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개가 있는 건 아닌데 없지도 않고요]는 이지현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열두 살부터 스물여덟까지 함께한 집안의 막내 강아지 '포포'를 떠올리며 '개가 있는 건 아닌데 없지도 않은' 그 이후의 시간을 담았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약해지는 강아지를 돌보면서 작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강아지를 돌볼 수 있을지, 자신에게 남은 돌봄의 양을 저울질하며 인색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지만 막상 '포포'가 떠난 후의 상실감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남은 가족은 일상 속에서 살아야만 하고, 덤덤해지고 싶은 동시에 앞으로 기억이 흩어지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한없이 쓸쓸해진다. 그러나 작가는 시간이 흐르는 만큼 덜 울고 더 선명하게 '포포'를 기억하고 싶었다. 강아지와 나눈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자 책을 펴냈다.

저자 소개
저자: 이지현
강아지 산책시키러 일찍 귀가하던 사람. 더 이상 이른 귀가를 재촉 받지 않을 때, 퇴근 후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책 만드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목차
열두 살부터 스물여덟까지, 포동개와 함께 6 / 쓸데없는 야근 10 / 온전히 슬퍼할 수 있는 하루 16 / 퇴근길 이호선 24 / 통곡의 극세사 이불 28 / 이럴 때를 대비한 리스트 32 / 습관의 습격 36 / 네버엔딩 정리 40 / 돌봄의 총량, 너를 돌보는 일과 나를 돌보는 일 46 / 포포여행 52 / 개가 있는 건 아닌데 없지도 않고요 56 / 강아지 없는 강아지 사람 62 / 도쿄 (강아지) 여행 70 / 산책 메이트 76 / 벽에 붙어서 누우면 82 / 소모되지 않는 소모품들 88 / 충분한 삶이었니, 강아지야 94
본문
쓸데없는 야근이 늘어난 지 두 달째였다. 평소에 야근이 없었느냐 물으면 그건 아니었지만.
첫 직장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누구도 집에 가지 않아 분위기상 남는 야근이었다. 옮긴 회사는 그런 분위기는커녕 각자 일정에 맞춰 칼퇴 하는 분위기였다. 잘못된 습관이 든 나는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며 퇴근 시간보다 2~3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새로 온 팀장은 보여주기식 야근을 하는 사람이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짜증은 나지만 팀 일이니까, 라고 익숙하게 체념하고 자리에 앉아 느슨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일찍 집에 도착한 동생이 강아지 상태를 계속 메신저로 보내주었다.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대, 자다가 깨서 아파하기에
내가 계속 안고서 재우고 있어.
이어서 도착한 동생의 분홍색 티셔츠가 삼분의 일, 뭉친 흰 털이 절반인 사진. 혼자 힘으로 엎드리는 것도 버겁게 된 강아지였다. 집에 가는 길에 빈 주사기를 사 가겠다고, 그걸로 밥과 물을 먹여보자고 그런 답장을 보냈다. 퇴근 시간을 지나 어느새 9시. 더는 안되겠어서 집에 가려고 일어나는데 팀장이 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대체 왜? 싶었지만 거절은 더 스트레스 받는 과정이다. 급한 맘을 티 내지 않으며 하나마나인 공기 같은 소리를 하다가 잘 들어가시라는 인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동네 도착하면 약국은 문을 닫을 시간일 것 같아서 역 근처 약국을 검색했더니 마침 열려있는 곳이 있었다. 자주 가지 않던 상가 건물에서 길을 헤맬까 봐 전화로 위치를 묻고는 달려가 빈 주사기 2개와 휴가 나온 막내가 쓸 교정 칫솔 몇 개를 샀다.
집에 도착해서 거실 이부자리에 누운 강아지한테 가서 '나 왔다'는 인사로 손을 코에 갖다 댔는데, 눈은 마주치지만 호흡은 고르지 못했다. 그렇게 옆에 앉아서 등을 쓰다듬었다. 부쩍 앙상해져 뼈가 그대로 손끝에 느껴졌다. 밥과 물을 먹이려고 했지만 먹지 않았고, 다시 잠들 때까지 쓰다듬이 이어졌다.
- 쓸데없는 야근, 11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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