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에게는 지나지 않은 문장이 있다.

정치 / 오도현 / 2019-12-30 20:39:25
<지나지 않은 문장> 저자 채풀잎


책 소개


[지나지 않은 문장]은 채풀잎 작가의 산문집이다.


책에는 작가가 적어둔 도시의 새벽, 그 목가적인 풍경이 아른거린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지나지 않은 문장이 있다고 귓속말하듯 적어둔 82편의 산문으로 책이 구성되었다.


작가는 말한다.


"당신은 새벽이 내게 주는 유일한 위안입니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채풀잎


목차


총 126페이지


본문


아직도 지나지 않은 문장이 있다고 새벽을 적어둔다.


새벽이라는 문장이 길어지는 건 아직도 밤을 지나지 않은 사람이 있거나, 아직도 아침을 지나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일게다. 지나지 않은 문장들이 길어져서 이불처럼 덮이면 소곤소곤 꿈을 꾼다.



내게도 아직 지나지 않는 문장이 있노라고 당신에게 귓속말하는 꿈을.


- '지나지 않은 문장' 중에서 -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 같은 것 따위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리 없다. 마음은 오늘 처음 눈을 뜨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는 동안에. 마음은 머리를 손질하고 신발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에. 다시 시작되는 오늘 하루 같은 것.


그저 흘러가도 좋다. 가슴 깊이 담아두어도 좋다. 마음은 언제나 그렇게, 오늘부터 처음 시작인 것. 마음은 언제나 이렇게, 오늘 처음 가진 것.


- '마음은 오늘 처음' 중에서 -


아침에 눈을 뜨면 몰래 자란 손톱이 간지러워요.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는 동안 커버린 건 손 끝의 단백질뿐일까요. 뿌리 없는 나무가 공중에 떠 있는 상상을 합니다. 그 사이로 머리를 넣었다 뺐다 하면 뒤통수가 쭈뼛 - 해요. 나는 어깨를 움츠린 채 보리싹 끝을 모으고 베베 꼬아봅니다. 지문 사이로 연둣빛이 한참을 머물도록, 새벽닭이 울 때 성큼 나온 손톱이 닳도록. 반질반질한 차돌을 닦아 입안에 넣어봅니다. 삼킬 수 없는 글자들이 어금니를 조각내는 순간 흐르는 강물이 달려가는 곳의 소년과 소녀가 어른이 되었습니다. 달도 잘라낸 손톱처럼 변해갑니다.


- '잘라낸 손톱처럼' 중에서 -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어요. 장밧비에 고요한 도시, 이따금 떠오르는 계곡물 소리. 흠뻑 젖을 여유 없는 소문만 무성한 뒷골목, 씻겨가는 중에도 더러워진 것이 있었답니다. 연관검색어였던 이름은 금기어가 되었고, 오늘 밤 아스팔트 도로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펄떡펄떡. 세상에 별일이 다 일어나도 모두 눕는 건 아니랍니다. 이유가 있어도 없는 날이 있고, 오늘은 아무도 없는 날이랍니다.


- '오늘은 아무도 없는 날' 중에서 -


특별한 존재는 없다. 하지만 특별했으면 하는 바람이 맹목을 만들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거짓 당위를 얻게 되면 사람들은 진실이야 어떻든지 간에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짝사랑이 이와 같고, 외사랑이 이와 같아서 나는 가장 선한 사랑만이 진심을 획득하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세상의 아주 작은 슬픔에 관하여 생각한다. 길가 위의 벌레가 밟혀 죽지 않도록 나뭇잎에 옮겨두는 자그마한 일이 남은 인생의 고독을 위로하리라 여기는 탓이다. 특별한 존재는 없다. 하지만 특별했으면 하는 바람이 우리에겐 불어서. 당신은 어디선가 어제, 또는 오늘. 특별할 사람.


- '당신은 어디선가' 중에서 -



인생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기를. 입안에는 사탕처럼 달콤한 술이, 입밖에는 희망이 되는 말이, 내 손과 발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걸을 수 있기를. 그 어떤 전쟁도 의미 없는 바다로 가서 바닷물을 삼키면 분노도 원망도 아픔도 슬프도 차분해지기를. 흰 깃발을 들고 달리는 바람처럼, 수천 번의 키스 같은 파도처럼, 사람을 설 수 있도록 만드는 말과 모래처럼.


- 지나지 않은 문장, 125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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