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함수민 작가의 에세이다.
함수민 작가의 직업은 간호사다. 출근이 무서워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하지만, 그만두겠다고 못하겠다고 외치기에도 삶이 바쁘고 팍팍해서, 남들 다 버티고 있는데 나만 못 버티는 것이 억울하고 서러워서, 우리끼리만 먹고 마시며 대화하다 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힘들다는 직업'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개인적 경험과 생각으로 소소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병원 직원의 하나인 간호사로서, 환자로서, 한 개인으로서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함수민 작가의 에세이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를 통해 독자들은 2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은 간호사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소개
저자: 함수민
목차
프롤로그_너 눈에 빛을 잃었어
1. 그들의 이름은 모두 선생님
그러나 나의 이름은 14 / 앵무새 죽이기 21 /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 27 / 화장실, 안 가는 거예요 33 / 감히 동료라니 40 / 수레바퀴 밑에서 48 / 자극, 자극을 달라 53 / 한 달 술값 80만원 60 / 적응한 자와 부적응자 67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73 / 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만 있는 게 아닙니다 82
2. 어느 날, 그렇게 환자가 되었다
기억에 남는 사람 90 / 죽지 마세요, 제발 사세요 95 /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었다 102 / 교수님의 큰 그림은 비루한 제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08 / 연명의료 결정법 115 / 어느 날, 나도 환자가 되었다 121 / 우리는 모두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132
3. 걔 뭐하고 지내?
부적응자의 병원 탈출기 140 / 병원 독이 덜 빠진 삶 145 / 면허 있으면 여기 떨어져도 다시 일할 수 있겠네요? 150 / 좋다는 말을 천만번 해도 아쉬울 만큼 157 / 사랑받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161 / Answer: Love Myself 164
에필로그_생각이 많아 잠 못 이뤘던 시간
Special Thanks to
본문
"신규 선생님 이리 와 봐요."
"얘 신규야, 너 뭐하니. 이거 안 챙길거야? 네 환자 아니야?"
내 이름은 신규, 정확하게는 신규 선생님이었다. 신씨 성을 가진 규쌤이라 부르면 좀 자연스러울까. 이름이 같은 친구들은 병동에 수두룩했다. 가끔 진짜 이름으로 불릴 때도 있었지만, 대개 좋은 경우가 아니었기에 정은 없지만 본명보다 규쌤이가 좋았다. 나의 실수, 미움받는 나의 정체성이 다른 자아에 입혀지는 것 같아서, 나와 내 이름 쌍둥이들을 제외한 모두의 이름은 선생님이었다.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약사 등 너 나 할 것 없이 병원에서 일하면 선생님으로 불렸다. 우리도 그랬어야 했지만, 아무에게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척박한 근무환경에 뿌리내리고 버텨내어, 꽃을 피워내고 유지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어떤 상장과 같았다.
우리는 애초에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인력이 부족해서 부서에 배정됐지만, 실상은 인력-1이라고 해도 좋을 사고뭉치들이었다. 간호학의 기본 지식은 물론 환자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들. 한 명의 환자를 맡는다는 것은 하나의 목숨을 책임지는 일이다. 우리는 작은 실수에도 환자가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조차 없는, 무지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정예 부대였다. 환자와 동료, 동료는 간호사와 의사뿐 아니라 다른 모두를 포함한다. 나아가 병원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신규 간호사는 교육을 받는다. 병원에서는 귀중한 생며의 무게만큼 한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온전한 한 사람을 붙여 교육했다. 가르치는 사람은 프리셉터, 배우는 사람은 프리셉티라고 불리게 된다. 교육의 중요성을 따지는 것은 좋지만 하나의 인력이 일과 교육을 동시에 담당하게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프리셉터가 되기 이전에 퇴사한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무책임하게 말하련다. 힘들겠지. 하지만 신규도 힘들다. 한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억울할 만큼. 환자의 혈압과 심박수 등 각종 정보르 띄워놓는 모니터 조작법부터, 병동에 어떤 물품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혈관에 꽂을 두꺼운 관을 삽입할 때 필요한 절차와 물품을 알아야 했다. 이제 막 태어나서 손이 움직인다고 신기해하는데, 뜨개질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왜 못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고 타박하면 좀 비슷한 기분이려나.
신규는 일을 못할 수밖에 없었지만 못하는 사실 자체는 수용될 수 없는 곳이었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기에 못해서는 안 됐다.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인격을 모독하는 공격적인 말을 듣고 차별을 받는 것도, 당연히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아, 쌤 신규죠? 노티하러 왔으면서 환자 이름도 몰라요? 나 참, 환자 이름도 모르는데 처방주면 약은 제대로 주는 것 맞아요?"
나를 나무라는 대상은 비단 우리 구역, 간호사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환자를 병동에 보내거나 혹은 중환자실에 입실시켜야 할 때, 다른 부서 간호사가 대뜸 짜증을 내며 자기 일을 나에게 시키기도 했다. 의사에게 노티할 때 환자 이름을 헷갈리면 당연하게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검사가 밀려 있던 방사선사에게도, 환자 대소변을 치울 때에도 주임님들에게 엉성하고 손이 느리다며 꼭 한소리 들었다. 내가 마주치고 말을 나누는 모두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잔뜩 주눅 든 내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고 힘이 없어졌다.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직종이 협력해야 하지만, 서로가 같은 일을 할 수도 없고 도와주기에는 책임의 선이 명확하다. 전쟁터에 출전한 한 명의 간호 병사로서 나는 한 명분의 몫을 해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점점 더 혹독하게 혼이 났다. 속한 부서의 위상을 갉아먹지 않기 위해, 앞으로 발전해야 할 나를 위해. 나름대로 혼나는 이유를 합리화해보려 노력했지만 아무리 잘못한 게 확실하더라도 너무 서러웠다. 매일매일 망치로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부서지는 것 같았다.
타 구역 간호사가 시켜서, 원래 내 일이 아니었지만 잘 해냈을 때도, 왜 그 일을 네가 하냐며 물어보지도 않고 하냐며 혼이 났다. A 선생님에게 혼난 내용을 B 선생님이 물어봤을 때 대답하지 못하면 혼이 났다. 나의 실수는 서로에게 인계되었고, 오늘은 A, 내일은 B, 모레는 C로 정신없이 돌아가며 혼이 났다. 미로 같은 병원에서 세상 처음 보는 것들의 위치를 모르면, 몰라도 찾아와야지 왜 노력조차 하지 않느냐며 혼이 났다. 따가운 눈총과 멸시 속에서 나는 활활 탔다. 혼자서도 타고 선생님들에 의해서도 탔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왜 그랬는지 조금, 아주 조금 이해된다. 하지만 그곳은, 나로서는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세상이었다.
함께 발령받은 동기이자 이름 쌍둥이들이 있기는 했다. 사고뭉치 신규들을 서로 다른 듀티에 넣어 집중적으로 감시해야 했던, 지혜로우신 윗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완벽하게 분리됐다.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