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혼자라니 대단히 멋지군요]는 안나 작가의 여행 에세이다.
작가는 2019년 6월 세상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호기롭게 떠나 21일 동안 유유자적하며 매일매일 풍요롭게 먹고 마셨다. 처음 열흘은 태국의 방콕에서, 그다음 열흘은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보냈다. 이런 글을 누가 읽을까 순간순간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기가 막힌 맥주와 칵테일을 마시며 낯선 동네의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이라는 대회가 있다면 일 등 상을 받을 것임이 분명한 여행기를 쓰고 나니 차마 혼자 보기 아까워서 이렇게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가는 말한다.
"그 어디에서도 '혼자라서 대단히 멋진' 이들에게 이 글이 작은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란다."

저자 소개
저자: 안나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10년 동안 영어 사교육 시장에서 영혼을 팔았다.
할로윈에 물도 마시지 못하고 얼토당토않은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다가 불현듯 퇴사를 결심하고 이듬해 홀로 떠났다.
나무늘보가 치를 떨 만큼 게으르게 여행하고 매일매일 소소한 일상을 기록했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자 마자 홈페이지 메인에 올라 용기백배한 마음으로 독립 출판을 결심했다.
목차
프롤로그
세상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떠나다 / 저스틴 비버로는 부족하다 / 내 앞에서 무릎 꿇지 말아요 / 나는 그렇게까지 옹졸한 인간이 아니라고 믿었건만 /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 / 숙취에는 라자냐 / 난 슬플 때 아이돌을 들어 / 방콕에서는 발차기를 / Make Tacos, NOT WAR / 칵테일 말고, 커피 / 공항에서 왜 요가 수업은 하지 않는가 / 관광이 아닌 여행을 / 쟤는 옆집 고양이에요 / 길을 잃었다 /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 비나이다, 관운장님 / 국부기념관에서는 격렬한 춤을 추지 / 양키는 인간의 탈을 쓴 승냥이다. / 완벽한 밤 / 혼자라니 대단히 멋지군요 / 누군가 말을 걸어 주기를 / 그들은 불쾌지수를 모른다
에필로그
본문
정신없이 자다가 쌩뚱맞게 복도에서 들려오는 장엄한 기도 소리에 잠을 깼다. 영어였다. 이 환락의 도시에 단체로 선교를 온 건지 아니면 여름을 맞아 캠프를 온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하루를 여는 상황치고는 특이해서 나쁘지 않았다. 무슬림 거리가 근처에 있어서 알라에게 바치는 기도를 듣는다고 해도 놀라지 않았을텐데, 기독교인들이 하는 기도를 방콕 호텔 복도에서 들을 줄이야. 아멘.
피로가 풀리지 않아 정오까지 입을 벌리고 [쥬라기 월드]를 보다가 겨우 침대에서 벗어나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왔다. 바로 옆 테이블의 서양놈들 다리를 계속 떨어서 정신이 없다. 어제 비행기 옆자리 총각도 그러더만. 얘들은 밥상에서 다리 떨면 복이 달아난다고 하는 부모님이 없었나 보다.
오늘 첫 끼니를 해결하러 들어온 이 식당은 '커피 클럽'이라는 프랜차이즈 비스트로다. 어쩐지 아가씨가 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바로 옆의 호텔인 '홀리 데이 인'일 층에 있는 이 식당에서 이만 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밥을 먹었다. 듣도 보도 못한 브런치 메뉴를 주문하면서 혼자 들떴다. 생각보다 카페의 규모가 작아서 이 더위에 야외 테이블에 서양인 남자들 네 명이 옹기종기 앉아서 밥을 먹는 광경도 봤다. 으으 더워. 방콕에는 서양 남자들이 정말 많다. 외국인들에게 특화된 지역의 비싼 카페답게 서비스 직원들의 전문성도 높았는데, 아까 옆의 남자에게 갈 음식이 나한테 오는 해프닝이 있었다. 내가 시킨 게 맞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하여 일단 가만히 있었더니 직원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다시 내왔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두 번이나 사과를 했다.
비싼 돈을 주고 먹은 음식은 수란 두 개와, 삶은 콩과, 익숙하지만 생소한 삶은 채소가 밑에 깔리고 (그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그 위에 퀴노아가 가득 올라간 음식이었다. 맛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음식은 또 처음 먹어봤다. 스스로의 선택에 감탄하면서 입가에 소스가 묻지 않도록 조신한 척하며 다 먹었다. 커피 클럽의 대단한 메뉴는 그들의 시그니처 아이스 음료 메뉴인데, 내가 먹은 건 그 중 가장 무난한 아이스 라떼였다. 그러나 맛은 전혀 무난하지 않았다. 세상에, 라떼 안에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 들어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매그넘이었다. 바로 이걸 먹기 위해 나는 방콕에 온 것이다! 환희에 가득 차서 쪽쪽 소리를 내며 빨대로 팍팍 빨아먹었다. 더위로 빠져나간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카페인과 당분이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
밤 열 시, 바오밥이라는 호텔 근처의 펍에 앉아서 모기에게 물려가며 쓴다.
저스틴 비버 노래가 나온다. 선곡이 이래서는 이 거리의 주된 호구들인 서양 남자를 잡을 수가 없다.
생각보다 엄청 비싼 점심을 먹고 잠시 멍때리다가 드디어 호텔 루프 탑에 있는 수영장에서 노닥거려 봤다. 날씨가 흐리다가 볕이 들다가 오락가락 해서 온 다리에 선크림을 발랐다. 지난 봄 베트남 냐짱 리조트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다리가 다 타버려서 귀국하는 날 고생했다. 그래서 그때 처방받은 화상 연고도 챙겼다. 내 캐리어 보다가 피난민 짐인 줄 알았다.
오후의 수영장에는 서양인들이 많았다. 내 생각에는 러시아 혹은 동구권이라고 불리던 나라의 사람들이 쓸 법한 언어로 대화를 했다. 궁금했지만 아무에게도 당신은 대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 나름의 다짐을 하긴 했으나 그렇게까지 취하지는 않았고 어디서 왔든 아무려면 어때, 하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다만 등에 빽빽하게 온갖 글로 문신을 한 서양 남자에게 도대체 니 등짝에 그건 뭐냐, 반야심경이라도 문신한거냐?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 '저스틴 비버로는 부족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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