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을 마실 대의명분이 필요한 사람에게 6월의 마지막 주는 꽤 뜻 깊었을 것이다. 2013년부터 매년 6월에 열리는 ‘네그로니 위크’는 음주를 통해 사회 공헌을 할 수 있는 술꾼들의 축제이다. 네그로니라는 칵테일, 혹은 그 칵테일의 바리에이션을 바에서 마시면 한 잔에 1달러씩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가 된다. 올해 한국에서는 71개의 바가 네그로니 위크에 참여했고, 난 바에 가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네그로니를 만들어 마신 만큼 원래 기부하던 곳에 기부했다. 물론 네그로니 위크가 없었어도 술은 마셨겠지만, 어차피 마실 술이니 이왕이면 기부도 하면서 마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진, 스윗 베르뭇, 그리고 캄파리. 세 술을 동량으로 섞어 만드는 네그로니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만들어진 칵테일이다. 1919년, 이탈리아 출신의 카밀로 네그로니 백작은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의 Cafe Casoni에서 아메리카노라는 칵테일을 만나게 된다. 요즘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라고 하면 커피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당시 아메리카노는 스윗 베르뭇과 캄파리에 탄산수를 섞어 만든 칵테일이었다. 네그로니 백작은 좀 더 높은 도수를 위해 아메리카노에 탄산수 대신 진을 넣어 마셨고, 이 레시피는 백작의 이름을 따 네그로니라고 불리게 된다. 낮은 도수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네그로니 백작은 자신의 칵테일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클래식 칵테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만, 전 세계의 술꾼들이 네그로니를 마시며 기부까지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저 세상에서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1920년에 네그로니 백작의 친구가 그에게 쓴 편지에서 하루에 네그로니를 20잔 넘게 마시지는 말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때문에 네그로니 백작이 하루에 네그로니를 20잔 넘게 마시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듯하다. 당시 네그로니 1잔은 30ml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20잔이면 요새 기준으로는 6잔을 마신 셈이다.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마셔보면 그 정도는 충분히 마실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맛있는 칵테일이다.
산뜻하고 화사한 오렌지의 풍미에 옅지만 또렷하게 느껴지는 초콜릿의 달달한 맛. 여기에 복합적인 허브 향이 더해지며 달콤 쌉싸름한 풍미를 자아낸다. 얼음이 녹을수록 숨어있던 향이 피어오르기 때문에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편안하게 마시게 되는 칵테일. 100년 동안 사랑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올해의 네그로니 위크는 끝났지만, 근처 바에서 네그로니 한 잔 마시며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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