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경계령이 울렸다. 한 동안 숨을 참고 있던 몸에서 위험의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황급히 물 위로, 아니 사무실 밖으로 튀어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무거운 한숨 소리와 살을 벨 것 같은 날카로운 사무실의 공기를 참지 못 하고 나는 오늘도 화장실로 대피한다. 변기 위에 앉자 마자 핸드폰을 켰다. 배경화면에서 나의 최애가 밝게 웃고 있다. 그 웃음을 따라 나도 작게 웃음 지어본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나의 일상에서 뚫어 놓은 작은 숨구멍은 예나 지금이나 나의 아이돌이다. 핸드폰이 없던 학창시절 내 교복 주머니에는 항상 작은 명함 지갑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어제 새로 올라온 나의 아이돌 신상 사진이 컬러 프린트 되어 차곡차곡 들어가 있었다. 공부하기 싫을 때도, 친구와 다퉈서 마음이 상했을 때도 나는 그 명함 지갑을 꺼내 사진을 들춰보고는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기분이 나아졌다.
좋아하는 감정이란 그런 것 같다. 어떤 부정적 감정도 밀어내고, 마음을 따뜻하게 몽글몽글하게 해주는 것. 예민하고 상처 잘 받는 소심한 내가 부담 없이 마음을 내어주고 바라만보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건 그들이 내가 닿을 수 없는 아이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일방적인 관계라 하기에 내 아이돌은 팬에게 전하고 싶은 감정을 노래로, 글로, 말로 표현하고 전달해온다. 그래서 나는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참 미묘한 사랑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라는 가사처럼 나에게 덕질은 우연으로 다가왔으나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취미이자 일상이 되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려온 당신들의 목소리에 웃을 수 있는 것, 실시간으로 올라온 트위터 셀카에 행복해지는 것, 지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내 귀에 불러주는 당신들의 위로를 듣는 것. 나의 일상에 그들이 없었다면 꽤나 암울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 밤도 자기 전에 배경화면을 최신 사진으로 업데이트 한다. 내일의 힘이 되어주기를.
- 오늘의 추천곡은 언제 들어도 위로가 되는 봄을 부르는 노래, 방탄소년단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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