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는 이 지도에서 어디쯤 있나요]는 신조원 작가의 에세이다.
작가는 2016년 이베리아반도에서 72일간의 여행을 했다. 그중 35일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책은 그가 순례길을 걸으며 쓴 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제목은 '나는 이 지도에서 어디쯤 있나요'이고, 소제목은 '루뻬의 산티아고 일기'이다.
책의 본질은 일기이지만 작가는 소설의 이야기체를 빌려 썼으며 본문 중 주인공 루뻬의 이름은 다른 등장인물로부터 한 번도 언급되지 않게 했다. 2016년 4월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떤 한 사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길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일생에 매번 겪으면서도 어려워하는 것을 애틋하게, 그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길 원합니다. 또한 타자에게 질문함으로써 환상을 달래기 보다 자신에게 질문하는 기회를 갖길 바랍니다. 당신은 지금 지도 어디쯤에 계신가요?"

저자 소개
저자: 신조원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겸 디자이너 신조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주로 정의 내리기 어렵고 아직은 나조차 잘 모르겠을, 내면 속 뒤엉켜있는 감정들을 글과 그림을 통해 파헤치는 작업을 합니다. 이번에 책을 내기 전까지 미친 루뻬라는 뜻의 루뻬로카(lupe.loca)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서 활동했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011
00_A 로망의 시작
00_B 오르세의 식당
00_C 느낌있는 조개
제 1부: 027
Navara 나바라
01 함부로 볼 게 아냐 / 02 눈 내리는 국경 / 03 못생긴 기다림 / 04 바람처럼 사라진 복근 / 05 간신히 또는 충분히 / 06 노인들
제 2부: 057
La LioJa 라 리오하
07 이제는 익숙함 / 08 스틱이 필요해 / 09 고마운 사탕 / 10 폭우
제 3부: 079
Burgos 부르고스
11 친절에 대한 기대 / 12 친구와의 식사 / 13 같이 가는 게 좋아 / 14 계획에 없던 것 / 15 폴짝
제 4부: 107
Palencia 팔렌시아
16 걱정 / 17 악몽을 꿨어 / 18 순간이동은 존재하지 않아
제 5부: 125
Leon 레온
19 얼굴 마주하기 / 20 반복 / 21 평범하지만 중요한 / 22 복잡한 일상 / 23 이곳에 사는 사람들 / 24 고요한 역동성 / 25 여분의 것은 필요 없어요 / 26 천국에 가는 길 / 27 그늘 수색단 / 28 1시간에 4킬로미터
제 6부: 179
Lugo 루고
29 배낭의 의미 / 30 길치 / 31 남은 거리 / 32 흐름
제 7부: 203
La Coruna 라 코루냐
33 울음과 복통의 상관관계 / 34 자동 삭제 기능 / 35 편안한 곳 / 36 정말로 0.00킬로미터 / 37 그럼 끝이야? / 38 0.00일
에필로그: 233
순례자의 기도
본문
큰 마트가 보였다. (이 때는 팀과 헤어진 후다.) 안에 들어가 잠깐 숨을 돌리기로 했다. 그곳에서 두 번째 한국인, 어느 커플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 먹을 것을 나누며 지친 몸을 다독였다. 오직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비를 피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자리와 화장실을 제공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물병에 물까지 가득 채워서 그곳을 나왔다.
경사 진 언덕길을 지나 마을 중간쯤 다다랐을 때 작은 정자가 보였다. 나는 정자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할 요량으로 배낭을 풀고 등산화를 벗어 비로소 몸에 해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거의 눕다시피 상체를 배낭에 기대어 쟁여 두었던 초코바 하나를 꺼내 먹었다. 으적으적. 어찌나 달콤하던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곁에서 살랑대는 것을 느끼며 더불어 흐르는 땀을 식혔다. 순례객의 발걸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데 때마침 정자 뒷길, 수많은 발걸음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알렉산드로였다. 그는 기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근과 따뜻하게 내린 녹차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휴식을 취하던, 그러니까 생장에서 같은 방을 썼던 부부는 말린 무화과를 내밀며, 이 길을 가기 위해선 잘 먹어야 한다고 많지 않은 간식 중에 두 개씩 집으라고 권했다.
눅눅한 산길에서 떨어져 나온 진흙이 등산화에 잔뜩 묻어 바닥이 미끄러웠다. 휘청거리고 진땀을 빼면서도 쉬지 않고 일행의 뒤를 따랐다. 조그맣게 들리던 작은 시내 소리는 편편한 땅이 나오자 실체를 드러냈는데, 마치 "요정의 정원"과 같았다. 나무엔 이끼가 가득하고 오래 내린 비에 물살은 거셌다. 순례객들은 물가의 푸른 내음을 마음껏 즐겼다. 냇가를 가로지르며 쓰러져 있는 나무에 올라타서, 빠른 물살이 만들어내는 바람을 바로 마주하는 이도 있었다. 무전여행을 통해 얻은 갖은 경험으로 "요정의 정원"마저 익숙한 알렉산드로는, 다시 보온병에서 따뜻한 차를 따라 건네며, 미령과 나에게 물비린내와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리곤 기부제 알베르게를 찾아야 하므로 먼저 길을 떠나야겠다며 미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비는 그치고 내리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억수같이 내렸다.
첫날엔 그만 걷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가쁜 숨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와 나에게 넉넉한 숨을 요구했다. 가파른 언덕 좁디 좁은 길엔 나를 포함한 순례자 네 명의 잦은 숨 고름으로 갈지자형 줄이 종종 연출되었다. (이상하게 유난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할아버지 와 곱슬머리의 컬리, 미령, 나. 이렇게 넷은 한 고비, 한 고비 넘길 때마다 제자리에 서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서 론세스바예스의 표지판이 보였을 때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숙소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비 오는 도로, 가장 뒤에서 오는 컬리의 완주까지 지긋이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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