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편집자] 1회 아임 낫 프리

문학 / 박세미 / 2019-11-12 21:51:09




나는 프리랜서 편집자입니다.


노트북과 교정지 뭉치를 들고 집 안 거실과 집 앞 카페를 전전하며 지내 온 지는 이번 달로 딱 1년 반 되었습니다. 처음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을 즈음 가졌던 기대와 내가 선택한 시간 안에서 살 수 있다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언제든 생계가 끊길 수 있겠다는 불안의 괴물이 머릿속을 잠식하기 딱 좋은 시기이지요. 하하. 그렇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잠시, 프리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 볼까요?


한 출판사에서 역시나 편집자로 일하고 있네요. 그런데, 뭔가 표정이 어둡습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요. 출판 회사 노동자였던 나는 그때 왜 그렇게 화가 가득하고 지쳐 있었을까요?


업무가 과다했던 걸까요? 아니면, 옆에 앉아 있던 상사가 자연스럽고도 유연한 스냅으로 잡무를 떠넘겼을까요? 혹시 선인세까지 다 받고 원고 작업을 진행하던 저자가 갑자기 모든 연락을 끊어 버리고 자취를 감춰 버린 건 아닐까요?



이 모든 일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일어났습니다. 덜하고 더한 일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 모든 까닭이 직접 저를 퇴사로 몰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적당히 욕하면서 다니고, 남들 하는 만큼 나도 적당히 넘기는가 하면, 적당히 영혼을 다른 한편에 놓고 일하면 그만이었거든요. 월급 받는 노동자의 옷을 벗어 던진 결정적인 원인은 어이없게도 ‘익숙해지기 싫어서’였습니다.



아…… 이 지랄 맞은 성격파탄자를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2년 전의 ‘나의 세계’로 돌아가서 “이 자식아, 지금 네가 이곳을 뛰쳐나가면 넌 매일 ‘아, 다음 달엔 뭘 해서 돈 벌어 살아나가지?’ 하며 밤잠을 설치게 될 거야. 현실 그거, 네 상상보다 훨씬 무서운 놈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아는 나는 “병신, 꼰대질하네.” 하고 무시하고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요.



나는 지금 몇 권의 책을 출판사로부터 의뢰받아 편집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입니다. 온갖 재미난 상상과 은근한 욕망이 그득한 그림과 글의 세계는 경이로울 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다음 달 생계를 점쳐 가며, 노동 비용 대비 끝없는 작업량에 머릿속 계산기를 눌러 대는 프리랜서의 마음은 때로는 구질구질하고, 때로는 서럽지요.



그런데도 대부분 구질구질하고도 서럽지만 아주 가끔 흥과 스릴이 치솟는 출판 편집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조금씩 꺼내 보려 합니다. ‘자유’하기 위해 떠나온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규칙성을 스스로 쌓아 나가야 하는지 말이에요.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어요. 월급만이 당신의 한 달을 구원해 줄 겁니다.”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앞에서도 말했듯 아주 가끔 치솟는 흥과 스릴이 생각보다 사는 걸 재미있게 만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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