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고 처음으로 이곳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했던 행사는 종강 총회였다. 당시 중요한 안건이 있었기에 꽤 많은 사람들이 총회에 참석했다. 그곳에 내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눈에 띄는 사람은 한 명 있었다. 머리모양부터 옷차림까지 눈에 띄는 그 남자의 존재감은 단지 그의 외모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특별히 맡고 있는 직책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는 모든 일에 해결사로 나서고 싶어했다. 그는 중간중간 끼어들어 회의를 진행하고, “여유를 가지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문제들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넉넉한” 마음씨를 자랑하며 갈등을 중재하려고 했다. 그는 신입생들에게 가장 많이,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사람이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신입생 연락처 리스트를 가지고 나를 포함한 신입생들을 학과 단톡방으로 부른 것도 그였다. 총회가 끝나고 그는 친히 신입생들에게 학과 시설 투어도 시켜주고, 학과 사람들을 소개해주며 학교 생활의 온갖 “꿀팁”들을 전수해주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올챙이 적 생각을 하며 올챙이들을 챙기는 박애주의 개구리이거나 나보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으스대며 땅에 떨어진 자존감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사람. 안타깝게도 그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얼마 후 학교에 들렀다가 새로운 건물에서 길을 잃은 나는 거의 유일하게 연락처를 아는 사람인 그에게 연락했고, 그는 내가 가려던 장소가 아닌 본인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대학원이란 무엇이고, 우리의 전공이 어떤 학문이며, 영리한 대학원생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숨막힐 듯 친절한 긴 이야기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제 점수는요,”라고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나의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듣던 그는 “그게... 가능 할까요?”라는 말로 공격을 시작했다. “여기 석사, 박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에요. 그 정도 수준에서도 힘든 일인데, 지금 학부생 같은 수준으로 그게 될까요? 하... 그 정도 수준으로는 안 될 텐데…” 수준. 그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비관적인 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준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했다. 덕분에 나는 그의 수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을 표방하는 방종한 영혼이었다.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술과 담배에 찌들어 있으면서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의 무식함과 천박함을 조롱하고, 자신을 이렇게 못나게 만든 알 수 없는 힘을 사회라 이름 붙여 비판하는 아재 시인의 감성을 지녔다. 그는 과제나 발표준비를 하지 않았고,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법이 없었으며, 언제나 술을 찾았다. 그는 이것이 “풍류”라고 생각했다. 그 “풍류”를 즐기면서도 그는 항상 자신의 통찰력에 감탄하며 무엇에 대한 것인지 모를 일침을 날렸다.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보이는 일에 민감한 척하지만 독박육아와 독박가사에 지친 아내가 밥을 차려주지 않아 끼니도 잘 챙기지 못하고 밖을 맴돌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씁쓸해하고, 편한 복장에 슬리퍼 차림인 여자 후배에게는 “벌써부터 자신을 포기하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과 회식자리에서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게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전의 식당에서부터 이미 잔뜩 취해 있던 그는 별로 무겁지 않을 머리를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 그가 테이블에서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모습은 꽤나 꼴사나웠지만 그래도 그가 말을 하는 것보다는 이상적이었다. 그와 내가 있던 테이블에서는 얼큰한 탕을 하나 시켰고, 곧 가스버너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탕이 테이블에 놓였다. 그는 더 이상 머리를 흔들고 있을 힘도 없었는지 테이블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바로 그때, 눈 앞에서 한여름 바닷가의 밤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장면을 보고 나는 내가 너무 취했다고 생각했다. 팡 팡 경쾌하게 터지진 않지만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놀이가 눈 앞에서 펼쳐졌다. 덕지덕지 바른 헤어젤이 가스버너가 피워낸 불씨와 만나 그의 머리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생각에 잠겨버린 나 대신 옆에 앉아 있던 선배가 그의 머리 위에 생수 한 통을 다 붓고 나서야 갑작스런 불꽃놀이는 중단되었다. 그는 머리가 불타고 물벼락을 맞은 와중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 엎드려 있었는데, 너무 창피해서 계속 자는 척을 했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불은 껐지만 비릿하고 역한 머리카락 탄 냄새가 한동안 그 공간에 가득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선배가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누가 오징어 아니랄까 봐 오징어 타는 냄새 나네.” 그랬다. 그날 그에게서는 분명히 오징어 타는 냄새가 났다.
[뮤즈: 송재훈]
*섬네일 사진 출처: [unsplash.com]?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