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에 가는 직항은 있지만 당연히 경유항공보다 비싸므로 돈보다 시간이 많은 나는 태국을 하룻밤 경유하기로 결정했다. 기나긴 여정 전에 땡모반을 마시고 마사지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시간도 돈도 더 쓴 셈이 된다. 하하하……. 여행을 앞 둔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항공권 구매는 꽤나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누구보다 저렴하게 사고 싶은 욕심 때문에 거액 주식투자자 처럼 모니터를 며칠 동안 쳐다보느라 시력이 감퇴될 지경이었다. 워렌버핏도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주식 사려나. 아, 환전할 때도 엄청 스트레스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손실을 따져보니 생각보다 큰 금액 차이가 없어서 나의 지난 고민들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헛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소규모 여행자들은 그냥 맘 편하게 항공권 구매와 환전을 하고 차라리 평소에 돈을 규모 있게 쓰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라 장담한다.
트레킹 성수기는 9월 중순부터 11월까지다. 6월에서 8월까지의 우기에는 거머리 친구들이 가득한 숲길을 걸어야 하고 12월부터 2월 동안은 혹한체험을 해야 한다. 그래서 3월을 골랐다. 서른셋, 3월에 가는 네팔에서까지 추위든 사람이든 거머리가 됐든 그 무엇과도 부대끼고 싶지 않았다. 풀피리 불며 유유자적 걷는 비수기의 네팔, 멋지지 않은가. 트레킹 지도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았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지도는 너무 작고 간결해서 오지여행 느낌을 내고 싶을 때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시내 지도도 인쇄해서 가져갔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거리가 워낙 복잡해 택시기사들도 헷갈릴 정도니까 그냥 어디서든 실컷 헤맬 것을 미리 알고 가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할 것이다. 가져간 지도들은 보험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는 일주일 이상 걸리는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ACT(안나푸르나 서킷 트랙 또는 라운딩), EBC(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가 있고 짧게 갈 수 있는 푼힐 전망대나 사랑곶 등의 코스도 있다. 27일의 긴 기간을 여행하는 이유는 최소 16일은 잡아야 하는 ACT를 가기 위해서 였다. 두 발로 걸어 해발 5416미터에 위치한 Thorong La에 가보고 싶었다. 날씨와 교통 그리고 내 체력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을 때 16일 안에 겨우 걷게 될 것이므로 넉넉히 27일을 잡아 항공권을 끊었다. 네팔에서까지 시간에 쫓기게 될 거라면 가는 의미가 없었다.
27일 간의 짐은 예상보다 거대했다. 티셔츠 4개, 바지 2개, 외투 5개(많아 보이지만 5개를 한꺼번에 껴입고 자도 추운 밤도 있었다.) 양말 4개, 속옷, 응급약, 식량(초코바, 껌, 육포, 커피), 등산용품(스틱, 모자, 우비, 아이젠, 넥워머, 침낭), 생활용품(1L 물통, 수건, 비닐봉지, 세면도구, 드라이샴푸, 빨래집게, 가루세제, 카메라, 노트, 충전기, 셀카봉 등등) 이외 자잘한 짐은 더 많았다. 한 인간이 고작 한 달 여행하는데 참 다양한 물건이 필요했다. 45리터와 25리터 배낭을 가득 채우고 수화물로 부칠 배낭을 넣을 빈 가방을 따로 챙겼다. 가방만 3개. 최대한 간결하게 패킹을 했는데 시작도 전에 지치는 그런 무게였다. 트레킹 하는 동안 다행히도 가이드 겸 포터를 대동하기로 했다. 네팔히말라야트레킹 네이버 카페에 검색하면 현지 가이드들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 수 있어 미리 일정을 짜는데 도움이 된다. 구글에 검색하면 우후죽순 나오는 현지 여행사에 미리 컨택 해도 되고, 네팔 트레킹 전문 한국 여행사도 몇 군데 있다. 이런 21세기! 영화 티벳에서의 7년처럼 히말라야를 등반하다가 포로로 잡혀 탈출하고 영적 지도자를 만나 생활하는 낭만은 이제 없는 걸까. 직접 엑셀에 기입한 빈 틈 없는 일정을 보는데 갑자기 열정이 차갑게 식는다. 정해진 대로 사는 건 재미없다 외치면서 여행마저도 그런 식으로 하려고 하다니. 빽빽한 삶에 길들여진 21세기의 노예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어쨌든 여행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가이드북 구매도 항공권 발권도 아니고, 네팔에 갈 것이라 동네방네 우주전체에 소리친 일이었다. 귀찮은 것을 멀리하고 포기가 누구보다 빠른 내게 여행을 엎을 가능성은 몹시도 농후했기 때문에 일부러 ‘너 아직도 안 갔냐?’ 소리가 특히 더 듣기 싫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보통 여행 간다 하면 잘 다녀와라 혹은 재밌는 시간 보내, 선물 사와라 대답하는데, 지인들은 내게 한결같이 살아 돌아오길 바랐다.
사람들에게 네팔이란 어떤 이미지일까. 피켈로 빙벽을 찍으며 오르는 K2 봉우리만 떠오른다면 오해를 풀고 싶다. 한국의 이미지가 출퇴근 지하철을 가득 채운 분노나 삼성, K-pop만 떠오른다면 좀 서글픈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네팔엔 사람이 산다. 닭, 고양이, 개, 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거리가 있는 반면, 동대문 광장시장보다 복잡한 곳도 있다.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숭고한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 오기도 하고, 바라만 보다 가기도 한다. 곳곳에 명상센터와 사원이 있고 논현동에서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을 파는 술집들이 그 옆에 있다. 히말라야에서도 와이파이가 된다. 해발 3000미터에 위치한 롯지의 메뉴는 오십 가지가 넘는다. 그 오십 가지 안에 신라면도 있다. 네팔은 모든 것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공존하는 곳이다. 히말라야 그 너머가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지, 못 보고 지나칠 지는 우리의 시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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