비정규직의 양산이 결국 이번에 노란봉투법으로 일컬어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파견직-비정규직이 뉴노멀이 된 사회에서 이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자는 취지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즉 '비정상의 정상'화의 길을 찾아보자는 시도로 해석하면 경영자들도 노란봉투법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들도 경영자들의 이해와 양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노란봉투법을 사회 투쟁의 도구로 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업그레이드되는 방향으로 상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용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이제는 사용자와 정규직 근로자가 파견직 및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워라밸 개선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개선된 워라밸이 정규직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 근로자들에게도 고르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동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파견직이나 비정규직을 활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규직을 늘리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그들에게 개선된 근로여건을 줄 수 있도록 하고 노란봉투법이 제시하듯이 원청이 직접 나서 협상에 임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파견업체와 계약을 할 때도 원청과 분리된 사안으로 계약을 하기보다는 원청이 경우에 따라서는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나타내 원청이 가급적 개선된 근무여건을 파견직 근로자들에게도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물론 단기적으로 대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인데, 그점은 정규직과 주주들이 나눠서 지는 방향으로 해결해 갔으면 하는 제안이다.

 

정규직은 과도한 임금 인상을 주장하기보다는 그늘에 가려진 주변부 근로자까지 배려하는 방향으로 임금 협상을 하는 관행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주주들도 당장의 큰 영업이익에 따른 배당 추구보다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에 따른 지속가능한 열매를 추구하는 방향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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