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한 인간의 이십 대 후반 표류기

정치 / 허상범 기자 / 2019-11-25 23:44:11
<자주의 삶> 저자 주원



책 소개


[자주의 삶]은 주원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작가가 이십 대 후반을 지나가며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낀 것들, 끄적여왔던 일기 및 짧은 메모들을 엮어서 만들었다.


책의 제목 '자주의 삶'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 의미는 '자주 행복하고 자주 슬퍼지고 자주 감사하고 자주 잠식되고 자주 좋아하고 자주 사무치고 자주 끄적이는, 나의 이야기'를.


두 번째 의미는 색깔로서의 자주, 빨강과 보라의 중간색을 말한다. 자주색은 신비, 환상, 애정, 사랑, 성 등의 이미지를 지닌다. 우울증이나 저혈압 등을 상징하며 신비롭고,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강조할 때 많이 사용되는 색이다. 심리적으로 자주나 마젠타는 실망감에서 벗어나게 하지만, 때론 나른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거부하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두 가지의 의미로 '자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한 인간의 이십 대 후반 표류기를 최대한 담백하게 담아낸 주원 작가의 에세이 [자주의 삶]은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출처: 스토리지북앤필름]

저자 소개


저자: 주원


목차


스물 일곱


스물 여덟


부록: 다섯과 여섯의 조각들_스물다섯, 스물여섯의 단상



에필로그


본문


4/2



누군가의 무례함에 착해지지 말 것


애써 웃어주지 않을 것


"넌 왜 -해?", "원래 그렇게 -해?" 라며 질문을 빙자한 무례함에 내가 답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살아온 억겁의 인생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 무게와 결을 무시한 채 함부로 남을 재단하는 누군가 때문에 '나는 왜 -한 사람이지?', '나는 왜 이렇게 -할까'라며 위축될 이유가 없다.


어느 누가 자기 자신에 대해 단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


- 본문 중에서 -


-2. 일요일. 세수를 하면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목욕을 하거나 세수를 하면서 우는 버릇이 있는데, 물소리에 내가 우는 소리가 묻히고 물줄기에 내가 흘리는 눈물이 동시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철푸덕-철푸덕. 거울 속의 나만이 새빨갛게 젖은 채 함께 울어주며 이런 나를 지켜본다. 철-썩. 수돗물은 파도처럼 나의 눈물과 울음소리를 때린다. 기억의 파편들은 메두사처럼 내 속 곳곳을 파고들며 수십 개의 머리를 치켜들고 시공간을 넘나든다. 혼자 이렇게 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음에 멍이 한으로 변하는 시간의 축적. 멍을 때리다 이내 한이 서리고 결국,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치카치카. 양치를 하고 전부 뱉어낸다.


오늘도 소란스럽지 않게 깊은 동굴을 지나왔다. 하루가 시작됐다.


- 본문 중에서 -


8/27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오늘 신발장 정리를 했다. 몇 년 째 신발장이 꽉 차서 안 신는 신발은 버리기 위해서다. 근데 이상하다. 이게 이렇게 미련 가질 만한 일인가. 분명 지난 몇 년 동안 안 신었던 거고 앞으로도 결코 신을 일 없는 신발들인데, 차마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각각의 신발에는 그때의 내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한평생 '추억'이 조금이라도 버무려진 물건은 좀체 버리지 못하는 성격의 인간이었다. 이건 당신과 처음으로 맞춘 커플 운동화, 이건 엄마가 겨울에 발 시리지 말라고 사준 따뜻한 부츠, 이건 대학생 때 맨날 신고 다녔던 단화...


이중엔 신을 만큼 신어서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것도 있었고 조금만 손보면 다시 새것처럼 신을 수 있는 것도 있었고 그때 당시 페인트가 심하게 튀어 아끼지만 어쩔 수 없이 버려야만 하는 것도 있었다. 단 한 번도 신은 적이 없어서 박스 안에 그대로 동봉된 새 신발들도 있었는데, 이런 신발들은 보통 사이즈가 안 맞는데도 예뻐서 차마 버릴 수 없던 것들이었다. 아. 추억이 안 담겨있어도 못 버리는구나. 신발 한 켤레 버리는 게 뭐 이리 어렵담.


한 번씩 마음을 다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버릴 신발들은 큰 박스에 넣었다. 쉽사리 채워질 것 같지 않던 박스 안은 느린 듯 금방 찼다.


안녕. 그동안 나와 함께해줘서 고마웠어. 안녕, 안녕.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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