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로 가는 교통편에서 옆 좌석에 어떤 사람이 앉는가는 몹시 중요한 문제다. 특히 내려서 택시 쉐어를 할 사람을 절박하게 찾고 있다면 더더욱. 카트만두의 택시 호객꾼의 명성은 익히 블로그에서 읽어서 절대 바가지를 쓰지 않으리라는 견고한 결심을 해둔 터였다. 어수룩한 호갱을 구원해줄 구세주를 찾아봤지만 내 우측에 앉은 꽤나 멋부린 태국 남자는 옆의 서양 여자에게만 부담스럽게 혀를 굴리며 말을 걸고 내 쪽으로는 단 한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몹쓸 것. 비포선라이즈 같은 로맨스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택시 합승 좀 하려던 건데.
히말라야의 거대함에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다. 엄청난 비경을 기대했는데 잠시 인천에 내렸나 싶을 정도로 뿌옇다. 찾아보니 네팔은 대기오염 세계 8위(한국은 27위, 2018년도 기준)라는 믿기 힘든 사실. 청명함을 찾아 이 멀리까지 왔는데 내리자마자 계획이 다 틀어지는 느낌이다. 매연이 아니라 안개이길 바라며 배낭을 고쳐 메고 비자발급 줄에 섰다. 비자 발급은 체류기간을 말하고 신청서와 돈만 내면 무사통과다. 기계로도 발급이 가능하지만 고장난 기계가 많고 멀쩡한 것도 터치인식이 너무 느려 오히려 사람한테 하는 것이 훨씬 빨랐다. AI가 사람에게 패배하는 나라, 네팔!
택시를 잡아야 했다. 이제부턴 눈치게임이다. 호객꾼들이 들러붙는다. 그나마 좀 순하게 생긴 사람에게 비용을 물으니 냅다 $10를 불러 버린다. 내가 블로그에서 $6가 정가라고 보고 왔다 이 사람들아. 두유노우 네이버? 대꾸 안하고 가만히 있으니 $9에 큰 선심 쓴다는 몸짓을 보였다. 발길을 돌렸다. $8에 가준다고 소리를 친다. 제 값까지 깎으려면 이 시점에서 나의 능수능란한 흥정이 있어야 했지만, 그런 건 있을 리가 없었고 배낭이 미칠 듯이 무거웠으므로 $8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저렴한 숙소라도 추가금을 내면 픽업 서비스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혹시 네팔에 가게 된다면 꼭 신청하길 바란다. 택시 한 번 타려다가 기를 다 뺏기고 싶지 않다면.
여행을 다 마친 것 같은 피로함을 느끼며 택시에 올라탔는데 난데없이 젊은 네팔 남자가 기사랑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앞자리에 앉는다. 이건 무슨 상황. 기사가 날 보더니 사람 좋게 웃으며 이 친구도 시내에 가는데 같이 태우고 간다고 한다. 네...? 내 대답은 듣지 않고 차는 출발했다. 얼떨결에 무언의 긍정을 한 꼴이 되었다. 기사 아저씨 모자에 큼지막하게 쓰인 DFNY 로고를(오타 아님) 노려보며 나 무사히 시내에만 가게 해달라고 ‘속으로’ 말했다. 계획에 없던 불청객은 공항을 벗어나기도 전부터 연신 뒤를 돌아보며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이 아는 한국 단어는 모조리 쓰며 내 환심을 사려 현란하게 애썼다.
“예뻐요. 아름다워요. 아주 어려 보여요.”
바가지 쓴 택시 안에서 로맨스가 피어날 리 만무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바로 본심을 드러낸다.
“가이드는 구했냐, 포터는 구했냐, 환전은 어디서 할 거냐 내가 싸게 해주는 곳을 안다.”
쉴 새 없이 말을 하는데 폐활량이 좋아보였다. 팔목에 걸린 번쩍번쩍하는 금팔찌에 반사된 햇빛이 다 헤진 카시트 위에서 춤을 춘다. 심드렁한(하지만 기분을 거스르게 해 납치라도 할까 조금은 신경 써서) 톤으로 다 예약했다고 대답해도 물러나지 않았다. 포터 이름이 뭐냐, 아무나 하면 안 된다, 위험하다는 둥(당신이 제일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피곤한 내 귓가에 불협화음을 내뿜는다. 창밖으로 하교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서구화 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오토바이와 차가 질서 없이 달리는 도로를 익숙하게 건넜다. 신호도 차선도 희미한 이곳에서는 절대 운전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자그마한 상점들 앞에서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보며 호객 청년의 목소리를 멀리 떨어뜨려 보지만 그는 마치 랩 배틀 결승전에 나간 사람처럼 계속 떠들어댔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축제"에서 예약했다고 하니 기사 아저씨와 네팔어로 불만스럽게 대화를 했다. 카트만두에 위치한 축제는 식당 겸 여행사로 한국어가 가능한 네팔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유명하고 카카오톡으로 이런저런 문의도 할 수 있어 네팔에 가는 분은 다들 한번쯤은 들린다고 들었다. 나는 그 곳에서 환전을 예약해 놓은 터였다. 기사 아저씨와 호객 청년은 아마 축제가 한국 손님을 다 가져 가네 어쩌네 이런 뉘앙스로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는 금팔찌를 몇 번 매만지더니 자세를 고쳐 앉고 곤히 잠들었다. 호객 퇴치 부적 “축제”, 땡큐. 한국에서도 점원이 말 거는 게 싫어 쇼핑을 피하는데 낯선 곳에서 마음먹고 덤비는 호객꾼들이랑 기싸움 하려니 진이 다 빠졌다. 실랑이는 언제나 어렵다.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8를 내니 너무나 당연하게 팁은 어딨냐고 물어서 대답도 안 하고 내렸다.
하룻밤에 약 5,800원 정도 하는 ZEN BED & BREAKFAST는 어느 블로그의 후기에 쓰인 대로 찾기가 꽤나 고역스러웠다. 여기라고 대충 손으로 가리키고 가버린 기사 아저씨의 면상이 떠오르며 불쾌감이 일었다. 을지로의 으슥한 인쇄소 거리가 연상되는 골목에서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숙소 로비에는 다양한 인종의 여행자들이 있었다. 통기타와 레게 머리, 펑퍼짐한 바지, 구겨진 노트에 써내려가는 글들. 그래, 이게 여행 로맨스지. 아까의 불쾌감은 설렘으로 금세 바뀌었다. 무게에 자꾸 내려앉는 가방을 고쳐 메고 말린 표고버섯처럼 비쩍 마른 게스트하우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올라갔다.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오는 어두컴컴한 방에는 2층 침대 4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7명의 거대한 짐들이 어질러져 있었고 마침 방에 있던 몇 명을 본 나는 8인실이 여성 전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쾌함에서 설렘으로, 설렘에서 당황스러움으로의 전환은 꽤나 빨리 일어났다. 게다가 예약할 때 분명 6인실에 체크했던 기억이 났지만 아까 탄 택시에 기운을 다 뺏긴 터라 조용히 표고버섯 직원의 안내대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2층 침대 자리로 올라갔다. 어딘가에 마지막 8번째로 들어온 죄수의 발목에 걸어 놓을 쇠사슬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방이었다. 놓여진 누런 베개를 슬쩍 치워두고 가져온 배낭에 머리를 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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