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내게 남기는 흔적들

정치 / 오도현 / 2019-10-25 23:46:37
<사랑의 몽타주> 저자 최유수


책 소개


[사랑의 몽타주]는 최유수 작가의 에세이다.


작가는 사랑이 자신에게 남기는 흔적을 뒤적거렸고, 하나의 흔적은 여러 조각으로 나뒹굴었다. 주워서 맞추어 봐도 흔적의 원형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글로 옮겨 적었다. 오래된 버릇처럼 흔적을 더듬거려 그 감촉을 글로 수집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의 정체는 정확히 정의될 수 없지만, 언어를 조립하여 그것의 그림자를 표현할 수는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언어의 조립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를 작가는 몽타주라 말한다. 책은 편집된 조합들의 흔적들이고, 그러므로 사랑의 정체에 대한 2차원의 몽타주를 그린 것이라 한다.


작가는 각각의 몽타주는 각자의 몫이고, 모든 몽타주를 수집해 조합하면 사랑의 정체에 대한 3차원의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내면에 있는 사랑의 흔적들을 뒤적거릴 수 있기를 염원한다. 그것이 바로 3차원 몽타주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기에.


[출처: 코너스툴]

저자 소개


저자: 최유수



목차


착각의 미학 7 / 마음에 쥐가 난다 9 / 무게감 10 / 환절기 11 / ㅅㅏㄹㅏㅇ 12 / 내가 그댈 맴도는 이유 13 / 그대의 우주 14 / 말 속에 씨앗을 16 / 우연의 창조자 17 / 낡아진다는 것 20 / 버스 터미널 22 / 사랑을 말했다 23 / 사랑에는 온도가 없다 24 / 헤아림의 맞물림 26 / 이해한다는 말 28 / 상처와 공허 29 / 감정의 고립 30 / 수수께끼 32 / 사랑의 역사 33 / 언어 섹스 34 / 사랑은 우주를 관통한다 36 / 증명 38 / 72억 가지 사랑 40 / 3번째 눈 42 / 상상의 뿌리 43 / 순간의 철학 44 / 모두에게 바람 47 / 사랑의 심지 48 / 서수화 49 / cannonball 50 / 짙은 농도 51 / 어떤 균열 52 / 순간 속의 영원 53 / 내가 나이기 때문에 54 / 서운함 55 / 잠든 58 / 등대 59 / 사월의 편지 60 / ()가 말했다 63


본문


사랑의 시작은 대체로 착각이다. 사랑을 촉발하는 착각들을 우리는 착각이 아니라고 착각한다. 애초에 그것이 착각임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착각에 휘말려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착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을지도 모른다. 아무 연고없이 누군가를 나의 세계의 한가운데에 놓고야 마는 그런 맹목적인 사랑은 1/100,000 정도의 확률로 나타나는 돌연변이로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착각이 사랑의 촉발탄을 뿌리면 곧 마음의 눈이 먼다. 그로 인해 둘 사이의 어떤 사실들은 객관을 상실하고 오로지 사랑을 발화시키기 위해 작용한다. 사랑의 발화 앞에서, 논리는 착각의 재료로 위장하여 몸을 감춘다.


두 사람 사이의 사소한 공통점을 발명하여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마치 위대한 발견인 것처럼 착각한다. 자기에게 일어난 보편적인 사건의 의미를 미묘하게 왜곡하여 그것이 특수한 사건인 것처럼 착각한다. 감정적 비약을 통해 다른 누구와도 충분히 공유할 수 있을 법한 감성적 취향을 운명적 사랑의 증거로 착각한다.


착각은 그저 오해다. 인정하기 싫은 자기중심적 확대해석이면서 차마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랑의 근원 중 하나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비논리 낭만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착각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은들, 앞으로도 우리는 그 달콤한 안개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의 착각 놀음에 적합한 어리석음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에 관한 모든 착각에서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너이기 때문이라는 단 하나의 실마리로 모든 오해를 풀어낼 수 있다. 두 사람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착각은 점차 착각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사랑의 서사다. 앞으로도 우리는 착각에 휘말릴 것이고, 그곳에서 사랑을 피워낼 것이고, 너이기 때문에 오해를 풀어낼 것이다.


- 착각의 미학, 7페이지 중에서 -


보고싶다 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하늘에 맞닿아 있는 산의 정상을 올려다보는 것과 같다. 눈에 잡힐듯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감당할 수 없는 멀음이 꼭 그러하다. 너의 마음이 상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거기에 구름이 끼이는 것이다.


산의 정상에 너는 서 있다. 나의 눈동자는 너의 눈동자와 정확히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에는 무색무광의 투명한 우주가 가로놓여 있다. 내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는 너의 입 모양에는 소리가 없다. 입술의 움직임은 눈앞에 가져다 놓은 것처럼 선명하다. 너의 혀에서는 빛이 난다. 나는 자꾸만 까치발을 들다가 발끝에 쥐가 난다. 목을 잔뜩 길게 빼어 보다가 목덜미에도 쥐가 난다. 눈동자에서 눈동자 사이를 건너 가려다 수십 번도 넘게 미끄러지고 만다.


보고싶다 라는 말에는 꼭 그만큼의 마음이 담겨 말을 꺼내는 순간 내 마음에 종종 쥐가 난다.


- 마음에 쥐가 난다, 9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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