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은 내게 첫 외국이었다. 한국에서 제주도도 안 가봤던 내가 첫 비행기로 간 곳 역시 필리핀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간 그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 유학을 결심했고 무려 8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한국에선 늘 숨을 참는 느낌이었고, 타인의 인정에 목말랐다.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천천히 숨을 토해내는 느린 삶을 경험했다. “고마워요” “보고 싶었어요” 등 타인의 말 속에 스민 따스함에 반했다. 뭐 그렇다고 한국에선 사랑이 없었다거나 속도만 강요했다는 건 아니다.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것에 조금 지쳤던 걸지도 모른다. 8년 동안의 필리핀,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려도 참 고마웠다고 느낀다. 지금도 뉴스를 왕왕 챙겨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친구들에게 필리핀을 소개할 때는 늘 감성적인 표현을 많이 썼다. 보통의 경우 정보를 토대로 필리핀을 소개하는 데 더 익숙하다. 당시의 나는 용돈 벌이를 위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가이드까지 했기에, 그저 살면서는 알 수 없는 그 나라의 역사, 지리, 문화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감상평이 짧긴 하지만 앞에서 다루었으니, 지금부터는 가이드식으로 필리핀을 소개해보련다.
우선 필리핀의 나라 이름부터 알아보자. s가 붙는데 실제로 필리핀은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나 인종도 수십여 종으로 구분되며 다양한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다. 문화권마다 역사 속에서 중국(화교), 이슬람, 가톨릭, 스페인, 일본, 미국에 영향을 받았다. 자연스레 지역마다 확연히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이유 탓에 누군가 필리핀을 한 번에 정리하거나 단순하게 소개하려고 하면, 결국 필리핀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만다. 흠, 다시 생각해도 이 나라 복잡하다.
그래서일까.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드물게 타인의 다양성에 열려 있다. 실례로 필리핀은 가톨릭의 강한 영향력에 있으면서도 동성애에 대한 문화적 인정이 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방송 매체에도 동성애자들이 당당히 출연하고 오히려 나오지 않는 프로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반면, 낙태나 이혼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가톨릭 입장을 반영해서 불법으로 못을 박아두었다. 필리핀의 다채로운 문화로 인해, 토종(?) 필리핀 사람들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고향이 어디세요? 어느 지역에 거주했어요?” 하고 묻곤 한다(마치 한국 같다!).
요즘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필리핀은 총기 사건, 독재, 이슬람 테러 등으로 표현된다. 나 역시 그곳에 살면서 비슷한 사건을 직접 겪기도 했다. 한때 필리핀은 수많은 영어 연수자나 유학생들의 학창시절 배경이 되기도 했고, 누구나 이민을 꿈꾸던 곳이자, 신혼 여행지였다. 내게도 꿈같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준 곳이었다. 필리핀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순간의 필리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 시간을 통해서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모두 잠시나마 뒤를 돌아보면서 바다 너머 다른 나라와 그곳에 사는 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뮤즈: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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