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와 사랑, 사회 초년생의 무수한 방황과 고뇌에서 비롯된 이야기들

정치 / 오도현 / 2020-04-03 17:44:40
[진부한 에세이] 저자 오수영

책 소개



<진부한 에세이>는 오수영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등을 쓴 오수영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이며, 이번에 새롭게 리뉴얼 되었다.


인간관계와 사랑, 그리고 사회 초년생의 무수한 방황과 고뇌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누구나 겪는 진부한 고민들이지만 남들보다 성장통을 심하게 앓던 한 사람의 결코 진부하지 않은 입장과 다짐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말한다.


"여전히 관계의 길목에서 서성이는 분들이라면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오수영 작가의 에세이 <진부한 에세이>는 관계의 기로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어줄 것이다.



출처: 스토리지북앤필름
출처: 스토리지북앤필름


저자 소개



저자: 오수영





목차



총 300페이지





본문



세월은 흐르는데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여전하다. 과거에 갇혀 현재를 살아갈 수 없고, 미래가 두려워 자꾸만 과거로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은 그곳에 숨어버린다. 똑같은 실수는 언제나 반복되며 깨달음은 언제나 몇 걸음씩 늦게 찾아온다. 사람들은 똑같은 반복에 지쳐가면서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미궁 속을 헤매다 길을 잃어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믿으며 다시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니, 빨려 들어간다.



- '사랑을 멈출 수 없는 병' 중에서 -




사람들은 언제나 관계의 간격을 좁히려다 기어코 관계를 폭파시키고야 만다. 당신도 나처럼 얼른 나만큼의 감정을 표현해달라는 서두름이 이제 막 온기로 따뜻해지려 하는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붕괴시킨다. 기다림은 많은 예술 작품들 속에서 언제나 미학적으로 풀이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황폐화시킨다. 사실 폐허가 된 많은 관계들은 그대로 두었더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관계들이 많지 않았던가.



상대가 좀처럼 나를 따라와 주지 못한다거나 아니면 내가 상대를 좀처럼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것은 불안을 낳는다. 불안은 그림자와 같아서 어떠한 관계에든 따라다닌다. 다만 행복하다 싶을 때 좀 더 눈에 띄기 쉬울 뿐이다. 서로를 가만히 두었더라면, 재촉하지 않았더라면 언젠가 우리는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나의 한 시절 정도는 온전히 쏟는 정도의 다짐이 영원이라는 말의 전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간격' 중에서 -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생김새로 먼저 기억된다. 때로는 말투나 목소리, 그 사람의만의 분위기, 입고 있는 옷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주 드물게 그런 것들보다 느낌으로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맑은 사람이라거나 잔잔한 사람이라거나 혹은 거친 사람이라거나 하는 식이다.



-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 중에서 -




해가 지고 어두운 시간이 되면 가끔 옆집 아가씨의 울음소리가 원룸 벽을 타고 천천히 넘어온다. 나는 겁이 좀 많은 편이라 보통 정적만이 흐르는 컴컴한 방 안에서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어찌 됐건 일단 오싹한 기분이 들기 마련인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옆 집 아가씨의 울음소리가 무섭다기보다는 조금은 서럽게 들렸다. 그래서 평소의 기분 나쁜 오싹함이 아닌 뭔가 정서적으로 따뜻한 유대감을 느껴질 정도였다.



- '벽을 타고 넘어오는 울음소리' 중에서 -




아마 초등학교 때였지. 새 학기가 찾아오고 반이 바뀌었어. 우리는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누며 각자 새로운 반에서 낯선 아이들과 짝이 되었지. 쉬는 시간 종이 울릴 때마다 우리는 복도에서 만나 서로를 그리워했다. 새로운 반 아이들은 조금 이상해. 그냥 너랑 계속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았을걸. 잡지도 않던 손까지 잡으며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작별을 했다.



서로의 반이 일찍 끝나면 복도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이었지. 어쩌다 시간이 엇갈려 너를 잠시라도 볼 수 없던 시간에는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다시 예전의 반으로 돌아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서로의 쉬는 시간이 엇갈리는 날들이 잦아지면서 온종일 서로 볼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네가 보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는데 이상하기만 했던 새로운 반의 친구들도 그럭저럭 어울리기에 괜찮은 거야.



네가 밖에서 우리 반 창문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줄 알면서도 나는 결국 복도로 나가지 않았다. 아니 네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깜빡한 거야.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엇갈리며 서로의 빈자리를 다른 친구들로 채워나갔지. 그렇게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로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되었어. 그리고 이것이 평생 반복되며 앓게 될 관계의 굴레라고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 '관계의 굴레' 중에서 -




언젠가부터 사람과의 만남이 사진으로 시작해서 사진으로 끝나게 된 것 같다. 사진이라도 건져야 오늘을 공들인 보람이 있다는 듯 사람들은 만남의 순간부터 이별까지 모든 순간들을 잡아두려 애쓰고 그것들을 최종적으로 인터넷 세상에 전시한다.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은 지극히 정상이지만 그 욕망이 다른 가치들을 뛰어 넘을 때 우리의 삶은 기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 '사진의 아이러니' 중에서 -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