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보험 일 하는데요?] 1회

문학 / 달분자 / 2019-08-22 00:43:27
직(職)밍아웃



"그나저나 자기들 어떤 일 해?"



듣고야 말았다. 친해졌다 싶으면 나오는 '저' 의문문. A 캠핑장을 여러 번 찾은 이유는 세상 쿨한 사장님 내외의 태도가 좋아서였다. 대화가 길어져도 사생활을 캐묻지 않으니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세 번째 방문에 '그' 질문을 듣고야 만 것이다. 뭐든 삼 세 번인가 역시.



"아! 저는요, 마케터예요! 여행 관련 제품 기획하고 판매하는 일해요."



친구 목소리가 메시 드리블하듯 허공을 치고 나간다. ?녀석의 어깨가 유난히 우뚝 솟았다. 파워 숄더야, 뭐야? 순간, 나는 세상 가장 예민한 계집아이가 된다. 사장님은 잘 어울린다는 듯 끄덕이며 싱긋 웃고는 이내 나를 쳐다본다.



"저는 보험해요."
"아… 얘 되게 공부 많이 하는 재무 설계사예요. 엄청 많이 알고 고객도 잘 챙겨주고요!"



너무 심플하게 대답했는지, 친구가 얼른 덧붙인다. 수식어가 많다. 약간의 정적. 무척 익숙한, 무거운 분위기로의 전환. 사장님 얼굴은 걱정스런 기색을 띈다.



"요즘 보험하기 많이 힘들텐데. 예전에는 잘들 나갔지…."
"네."?
"그렇죠."
"맞아요."
"시장이 포화됐죠."



사장님의 진심어린 걱정에 부응하기 위해 4단계로 맞장구를 친다. ‘그게 아니고요’로 시작하는 대답은 어른의 꼰대의식을 부추기므로 대화가 길어지기 십상이다.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나는 이런 반응에 퍽 익숙하다. 3년 전, 보험 설계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밝혔을 때 어떤 선배는 ‘잡지사 소개해줄게 그 일 하지마’ 했고, 엄마는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하셨다. 오랜만에 만난 지연이는 내 번호를 수신 차단 목록에 업데이트한 모양이었다. 선배들이 입을 모아 매일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한다기에 대학 동기를 찾아갔을 때 그는 조롱하듯 웃으며 물었다.



"너 왜 그렇게 말끔하게 차려입고 왔어? 오호호호."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닌 게 분명했으므로 딱히 맞는 대답을 찾지 못하고 멋쩍게 따라 웃었다. 식당에서 숟가락을 앞에 놔주는 간단한 행위 포함, 모든 호의를 수작질로 여기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 한 구석이 콕콕 쑤셨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보험 설계사임을 밝힘-상대의 부정적 반응’의 반복적인 경험은 위축된 나를 만들었다. 어디에 가서도 직업을 먼저 밝히지 않았다. 영업하는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칭찬으로 여겼다. 직업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재무 설계사'라는 멋진 말로 포장했다. 그야말로 '상찌질이'가 따로 없었다.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시간과 경험의 축적은 변화를 일으켰다. 보험 일은 정말, 매우, 더럽게 힘들지만 타인을 돕는 좋은 일이란 확신이 생겼다. 조금 더 일찍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여전히, 캠핑장 사장님의 그것 이상으로 보험 설계사라는 직업에 관한 부정적 반응이 넘쳐난다. 나의 대응이 이전과 달라졌을 뿐이다. 지금은 너 뭐하는 사람이니 하고 물으면, 아주 단순하고 당돌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저, 보험 일 하는데요?"





[뮤즈: 달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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