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독립] 2회

문학 / 이슬영 / 2019-11-16 17:53:00
엄마 아빠 미안해요



우리 부모님은 "남들처럼" 사는 걸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분들이라, 남들이 하지 않는 걸 구태여 한다고 할 때마다 맹수가 먹잇감 물어뜯듯 맹렬한 비난을 퍼부으시곤 했다. 서른 넘은 딸이 집을 나간다? 결혼이나 지방 발령 같은 그럴싸한 이유도 없이? 집이 서울이고 직장도 가까운데 30대 미혼 딸자식이 독립을 한 경우는 부모님 주변에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부모님께 딸이란 그저 남들처럼 결혼 전까지 부모와 살다가 결혼을 해야만 부모 곁을 떠날 수 있는 존재였다.


나의 강한 독립 의지를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당신들과 더이상 살기 싫어요!"로 받아들이셨다. 내가 곁에 끼고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생활비 한 푼 안 받고 세 끼 밥 다 해바치고, 회사 다니는 딸래미 옷 드라이까지 직접 세탁소 맡겨가며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던 엄마는 배신감에 치를 떠셨다. 처음엔 엄마 아빠랑 살기 싫어서 독립을 결심한 건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그것도 큰 이유긴 했다. 권태기 연인처럼 30년을 함께 산 부모 자식 간에도 일상에 권태와 짜증의 파도가 몰아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 선배는 휴일에 빨래를 널다가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그 날로 보증금 5백 짜리 원룸을 얻어 나갔다고 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별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부르짖다 죽을 만큼 독립을 원하게 된 순간엔 그 선배의 말이 진짜 와닿았다. 부모님은 우리가 언제 널 그렇게 서운하게 했느냐며 억울해 하셨지만, 일상에서 '집주인' 부모님으로 인해 (월세는 안 냈지만) '세입자'나 다름 없는 나는 종종 서운함과 억울함을 느끼곤 했었다.


한 번은 욕실에서 코를 세게 풀었더니 아빠가 "왜 그렇게 코를 세게 푸느냐!"며 성질을 버럭 내셨다. 잡지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마감 때 늦게 귀가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내가 방문을 쾅! 닫는 소리에 밤잠이 깬다며 오만 신경질을 다 부리셨다. 코를 세게 풀 수도, 문을 쾅 닫을 수도 없는 세입자의 슬픔. 나는 그 처지를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부모님과 사는 게 불편하고 싫은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술이었다. 나는 법적으로 음주가 허용된 시점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1) 숙취가 심한 날 2) 숙취가 너무 심한 날 외엔 없는 알코올 성애자다. 그런데 엄마는 집에서 술 마시는 건 고사하고 술을 왜 마시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시는 분이었다. 이런 엄마와 함께 사는 건 수도원 생활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집에서 술을 마시고 싶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등짝을 맞거나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지 않고 취기에 기분 좋게 잠들고 싶었다. 독립을 하면, 내 공간이 생기면, 나는 그 공간에서 술과 함께 자유로우리라.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느끼는 이 모든 불편함과 서러움을 어떻게 하면 두 분이 상처받지 않도록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날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준 연인에게 "질렸으니 이제 그만 헤어져"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이었다. 엄마 아빠, 이제까지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젠 함께 살고 싶지 않아요! 안녕!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나는 영영 벗어날 수 없었다. 부모님이 주는 속박과 안정으로부터.


[뮤즈: 이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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