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푸른 장막 아래 감춰진 깊고 고요한 무호흡의 세계로

정치 / 허상범 기자 / 2019-11-25 00:04:06
<깊은 물 아래서> 저자 진



책 소개


[깊은 물 아래서]는 진 작가의 에세이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열대의 푸른 바다. 그 한가운데서 아무런 호흡 보조 장비 없이 한 번의 들숨으로 깊은 물 아래로 잠수해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프리다이버'다. 그들은 오직 깊이 들어가려는 목적 하나를 위해 바다를 찾은 사람들이다.


이 책은 필리핀 막탄섬에서 세계 각국의 프리다이버들을 만나며 프리다이빙을 배운 작가의 한 달간의 경험을 담은 기록이다.


진 작가의 에세이 [깊은 물 아래서]는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의 푸른 장막 아래 감춰진 깊고 고요한 무호흡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할 것이다.


[출처: 별책부록]

저자 소개


저자: 진


목차


Prolog 4


시작 8


Day1 - 포악한 바다 위에서 25 / Day2 - 이토록 단순하고 느긋한 35 / Day3 - 열대어의 위로 42 / Day4 - 타인의 기대감을 견대내기 50 / Day5 - 바닷물과 나의 신비로운 일체감 58 / Day6 -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노력이 가치 있는 일 [다이빙 로그] 63 / Day7 - 누군가의 깊은 곳에 닿는 일 [다이빙 로그] 68 / Day8 - 장자를 읽다 75 / Day9 - 고통에도 불구하고 86 / Day10 - 희미한 의심의 짙은 안개를 뚫고 93 / Day11 -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깊어지는 구간 107 / Day12 - 굳게 닫힌 문 앞에서 112 / Day13 - 공허에도 불구하고 117 / Day14 - 순간에 머무르는 훈련 125 / Day15 - 대자유의 경지 [다이빙 로그] 131 / Day16 - 빛은 흑암에 승리한다 137 / Day17 - 감각의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 [다이빙 로그] 146 / Day18 - 완성된 아름다움을 위하여 154 / Day19 - 내 마음의 물 수(水)자 [다이빙 로그] 160 / Day20 - 붙잡을 수 있는 용기, 포기할 수 있는 용기 164 / Day21 - 낯선 것과 불편한 것 [다이빙 로그] 172 / Day22 - 소유에 관하여 177 / Day23 - 행복에 관하여 [다이빙 로그] 187 / Day24 - 존재감에 관하여 201 / Day25 - 인간 삶의 비극은 끊이지 않지만 210 / Day26 - 다시 헤어지다 221 / Day27 - 달의 노래 228 / Day28 - 고작이란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기 [다이빙 로그] 237 / Day29 - 마지막을 향해서 243 / Day30 - 아쉬움의 끝에서 249 / Day31 - 생의 깊은 의미를 위하여 253


Epilog 268


본문


프리다이빙, 이 다섯 음절의 글자를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마다, 내 머릿속은 깊고 푸른 자유의 이미지로 가득 찬다.


'사람이 아무런 호흡 보조 장비 없이 숨을 참고 맨몸으로 바닷물 속으로 깊이 내려간다.' 바로 그 활동을 일컫는 말이 프리다이빙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수중에서 무호흡으로 진행하는 모든 활동(이 경우 해녀 활동이나 스피어싱까지 포함할 수 있다)을 총칭하기도 하지만,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에서 프리다이빙은 AIDA, SSI 등 세계 몇 곳의 국제 프리다이빙 단체들에서 주관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체계화된 스포츠 장르에 한정해서 생각할 수 있다. 이 스포츠 장르의 종목에는 수면 무호흡(스테틱), 수평 잠영(다이내믹), 그리고 수직 다이빙이 있는데, 이 중에서 수직 다이빙이야말로 프리다이빙 활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종목이다. 수직 다이빙의 관건은 다이버가 얼마만큼 깊이 내려갔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맨몸으로 숨을 참고 가능한 한 깊은 물속으로 내려가는 스포츠라니, 사람에 따라서는 충분히 가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이 세상 한구석에는 그런 가학적인 활동에 심취한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물론 나 또한 그들 가운데 하나다.


프리다이빙을 우리에게 익숙한 해녀 활동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호흡 장비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행위 자체로는 두 활동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해녀 활동이 저녁상에 올라갈 해산물을 얻어내고자 하는 '분명하고도 실질적인 목적성'을 가진 잠수 활동인 반면, 프리다이빙은 그저 '물 아래로 깊이 내려가는 행위 그 자체' 가 단 하나의 목적이 되는, 말하자면 굉장히 비생산적인 활동이다. 그 어떤 실용적인 결과물이나 가시적인 보상물도 따르지 않는 행위다. 하지만 바로 그점이야말로 프리다이빙만의 오묘한 매력 포인트가 된다.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실천되는 행위! 바로 거기서 나는 프리다이빙의 철학적인 구석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철학적인 것들에는 비효율적 비생산적, 비현실적 등등의 형용사가 따라붙곤 하지만, 사람의 삶에서 가끔은 가장 무용하던 것을 가장 필요로 하게 되는 시점이 있으며, 가장 불필요하던 것이 가장 가치 있게 변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때 무용한 것은 모든 다른 유용한 것들의 총합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법인지도 모른다.


- 시작, 8페이지 중에서 -


중국 심천 공항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이른 아침 필리핀 세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다이빙 센터로 왔더니, 현지인 스태프가 내가 한 달간 묵을 방갈로 3 호방 열쇠를 건네주었다. 이 방은 대나무 벽으로 옆 방과 칸막이가 되어있다. 옆으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목조 가옥에 이렇게 칸막이로 만들어진 방이 총 4개인데 나는 그 중에 3호방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열대 나무줄기를 격자 모양으로 엮어 만든 천장에는 커다란 팬이 달려있으며 가끔 그 주위로 작은 도마뱀이 무심한 눈빛으로 서성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낡은 가구들 (가구라 해봤자 침대, 의자, 수납장, 거울이 전부다) 이 조촐하게 놓여 있는 작은 방이다. 싸구려 나무 판자로 만든 수납장은 자물쇠를 거는 고리가 고장 나 늘 2센티쯤 입을 벌리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허름다하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아늑한 공간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 방문을 열고 몇 걸음쯤 걸어 나오면 곧바로 바다가 보인다. 사실 이 사실만으로 더없이 만족스러워서, 가구 하나도 없이 맨바닥에서 자야 한대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방문을 열면바깥으로 보이는 건물 구석에 2년 전부터 놓여 있었을 입간판이 비뚜름하게 서 있다. 그 위로는 2년 전에 이곳에서 진행한 기욤네리의 워크숍에 대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짐을 풀어놓고 다시 데스크 쪽으로 나가자마자 바로 코스 수업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멋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페데리코 씨가 나의 레벨 1코스 담당 강사로 배정되었다.


- 'Day1. 포악한 바다 위에서', 25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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