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약국 합니다] 1회

문학 / 정문영 / 2019-11-01 22:38:57
여기 약국 맞아요?



꽃을 좋아해서 약국을 열까 꽃집을 열까 고민하다가 약국을 열었다. 지인들의 생일에 꽃다발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기도 하고, 꽃을 말려서 약국의 내부 인테리어로 쓰기도 한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좋아 개국 당시 약국의 전면 유리에 시 전문을 써놓았다. 층고가 높은 1층 건물의 장점을 살려서 복층을, 오픈형 복층은 개인공간으로 만들었다. 보통 약국에는 빨간색 ‘약’자가 있어야 하는데 예쁜약국에는 없다. ‘빵’인지 ‘약’인지 구분도 안가는 그 붉은 단어로 꾸미고 싶진 않았다. 2층 공간에는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가 놓여 있어, 아플 땐 누워서 쉬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땐 내가 읽고 있는 책들과 업무 거리들이 아름답게 뒤섞여 있다. 나의 아지트는 돈 내고 차 마시는 단골카페도, 마이카(My Car)도, 나만의 방도 아닌 바로 예쁜약국 2층이다.



약국이 어느새 4주년을 맞았다. 하루에 꼭 한번은 어김없이 듣는 말, “여기 약국 맞아요?”. 그도 그럴 것이 외관부터 약국인지 꽃집인지 카페인지 분간이 어렵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마다 식물과 디퓨져가 놓여 있다. 약 냄새 대신 달달한 향초 냄새가 나고 가끔 화병에 꽂인 생화 덕분에 향기롭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 자연스레 예쁜약국은 그 공간을 만든 나를 참 많이도 닮았다. 약국을 열자 약사들이 가장 많이 보는 온라인사이트의 기자가 예쁜약국을 취재했고 내 얼굴과 함께 약국 사진이 온라인 메인 화면에 걸렸다. 그때 비로소 실감했다. 예쁜약국이 독특하다는 것을.



‘예쁜약국 프로젝트’는 우연찮게 시작됐다.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일했던 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 혐의로 조사를 받으며 병원의 모든 직원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난생처음 실업급여라는 제도를 알아보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시청의 민원과에 민원을 접수하고, 고용센터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들으며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건물의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그 건물에는 병원이 없었고 건물 옆과 건너편에는 병원들이 즐비한 건물이었다. ‘그래 바로 여기야!’ 그렇게 텅 비어 있던 공간을 지금의 약국으로 만들었다.



예쁜약국은 생계형 약국은 아니지만, 나의 건강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탄생한 약국이었다. 물론 남편의 배려도 한몫했다. 이 모든 내막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약국을 ‘취미’로 운영한다고 말한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을 이해한다. 기존 약국들과 달리 문이 닫혀 있을 때가 많고, 늦게 열기도 하며, 가끔 약사의 개인적인 일로 일찍 문을 닫으니까. 테마형 여행을 떠나거나 휴가를 가거나 몸이 좋지 않거나, 지적희열감에 중독되어 많은 강연과 강의를 쫓아다니느라 그랬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것이다. 이제 4년차에 접어들자 나의 단골손님들은 약국으로 전화를 먼저 걸어주신다. 내가 약국을 열었는지 확인하시는 것이다.



약사라는 직업으로 거의 10년째 살아오고 있다. 회사, 국립암센터, 병원약국, 대형약국, 요양병원, 개인약국의 약사를 거치며 내가 스스로 깨달은 사실은, 나는 환자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이다. 나의 전문성이 내가 가진 감수성과 만날 때 환자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다. 약국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이뤄지는 상담은 환자와 약사와의 만남이지만 공간을 더 확장시켜본다면 개인과 개인의 우연한 만남이기도 하다.



유영만 교수님은 《공부는 망치다》라는 책에서 사람이 공부를 하는 목적은 나에게 어울리는 일자리를 찾아 삶의 정도(正道)를 걸어가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여기서 일자리는 ‘제자리’, ‘설 자리’, ‘살 자리’ 세 가지를 의미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제자리’, 내가 마땅히 있어야 ‘설 자리’, 내가 살아가는 ‘살 자리’가 ‘내 일자리’가 되어야 공부와 삶과 일, 그리고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건강한 생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내가 정말 ‘내 자리’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사명과 소명이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들!



나는 이제 예쁜약국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너머 이제 뮤즈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예쁜약국 합니다〉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내가 약사로 살면서 느꼈던 우리 삶을 건강하게 이끌어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설레고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분명 헤르만 헤세의 책 구절 같은 일이 될 것만 같다.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사색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지혜로운 것은 좋은 일이고 참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이 글의 꼭지명은 나의 지인이자 작가인 B가 나에게 훗날 책을 쓴다면 꼭 제목으로 하라고 지어주었던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쓰는 진지한 마음을 이 꼭지의 제목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내가 꾸준히 읽은 책들, 수없이 만난 환자들, 일탈을 통해 겪은 문화적 충격 등 삶 사이사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틈을 모두에게 나누고 싶다. 틈 사이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나의 모든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부수고, 딱 알맞은 만큼의 말과 글이 되어, 삶에 지친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살아갈 용기’와 ‘살아갈 의지’가 되어주길.


[뮤즈: 정문영]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