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무념무상'하게 살아도 나쁘지 않다.

정치 / 김미진 기자 / 2020-04-11 10:19:48
[무념무상] 저자 박준범

책 소개



<무념무상>은 박준범 작가의 에세이다.


작가는 힘든 시기에 책을 읽으며 '사는 건 다 똑같구나'하는 공감과 위로를 받고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을 내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의 기록들은 책이 되었다. 서른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하루하루 살다 보니 서른이 된 것처럼 말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삶. 참으로 많은 걱정과 고민,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서른을 앞두고 별생각 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생각을, 고민을 하지 않아도 별일 일어나지 않음을. 매일매일 그럴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무념무상'하게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것을.


박준범 작가의 에세이 <무념무상>은,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어딘가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출처: 다시서점
출처: 다시서점


저자 소개



저자: 박준범





목차



#1 무지無知했던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10 / 해바라기도 가끔 목이 아프죠 12 / 삼시 '세끼'와 '새끼' 14 / 마음의 '녹'도 지워지나요? 17 / 한 번 더 이별 19 / 자각몽 25 / 서로를 위한 배려 27 / 찬란한 슬픔 30 / 어쩌다 어른 32 / 처음 느낌 그대로 35 /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이 아닐 거야 37 / '틀'에 박혔던 '자유' 40 / 달도 차면 기운다 43



#2 무심無心했던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에 관한.


나만 바라봐 48 / 인생의 무게 50 / 가을, 그 쓸쓸함에 대하여 52 / 그때의 나, 그때의 우리 54 / 계절은 감정을 묻히고 58 / 지나서 하는 후회 60 / 거스를 수만 있다면 63 / 끝내 전하지 못한 말 65 / 나에게 넌 69 / be born to 소심 71 / 흩날리는 추억 73 / '사랑'이라는 감정의 기원 75 / 걸음이 느린 아이 77



#3 무성無聲했던


쏟아지는 타인의 말들에 대해.


누가 뭐래도 84 / 지나친 관심은 'NoNoNo' 86 / 잘 알지도 못하면서 89 / '긍정'의 최면 90 / Lucky guy 93 / 내가 알아서 할게 96 / 이유 있는 외로움 98 / 사람은 사람으로 잊혀지네 100 / 무언의 '색안경' 103 / 취미라도 마음껏 즐길게요 105 / 그걸로 충분해요 108 / 난 꾸···꿈이 있어요 110 / 답정너 112 / 아무도 몰라요 114



#4 무사無事했던


그럼에도 별일 없는 '삶'에 대하여.


필사즉생必死卽生 118 / 스스로에게 건넨 위로 120 / 듣고 싶지 않은 소리 122 / 이놈의 '자본주의' 124 / 피는 물보다 진하다 127 / 습관성 '부름' 129 / '평범함'이라는 재능 132 / 비슷한 또 다른 134 / 엄마의 '침묵' 136 / 손에 손 잡고 139 / 흔들림 없이 피는 꽃은 없다 140 / 잠깐이라도 142 / 어떻게든 가면된다 144





본문



나에게 울음은 장마와 같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장마처럼 울음은 나에게 연례행사와 다름이 없었다. 어느 계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울음은 내 마음에 인기척도 없이 방문한다.



처음엔 울음을 피하려고만 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물기도 했고, 허벅지를 꼬집기도 했다. 남들이 내가 우는 걸 보는 게 부끄럽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들어온 "남자는 우는 게 아니야."라는 어른들의 말에 세뇌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울음을 피하지 않기로 한 건 재수를 시작했을 때쯤이었다. 계절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갑자기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도 기를 쓰고 참으려 했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결국 '그냥 울자'는 생각으로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1시간 쯤 울었을까. 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일어나 웃고 있었다. 홀가분했다.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눈물과 함께 증발했다. 그날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울음을 피하지 않고 쏟아내려고 했던 것이.



많은 사람들은 매미가 울면 여름이 왔다고 느끼지만, 나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날이면 나의 울음에 대해 떠올린다.



올해는 울음을 이미 터뜨렸는지, 아니면 다가올 계절에 울음을 터뜨려야 하는지에 대해.



-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중에서 -




우뚝 솟은 나무와 높은 아파트 숲 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별과 마주했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별을 붙잡은 것도, 별이 나를 붙잡은 것도 아니었다.



이유없는 마주함에 이끌려 그렇게 한참을 그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 위로가 됐다.



가끔은 어떤 말보다 가만히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 '나만 바라봐' 중에서 -




어느 주말 한적한 지하철 안.



국방색 잠바에 하늘색 바지를 입은 할머니는 허둥지둥 지하철에 탑승했다. 급하게 오른 할머니는 이 지하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듯 했다.



그는 옆에 앉은 손녀뻘 되는 여성에게 파주는 어떻게 가냐고 물었고, 그 여성은 귀찮은 내색 없이 휴대전화를 한참을 들여다 본 후 파주 가는 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목적지를 뒤로하고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목을 꺾은 채 잠이 들었다.



그들의 나이도 종착지도 달랐지만, 인생에 대한 무게와 피로는 같은 방향이었다.



- '인생의 무게' 중에서 -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태어나면서부터 언젠가 될지 모르는 죽음을 인지하고 살아간다. 힘들 때 우리는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막상 죽음이 다가오면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두 번째 수능 성적표를 받아 집으로 가는 길. 내 머릿속엔 어떤 대학, 어떤 학과 대신 부모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성적표를 받아든 엄마는 '같이 죽자." 나를 베란다로 끌고 갔다. 참고로 우리 집은 23층, 아파트 꼭대기. 당시 베란다 끝에서 내려다 본 아래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아찔했다. 이후에도 나는 엄마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이.



당시엔 힘들었고 지금도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결국 지금의 나를 이끈 건 그때의 실패와 엄마의 다그침이었다. 옛말 중에 틀린 말이 없다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한 순간의 실패가 끝이라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슬퍼도 아파도 어떻게든 살아진다.



- '필사즉생必死卽生'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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