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은 열대 지역에 속한다.
필리핀 날씨는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지는데 건기 때는 조금 덜 덥고 우기에는 정말 더우면서 태풍들이 방문한다. 그냥 태풍이 조금 오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30여 개의 태풍이 매년 오고 그중 일부는 일명 “슈퍼 태풍”으로 불리면서 큰 피해를 가져온다. 한국의 장마도 피해가 컸지만, 필리핀에서 태풍은 전 학년 수업 취소를 시작으로 일상을 바꾸어버린다. 그래서 여름철에 필리핀에 온다면 자칫 태풍 때문에 비행기 연착과 함께 여행의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런 태풍 이야기를 빼더라도 필리핀은 날씨 자체가 덥기에 여름에 약한 사람들에겐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유학 갈 때도 사람들은 더위를 많이 타는 나를 걱정해주면서 “거긴(필리핀) 더 더운데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조금 난처해하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제가 지내는 도시는 안 더워요”라고.
난 필리핀에서 8년 정도를 지냈지만, 여행으로 방문한 도시들을 제외하면 주로 한 도시에서 쭉~ 살았다. 그 도시의 이름은 “바기오”였는데 바기오는 좀 많이 특별한 곳이다. “바기오”라는 이름 자체가 필리핀어로 태풍, 바람을 의미한다. 지리적으로는 필리핀 북부 루손 섬에 위치해 있으면서 해발 1,500m에 형성된 고산 도시이다. 그렇기에 여긴 보통 가을 날씨에서 초여름 날씨를 왔다 갔다 하는데 늘 20도 정도를 유지한다. 그래서 가을과 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고의 날씨였고 필리핀에서 더위보단 선선함에 푹 빠져 있었다. 이런 날씨 덕분에 미군이 주둔할 때는 이 도시에 군인 휴양 시설을 만들기도 했고 “여름 수도”라는 애칭까지 도시에게 주었다. 지금 필리핀 정부도 여름에는 많은 정부 기관과 대통령이 바기오로 이동해서 업무 및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 날씨 하나로 이 도시 참 많은 사랑을 받는다.
바기오를 말하면서 날씨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고산 도시로서 특징도 신기하다.
바기오 근처에는 90년대까지 산지 부족들의 전쟁, 전투가 있었다. 필리핀 공포, 스릴러 방송들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 정도로 유명한 역사였다. 그런 부족들의 대립을 필리핀 정부는 최대한 방지하려고 했고 이때 바기오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행정, 군사적 통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바기오는 행정적으로 정부의 지지를 받고 학교 시설을 중심으로 주변 산지 부족들을 교육, 통합했다. 지금도 바기오에 있는 수백 개의 초등, 고등학교와 대학교에는 바기오 시민들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학생(산지 도시, 부족 출신)들이 다니고 있다. 그렇게 서서히 부족 전쟁은 그치게 되었고 지금은 같이 바기오에서 교육받으면서 갈등이 점차 최소화되었다. 바기오는 이런 의미에서 통합, 교육 도시의 정체성도 가진다. 물론 이런 바기오의 특성 때문에 나도 유학을 결정할 때 선택지가 많았고 지금 돌이켜보면 좋은 환경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칠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다 같이 집을 떠나온 입장이었기에 서로 마음을 열기에도 더 쉬웠다.
이렇게 높고 시원하고 학교가 많은 도시가 필리핀에 있다. 중학교 때 처음 간 나는 그 도시에 이끌려 유학까지 하게 되었다. 열대 나라에도 시원한 동네/도시는 있다. 태국에는 치앙마이/치앙라이가 있고 필리핀에는 바기오가 있다. 더운 나라에도 사람은 살아가고 있고 때론 시원하고 추위를 때때로 느끼면서 지낸다. 이렇게 보면 우린 서로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은 걸까.
[뮤즈: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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